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깐깐하게,그냥 넘기지 말고 <...ing>의 김래원
2003-11-26
글 : 박혜명
사진 : 오계옥

커다란 체구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김래원은 나이보다 성숙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두 눈꼬리의 웃음은 아이처럼 천진하다. 그것이 김래원의 캐릭터다. 천진함이 돋보이는 성숙함과 여유로움. 사실 김래원은 임수정보다 한살이 어리다. 그런 그가 임수정보다 서너살 많은 역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리라. 알려진 대로 김래원은 스물세살답지 않게 어른스럽다, 고들 주위에서 말한다. 생각이 많고, 한번 진지해지면 답답할 만큼 진지하다. 반대로, 마음만 먹으면 일자보다 단순하게 하늘 높이 즐겁게 웃고 떠든다. 본능적인 영리함이 아니라 마음속 의도와 머릿속 계산으로 자기 자신을 어느 정도까지 바꾸는 사람이 김래원이다.

그러니까 그가 <옥탑방 고양이>의 경민이도 매력적인 인물로 만들었을 것이다. <…ing>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다. 까다로운 여자를 받아주는 넉살과 능청은 여전히 김래원의 대표 캐릭터다. 그런데 그런 장면만 골라내자 그가 말을 막는다. “영화 끝까지 다 안 보셨죠? 뒷부분 보셨어요, 뒷부분? 사실은 듣고 싶은 얘기가 있었는데.” 뿌루퉁하게 혼잣말을 한다. “그렇다니까. 사람들은 꼭 내가 즐겁고 재미를 주는 것만 바래. 그것만 좋아하고. 내가 아무리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해도 화면에서 가볍게만 풀리니까 뭘 할 수가 없어.”

이것이 그 유명한 김래원의 ‘연기 욕심’이다. 영화 종반부에 영재가 펑펑 우는 설정이 드라마상 과한 것 같았다고 하니까 두눈에서 불꽃이 튄다. “거봐,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그것 땜에 얼마나 싸웠는 줄 아세요? 안 우는 것도 찍긴 찍었어요. 내가 그랬거든요. 울 필요없다, 안 울어도 충분히 슬픔을 전달해줄 수 있다. 분명히 말했는데, 감독님이 안 된대요. 이유가 뭔 줄 알아요? 제목이 <…ing>. 아직도 진행형으로 계속되는 사랑이니까 울어도 된대. 거봐.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아, 이러면 또 그냥 못 넘어가지, 내가.” 영화 속에서 영재는 말꼬투리를 물고늘어지는 민아에게 “하여간 그냥 넘어가질 않아”라는 넉살 좋은 핀잔을 던졌지만 정작 쉽게 넘어가지 않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사실 우리는 유쾌한 김래원을 보는 게 즐겁다. 그만큼 사람 좋고 밝은 얼굴은 보기 드물다. 그럼에도 <…ing>에서 김래원의 연기가 믿음을 주는 또 다른 순간은 한참 껄껄 웃다 민아에게 진지한 고백을 할 때다. 그리고 덜컹거리는 버스 뒤에 앉아 민아의 손을 자기 티셔츠로 편안하게 감싸줄 때다. 어쩌면 그가 듣고 싶었다던 이야기가 이런 것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연기에 대한 욕심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단 믿음으로 자신에게 확신을 주고 동시에 냉정한 비판을 가하는 사람. 그는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스스로 많은 것을 질문하고 답을 찾으려 하는 이 청년에게 현명한 고집만 남아준다면, 그는 계속 사랑받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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