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엎어진 7편의 영화가 나의 위대한 유산,<위대한 유산> 감독 오상훈
2003-11-20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사진 : 정진환

오상훈 감독은 7년을 백수로 보내던 끝에 첫 번째 영화 <위대한 유산>을 만들었다. 멜로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여러 프로젝트를 준비했던 감독치고는 의외의 데뷔전을 치른 셈이다. 꺾어야 했던 꿈도, 포기해야 했던 욕심도 많았겠지만, 그는 단 한번도 화를 내지 않으면서 찍은 이 영화를 기분 좋게 기억하고 있다. 멜로와 코미디를 모두 잡았고, 재미있는 영화라서 흥행에도 성공한데다가, “잔인한 면이 좀 있기는 하지만 다음에는 그러지 않으면 되니까”라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 떠난 고향 해남의 질펀한 욕설을 그대로 담고 있는 오상훈 감독은 그처럼 대범하고도 낙천적으로 세상을 헤쳐나왔다. 재수 끝에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간 이후, 불러주는 사람 없어도 항상 먼저 찾아갔던 개척자. 그는 월세도 못 내던 백수 생활 속에서도 “어디 한번 안아보자”면서 별볼일 없는 연인을 세게 끌어안는 멜로의 감성을 잃지 않고 있었다.

<위대한 유산>이 박스오피스 2위에서 1위로 올라섰다. 늦은 나이에 처음 만든 영화인데, 기분이 어떤가. =그냥 일등 한번 해보는구나 싶다. 평생 못해볼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사실 <위대한 유산>은 다른 감독이 만들려고 했던 영화였다. 선배인 김태규 감독(<긴급조치 19호>)이 준비하다가 못하겠다면서 네가 해보라고 그랬다. 60분 분량 초고를 읽었을 때부터 괜찮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하지만 선배 영화에 잘못 손을 댔다가 무슨 욕을 먹을까 싶어서 처음엔 거절했었다. 어찌어찌 연출을 하게 됐는데, 남들이 준비 다 해놓은 영화에 끼어들어서, 복은 내가 다 받았으니 죄송하지. (웃음)

<위대한 유산>은 배우들의 연기가 큰 힘이 되어준 영화다. 코미디 연기가 뛰어난 김선아, 임창정과 작업한 경험은 어땠는지. =김선아가 사발면 먹는 장면을 찍은 첫 번째 촬영부터 너무 재미있었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내가 많이 웃게 됐으니까. 김선아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그때부터 코미디를 할 줄 알았다고 말하는 배우다. 그렇게 생기발랄했는데, 발음이 어색해서 그동안 굉장히 치이며 살았다. 지금처럼 연기할 수 있는 건 부단히 노력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감독인 나보다도 준비가 잘돼 있지 않았겠는가. 영화를 다 만들고 나서 내가 김선아에게 그랬다. 네가 영화에서 제일 예쁘게 나온 장면은 엄마에게 보약 사다주는 대목이다, 화장 하나도 안 한 그 얼굴이 제일 예뻤다고. 배우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관객과의 벽을 허물 수 있는데, 대부분 배우들은 그걸 잘 못한다. 임창정은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머리를 막 굴린다. 가장 큰 장점은 노래를 하는 것처럼 연기를 하는 거다. 그 친구 노래 잘하지 않나. 노래에도 기승전결이 있는데, 임창정은 그 리듬을 연기와 대사에 모두 살려낼 줄 안다. 조금 오버한다 싶으면, 내가 편집에서 잘라주면 되는 일이고. 현장에서 놀면서 뭔가를 찾아가는 타입이라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현장에는 어찌나 백수처럼 하고 나타나는지, 하루는 내가 이번엔 너무 심하다, 가서 머리 좀 감고 와라 했을 정도다. (웃음)

카메라가 한강을 따라 내려가는 오프닝은 영화 내용과 별 관계가 없으면서도, 밝은 기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처음부터 그 장면을 찍으려고 했는가. =원래 시나리오에는 그런 오프닝이 없었다. 신인감독은 돈이 드는 장면을 찍지 못한다. 그래서 내부 시사 반응이 괜찮게 나온 다음에야, 플라잉캠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다. 한강에서 여의도까지 날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어서. 그게 한번 빌리는 데 1천만원이다. 그런데 배가 너무 흔들려서 원하는 느낌이 안 나오는 거다. 무데뽀로 밀고 나가서,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게 큰 유람선을 빌리자, 음악감독은 그 장면에 쓰게 밝은 느낌 나는 곡 하나 만들어달라, 욕은 내가 다 먹겠다, 그랬다. (웃음) 프로듀서는 엔딩크레딧 올라갈 때 공형진의 정체를 암시하는 장면을 넣어주면 플라잉캠을 쓰도록 해주겠다고 그러더라. 사실 안 그래도 넣으려고 했던 건데. (웃음) 미영(김선아)이 배탈이 나서 화장실에 주저앉아 있는 첫 장면도 시나리오와는 다르다. 코미디영화는 첫 장면에서 박자를 놓치면 그걸 회복하는 데 20분은 걸린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화장실 생각밖엔 안 나기에 김선아에게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다행히 흔쾌하게 동의해줬다.

코미디라고 하기에는 멜로 부분이 너무 길다. 상영시간도 거의 두 시간이나 되는데. =시나리오에는 내가 좋아하는 부분과 나를 제외한 나머지가 좋아하는 부분이 있었다. 둘 중 하나라도 놓치면 나는 둘 다 놓치는 거다, 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코미디를 원했지만, 그냥 코미디는 하고 싶지 않았다. 요즘은 TV 코미디 프로들도 얼마나 웃기는데. 내가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아한 건 퀴즈쇼 장면이었고, 그건 창식(임창정)과 미영을 이어주기 위해 있는 거였다. 그게 주가 되지 않으면 이 영화는 하고 싶지 않았다.

창식과 미영이 로맨스를 만들어가는 부분은 감독이 정말 좋아하면서 찍었다는 느낌이 난다. 결말도 보통 로맨틱코미디와는 다르다. =정말 좋았으니까. 필름은 거짓말을 못한다. 배우가 정말 활기있게 찍었는지, 피곤해서 억지로 찍었는지, 현장에서 찍은 사람들은 몰라도 편집기사는 귀신처럼 알아낸다. 내가 보기는 이래도(웃음) 여성적인 부분이 있어서 여자들이 좋아하는 걸 잘 집어내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초원의 빛> 이런 멜로영화를 좋아한다. 미영이 비디오 가게 앞 벤치에 앉아 있는 창식을 때리면서 마구 퍼붓는 대사는 내가 쓴 거다. 그것만은 정말 쉬웠다. 결말도 보통 로맨틱코미디라면 여주인공이 남자에게 확 안겨야 하는 건데, 처음엔 어떻게 할까, 여자가 잘못 해서 남자 혀를 깨무는 걸로 할까 생각해봤다. 사람이 누굴 좋아하게 되면 눈을 제대로 못 본다. 눈을 보다가도 마주칠 것 같으면 시선을 내리 깔아 입술만 쳐다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뭐라고 말하는 입술의 움직임만 눈에 들어오다가, 와락 키스를 했는데 실수하는 걸로. 결국 한 단계 낮추기는 했지만, 미영이라는 캐릭터의 일관성만은 포기하지 말자고 고집했다.

100원에 목숨을 건다든지, 만화책 2권이 빠져 있다면서 비디오 가게 주인에게 화를 낸다든지 하는 백수들의 일상이 세밀하게 묘사된다. 경험에서 나온 것인가. =에피소드를 직접 쓰진 않았지만, 비슷한 경험은 많다. 송해성 감독(<파이란>)과 함께 산 적이 있는데, 이 형이 내가 집에 안 들어가면 신작 비디오를 반납을 안 하는 거다. 독촉 전화가 오면 싸우기나 하고. (웃음) 그래서 비디오 하나 빌리자고 멀리멀리 떨어진 가게까지 가야 했다.

7년 동안 백수로 지냈다고 들었다. <총잡이> 조감독으로 영화를 시작했는데 그렇게 오래 놀아야 했던 사연을 말해줄 수 있겠는지. =제대를 하고 나서 과도기를 심하게 앓았다. <씨네21>에 나왔던 말 같은데, 스탭 연봉이 최저생계비에도 한참 못 미친다면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불가사의한 연봉’이라고 했다. 없는 집 자식이 영화를 하려니,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지내다가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방송 캠페인이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회사에 다녔다. 드라마 외주 제작도 좀 했고. 하지만 내가 못 살 것 같아 도망나와서 무조건 학교 선배인 김의석 감독을 찾아가 써달라고 했다. 그게 <총잡이>였다, 그거 끝나고 나서는 다시 학교 선배인 장현수 감독을 찾아갔다. 그 무렵엔 학교 선후배나 뭐 그 비슷한 인맥이 없으면 영화판에 명함도 못 들이미는 시절이었으니까. 내가 손금을 좀 볼 줄 알아서 장현수 감독 손금을 봐주면서 친해졌다. 그렇게 <본 투 킬>에 합류했고, 송해성 감독이나 김해곤 작가도 다 그 무렵 알게 됐다. <본 투 킬>이 끝나고 나서 송해성 감독이 자기 영화를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자꾸 엎어지는 거다. 이렇게 도와주고만 있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서 내 영화를 하려고 했는데, 그게 7년이 갔다. 7년 동안 영화 일곱편이 엎어졌다.

7년이면 긴 시간이다. 어떻게 먹고살았나. =아침 점심 굶고, 아는 형들이 많으니까, 저녁은 형들 만나서 술 마시고. 그러고 나면 집에 들어와서 술기운에 자판 두드리면서 시나리오를 썼고, 지치면 쓰러져 잤다. 그래도 올해 초부터는 처음으로 같이 사는 여자친구에게 월세를 줄 수 있었다. 이제 전세로 옮기기만 하면 되는데. (웃음) 주위에선 내 여자친구를 홍사임당이라고 부른다. 홍사임당 내조 덕분에 내가 여기까지 왔다고. 그런데 얼마 전에는 여자친구가 펄펄 뛰면서 너네 집 주소 대라고, 너 택배로 거기에 부쳐버리겠다고 화를 냈다. 어느 영화잡지에 난 인터뷰를 오해했던 거다. 내가 연애 한번도 안 해봤다고 얘기한 것처럼 나왔거든. 그래서 요즘 싹싹 빌면서 산다. (웃음) 창식이 형이 형수에게 무릎 꿇고 비는 장면이 가끔 나오는데 그게 다 내가 평소에 하는 거다.

그 사이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 =영화말고 다른 일은 생각해볼 겨를도 없었다. 후회한 적도 없고. 사실 영화 한편을 다 만들었다는 성취감은 그렇게 크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건 촬영현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수다떠는 일이다. 영화 촬영이라는 게 전쟁의 역사 아닌가. 일대일로 붙는다면, 술 마시고 노가리 풀면서 얼마든지 깰 수 있지만, 감독은 일 대 백으로 싸우는 사람이다. 나는 그렇게 싸우고 다시 엉기는 게 좋다. 신기한 건, 사람들이 서로 신경 긁고 다투다가도 필름만 돌아가면 감정을 전부 정리한다는 거다. 그게 다 부비면서 사니까 가능한 일이다. 같이 힘들고, 같이 좋고, 같이 살고. 이번 영화를 찍을 때도 내가 신인감독인 탓에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많이 싸워야 했지만, 스탭들에게는 화를 낼 수 없었다. 좋은 영화 만들겠다고 와서 열심히 일하는데 어떻게 화를 내나. 스탭이 저 준비가 안 됐거든요, 하고 미안해하면 내가 항상 그랬다. 괜찮아, 콘티 바꿔, 사이즈 뒤집어.

첫 번째 영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서운하거나 후회되는 부분은 없는지. =벌써 다 잊어버렸다. 미련을 두면 나만 속아프니까. 다음 영화 잘하면 되지 뭐. 7년 동안 영화 일곱편 엎어보고 나면 집착을 버릴 수 있을 거다. (웃음) 바꿔 생각하면 나는 영화로 만들 수 있는 시나리오를 일곱편이나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걱정이 없다. 어떻게 하면 술 한잔 더 마시고 집에 가서 무사히 보낼까 이런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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