[해외뉴스]
불법 도청 사건으로 뒤숭숭한 할리우드
2003-11-17
글 : 김혜리
이것이 진짜 LA 컨피덴셜?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가 영화 시나리오로 썼을 법한 불법 도청 스캔들이 할리우드 사교계를 뒤흔들고 있다. 신작 영화의 시사회, 스타들의 단골 레스토랑, 스튜디오 구내 식당 등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마다 화제를 독점하고 있는 추문의 중심 인물은, 명사를 주고객으로 삼는 변호사들과 일해온 59살의 사립탐정 앤서니 펠리카노. FBI가 펠리카노의 사무실 컴퓨터에서 유명인사의 전화를 도청한 파일을 다량 발견하면서 엔터테인먼트계의 중요 인물 가운데 누가 도청당했고 누가 도청을 의뢰했으며 도청 테이프가 어떻게 이용되었는가가 수사선상에 오른 것이다.

<AP>와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얽히고 설킨 스캔들의 뿌리는 2002년 6월까지 거슬러올라간다. 긴 이야기의 발단은 <LA타임스> 기자 아니타 부시가 당한 협박사건. 당시 배우 스티븐 시걸과 마피아 인사 줄리어스 나소의 공조관계를 취재하던 부시는 그녀의 자동차에서 죽은 물고기와 장미, 그리고 ‘스톱’이라고 쓰인 카드를 발견했다. 협박범으로 체포된 알렉산더 프록터는 앤서니 펠리카노가 시걸을 위해 자신을 고용했으며 1만달러를 주고 차에 불을 지르라고 지시했으나 부담스러워 물고기와 장미로 대신했다고 자백했다. 그러나 사건은 예기치 않은 커브를 틀었다. FBI는 선셋대로의 펠리카노 사무실을 수색하다 군용 폭약과 수류탄을 찾아냈을 뿐 아니라 컴퓨터에서 문제의 도청 파일들을 발견했다.

펠리카노와 시걸의 협박 혐의는 증거가 없어 유야무야됐지만, 펠리카노는 불법무기 소지죄로 27개월형을 선고받았다. 물밑에 있던 도청 스캔들은 11월17일 앤서니 펠리카노의 수감을 앞두고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펠리카노에게 일을 의뢰해온 유명 변호사 버트 필즈가 FBI로부터 탐문을 받았다고 언론에 공개한 것. 톰 크루즈, 마이클 잭슨, 케빈 코스트너 외 많은 스타를 고객으로 둔 버트 필즈는 11월11일 성명을 발표해, 많은 할리우드 변호사가 그랬듯 자신도 펠리카노를 수사원으로 고용한 바 있으나 도청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못 박았다. 도청 피해자로 밝혀진 코미디언 개리 샨들링도, FBI가 도청 녹음이 1999년 샨들링과 전 매니저 브래드 그레이의 소송에 이용됐을 가능성을 물었다고 전했다. 당시 브래드 그레이의 변호사는 버트 필즈였고 분쟁은 재판 전에 합의로 해결됐다.

언론은 앤서니 펠리카노가 오랫동안 할리우드에서 알려지지 않은 명사였다고 전하고 있다. 카드빚 해결사로 출발한 펠리카노는 1977년 리즈 테일러의 세 번째 남편 마이클 토드의 도둑맞은 유해를 TV 카메라 앞에서 찾아내 유명해졌다. 그리고 이후 테일러의 호의로 고객을 소개받아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말투가 험하고 총보다 야구방망이를 무기로 선호하는 구식 탐정 펠리카노의 이미지는 흔히 챈들러의 주인공 필립 말로우에 비교됐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현재 FBI의 수사 진척도는 명백하지 않으나, 불법 도청 수사가 LA에서 뉴욕까지 확대됨에 따라 적잖은 배우, 매니저, 제작자, 변호사들이 수사에 응하거나 대배심에 소환될 것으로 보인다. 할리우드의 홍보직 종사자 마이클 샌즈는 <AP>와의 인터뷰에서 “할리우드의 많은 변호사가 펠리카노의 구식 추진력을 좋아했다. 그것은 요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확실히 요즘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구식 스캔들로 할리우드는 뒤숭숭한 연말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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