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프리다,나 아니면 안 될걸요?<프리다>의 샐마 헤이엑
2003-11-19
글 : 권은주
사진 : 박은영

에드워드 노튼은 연인이자 동료인 샐마 헤이엑과 <프리다>를 촬영하던 중 멕시코 시내에서 만난 사람들을 잊지 못한다. 샐마 헤이엑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전하던 그들의 진심을 기억한다. 그들은 멕시코 여배우가 프리다를 연기하게 된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를 이야기했다. 멕시코시티에서 억수 같은 비와 함께 <프리다>의 프리미어가 열리던 날, 레드 카펫 주위로 몰려들어 환호하던 수천명의 군중도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고, 그는 확신한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샐마의 의지와 끈기의 승리”라고 부른다.

영화 한편 세상에 내놓은 것이 대단한 자랑거리는 아니라고, 사랑에 빠져 분별심을 잃은 팔불출의 과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프리다>는 그냥 ‘영화 한편’이 아니다.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의 중요한 아이콘이지만, 영화화하기엔 너무 많은 리스크를 안은 캐릭터였다.

“일자 눈썹에 콧수염을 지닌, 멕시코의 절름발이 여성 공산주의자 화가에 관한 전기영화”에 손을 뻗치는 제작자도 없었고, 소문만 무성했던 마돈나나 제니퍼 로페즈는 끝내 프리다가 될 수 없었다. “내가 어리다구요? 그럼 내가 충분히 나이가 들 때까지 기다려야 할걸요.” 오래전 기획된 프리다의 영화에 합류하려 안간힘을 썼던 샐마 헤이엑의 예언은 그대로 현실이 됐다. 자신의 우상이 잘못 다뤄질까 두려워 프로듀서를 자청해 8년을 뛰어다닌 결과였다.

멕시코 TV 스타로 등극한 뒤 할리우드로 날아간 샐마 헤이엑에게 주어진 역할은 창녀나 하녀, 둘 중 하나였다.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데스페라도>에서 숨막히는 관능미로 주목받았지만, 그 때문에 ‘섹시한 라틴 여성’의 스테레오 타입에 갇히고 말았다. 샐마 헤이엑이 아직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뱀쇼를 선보이던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뱀파이어 퀸이고, 엉덩이를 훤히 드러내고 백치미를 뚝뚝 흘리던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의 사고뭉치 말괄량이인 것은 그런 이유다.

“할리우드 실력자들은 내가 나라를 잘못 골라 태어난 탓에 주연배우가 될 수 없다고 말했죠. 하지만 악센트와 이미지 때문에 희생당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건 그들이 보는 나에 불과하니까요. 나는 그 이상이에요. 내가 존경하는 다양한 여성들을 체현하고 싶었고, 당장 실행에 들어갔죠. 누구도 내게 그런 기회를 안겨주진 않을 테니까요.” 샐마 헤이엑은 배우로서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프리다>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페넬로페 크루즈와 제니퍼 로페즈가 더불어 인기를 모으면서, 할리우드에 ‘라티노 붐’이 일고 있다고 수선들이다. 그들에 비하면 아주 힘겹게 스타덤에 오른 샐마 헤이엑은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한다. “스튜디오가 이즈음 라틴계 여배우들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해외 박스오피스 수익 때문이지 라틴 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표현은 아닙니다.” 시스템에 영합하는 것이 성공의 길이라면, 다른 길을 선택하겠다고도 말한다. 남의 기대와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살아가는 용기와 열정. 황량한 사막에 피어오른 붉은 선인장꽃을 연상시키는 두 여장부, 프리다 칼로와 샐마 헤이엑은 그렇게 서로 닮았다.

사진제공 GA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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