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사람들이 엮어가는 애절한 사랑 이야기
TV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로 숱한 `꽃미남'들을 제치고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김래원. 영화 <장화, 홍련>에서 신인답지 않은 탄탄한 연기력을 선보인 충무로의 차세대 기대주 임수정. <정사>에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에 이르기까지 중년으로 접어든 나이에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이미숙. 이들을 하나로 엮은 것은 28세의 여감독 이언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을 졸업하고 <행복한 장의사> 연출부, <고양이를 부탁해> 각색, 단편영화 <앨리스와 사랑에 빠지다> 연출 등으로 내공을 다진 뒤 처음 장편영화 메가폰을 잡은 것이다.
오는 28일 선보이는 < …ing>(제작 드림맥스)의 얼개는 지극히 단순하다. 홀어머니와 혼자 사는 시한부 생명의 여고생이 대학생과 가슴 저미는 사랑을 나눈다는 것. 줄거리도 특별한 사건없이 잔잔하게 전개되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영화를 다 보고나면 메말랐던 감정이 흠뻑 젖는다.
민아는 해군 장교였던 아버지를 일찌감치 여의고 홀어머니 미숙과 단둘이 산다. 맥주도 마시고 엄마 몰래 담배도 피우고 록음악도 즐겨듣지만 여고 3년생이 견뎌내기에는 몸과 마음의 상처가 너무 크다. 어렸을 때부터 병명을 바꿔가며 병원을 제집처럼 드나들어 간호사들이 붙여준 별명이 `13층 붙박이'. TV를 보며 발레리나를 꿈꿔보지만 병약한 몸으로는 어림도 없다.
어머니가 딸에게 미숙이란 제 이름을 불러달라고 하며 친구처럼 지내는 것도 길지 않을 딸의 여생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한 것. 그런 미나에게 가슴 두근거리는 사랑이 다가온다. 상대는 아래층에 살며 제대 후 복학을 준비하고 있는 사진과 대학생 영재. 넉살좋은 표정에 덜렁거리는 몸짓이 처음에는 뜨악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시나브로 그에게 향한 마음을 발견하고 흠칫 놀란다.
애초에 이언희 감독이 지난 4월과 5월 무렵 출연진을 짤 때만 해도 주인공의 배역에는 무게가 그다지 실려 있지 않았다. 그런데 7월 1일 첫 촬영에 들어갈 때는 <옥탑방 고양이>가 신드롬을 일으키고 <장화, 홍련>이 장기 흥행을 기록하며 김래원과 임수정은 스타 반열에 올라 있었다.
이 소식에 홍보담당을 비롯한 제작사와 투자사 관계자들은 반색을 했겠지만 정작 감독은 고민에 빠졌을 법하다. 철없고 능청스런 김래원의 이미지가 너무 굳어진데다 공포영화의 임수정 캐릭터가 너무 강해 애초의 구도가 흐트러질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영화에서 그런 대목이 발견된다. 티없이 맑으면서도 아픈 상처를 지닌 미나와 넉넉하고 따뜻한 가슴의 영재가 배우들의 고정 이미지에 갇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지명도를 얻은 대신 내준 게 지나치게 많은 느낌. 신인급치고는 호연이었다고 넘겨버리기에는 너무 아쉽고 상대적으로 이미숙의 관록이 돋보인다.
이언희 감독에게는 허진호나 이정향의 뒤를 이을 만한 감성멜로 전문감독의 자질이 엿보인다. 단선적인 줄거리와 최소한의 배역진으로 지루함을 주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서서히 고조시켜가는 솜씨가 녹록하지 않다.
상영시간 110분. 12세 이상 관람가.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