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기억과 사랑에 대한 경쾌하고 새로운 시선 ,<노보>
2003-11-18
글 : 홍성남 (평론가)
■ Story

어느 회사의 복사실에서 일하는 그래험(에두아르두 노리에가)은 이전에 당한 사고로 인해 심한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다. 그는 사고 이전에 자기가 속해 있던 세계에 대해 기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현재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에 대해서도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그 앞에 나타난 임시 경리직원 이렌느(안나 무글랄리스)는 과거없이 섹스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그래험의 매력에 빠져든다. 이후로 두 사람은 아침마다 매번 새로운 느낌을 가지고 한 침대에서 일어나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 Review

영화가 시작되면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자판기와 힘겹게 씨름하는 그래험이다. 이걸 보고 우리는 혹시 이 남자가 무언가에 굉장히 화가 나서 공격적인 행동을 표출하는가보다, 하고 짐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게 아니었다. 그를 아는 듯한 어떤 남자가 그에게 조용하게 음료수를 뽑아주었을 때에야 우리는 그에 대해 오해를 했음이 확실히 드러난다. 그래험은 자판기 사용법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약간의 시간 간격을 두고 우리는 그가 자판기 앞에 다시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데 그는 방금 전의 일은 까마득히 잊었는지 또다시 자판기를 두드리고 있는 게 아닌가.

장 피에르 리모쟁 감독의 영화 <노보>를 여는 이 첫 시퀀스는 이제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될 주인공 그래험이 어떤 인물인지를 효과적으로 알려준다. 겉보기로도 외계에서 온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멀쩡한 성인 남자인 그가 쉬운 자판기 이용법조차도 알지 못하는 것은 그것에 대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자신의 머릿속에서 공백 상태로 남겨두고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자신의 아내, 아들, 친구 등이 속한 망각 ‘이전’의 세계, 그의 이름이 파블로였던 지난 세계에 대해서는 기억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태연하게 자판기 앞에 서서 방금 전에 했던 격한 행동을 되풀이하는 데서 보듯 그래험은 ‘이후’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기억도 오래 지속시키지 못하는 인물이다. 다시 말해 그는 망각의 미로 속을 서성거리며 영원한 현재를 살고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마도 많은 영화팬들은 <노보>의 이 주인공이 얼마 전 자신들이 (인상 깊게) 봤던 다른 영화 속의 주인공과 꽤 닮은 처지라는 걸 기억해내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맞다. <노보>의 그래험/파블로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메멘토>에서 10분 이상 기억을 지속시키지 못해 자신의 몸에 메모를 해야 하는 가련한 주인공 레너드와 닮은 데가 없지 않은 것이다(그래험도 조그만 노트에다가 메모를 하면서 자신의 무력한 기억력을 보완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노보>가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세계적인 히트작의 아류가 아니라는 것은, 이것이 <메멘토>와는 전혀 다른 (경쾌하고 감각적인) 톤으로 상이한 주제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쉽게 드러난다.

<노보>에서 리모쟁이 탐구해보고자 하는 문제는, 아주 간단히 정리하자면, 기억(상실)의 문제와 사랑의 본질 사이의 관계쯤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가 손쉽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런 것일 수 있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과의 공유된 경험의 축적이 있어야, 즉 나와 당신 사이의 내밀한 역사가 존재해야 비로소 성립되고 깊어지는 것이라고. 그러나 <노보>는 이와는 다른 면에서 그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지 않느냐고 은밀한 제안을 해온다. 사랑이란 현재 시점에서 활활 타오르는 정열에 감각적으로 충실할 때, 즉 과거를 잊고 현재에 몰두할 때, 그 경험이 좀더 신선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아무래도 <노보>는 후자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는 쪽이기에 <메멘토>와 유사한 모티브를 포함하고 있되 그 안에 <감각의 제국>을 끌어들인 영화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단, 여기에서 그래험과 이렌느가 정열로 세운 ‘감각의 제국’에는 거추장스런 윤리의식은 물론이고 거창한 강박관념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현재와 그 시점의 욕망에 충실한 육체의 쾌락이 있을 뿐이다. “과거없는 섹스는 즐겁다”고 하는 이렌느의 말처럼 그래험과 이렌느 두 남녀는 매번 처음인 듯해 신선한 그런 경험을 즐긴다. 그래험이 자신의 내부에 공백을 가지고 있는 픽션 속 인물치고 괴로워하는 표정을 거의 짓지 않는 것은 많은 부분 그 때문이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 카페의 여종업원은 설탕없이 커피를 주문하는 그래험에게 이렇게 말한다. “기억이 없는 삶은 블랙커피처럼 쓰지.” 사실 이건 기억상실을 다루는 많은 영화들이 보여준 태도에 해당할 터이다. 예컨대 <메멘토>의 레너드는 자신의 ‘잃어버린 세계’를 찾기 위해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던가. 그러나 앞에 인용한 카페 웨이트리스의 말은 정작 그것이 쓰인 바로 그 영화에는 적용되지 않는 듯이 보인다. 그래험은 망각의 수렁에 빠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그 안에서 생을 누리는 존재다. 그의 상실된 세계는 현재에의 충실함,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순수함으로 보완이 가능하다. 영화의 많은 장면들에서 드러나듯이 그래험은 완전히 “노보(novo)한” 존재이다(순수한 상태를 가리키며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이 단어는 사실 사전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그래험은 기성의 질서에 갇혀 있지 않은 인물이란 뜻이기도 하다). 반면 그래험이 파블로일 때를 알고 있는 사람들, 즉 ‘아이’인 그의 아들을 뺀, 그의 아내, 그의 친구, 그의 직장 상사는 모두 그리 믿지 못할 이들이다. 이만하면 <노보>는 망각을 사랑의 기술, 더 나아가 삶의 기술로 다루는 흔치 않은 영화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싶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사고하는 영화 혹은 굉장히 지적인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고의 깊이라든가 치열함에 대해 말하자면 <노보>는 다소 가벼운 영화쪽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것은 이미지와 음악의 육감적인 활용을 잘 알고 있으면서 가벼움을 장점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대체로 이 말에 동의하고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렌느가 말하는 영화의 마지막 대사가 자신들의 마음을 꽤 많이 움직임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은 시간을 잊는 것이면서 언제든 끝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건 여간해선 망각하고 싶지 않을 만큼 멋진 대사다.

::리모쟁 감독이 말하는 <노보>

남성은 욕망 앞에서 어떻게 새롭게 행동하나

장 피에르 리모쟁(1949년생)은 1983년부터 장편영화를 만들어온 프랑스의 중견감독이지만 국내에서 그리 잘 알려져 있는 편은 아니다. 아마도 몇몇 잡지들에 소개된 바 있던 98년작 <도쿄 아이즈> 정도가 조금이나마 알려진 그의 영화일 것이다. 기타노 다케시가 출연했으며 칸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진출하기도 한 이 영화가 그래도 유명세가 있는 리모쟁의 영화이지만 사실 완성도 면에서 따져보자면 그보다 덜 알려진 <노보>가 좀더 낫다고 말할 수 있다. 과연 이 흥미로운 영화에 대해 감독 자신은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들어보도록 하자.

리모쟁은 <노보>라는 영화를 통해 욕망이 일어나는 순간적인 감정에 대해, 남성이 욕망 앞에서 어떻게 새롭게 행동하는가에 대해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사랑과 기억(혹은 망각) 사이의 관계라는 영화의 주제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진정으로 타인의 육체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망각해야 한다. 스스로의 몸도, 그리고 타인의 육체도 망각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노보>는 에로티시즘의 표현이 중요한 영화이기도 한데, 이 점에 대해서 리모쟁은 기존 영화들이 보여준 섹슈얼리티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만든 영화가 <노보>라고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섹슈얼리티를 중시하는 많은 영화들이 최근까지도 죽음에의 충동만을 표현했지 쾌락의 원칙을 별로 강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에로스를 강조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그와 함께 황금빛이 나는 육체의 이미지, 보들레르적인 육체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리모쟁은 자기 생각에 최근 본 한국영화들 가운데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영화가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이라며 이 영화로부터 영감받은 부분이 있음을 시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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