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해양액션 블럭버스터,<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
2003-11-26
글 : 김현정 (객원기자)
:: Story

나폴레옹 전쟁 중인 1805년, 잭 오브리 함장(러셀 크로)은 프랑스 무장선박 아케론호를 파괴하거나 나포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는 영국 군함 HMS 서프라이즈호와 197명의 승무원들을 이끌고 아케론호를 뒤쫓지만, 첨단기술로 제작된 아케론호에 패배한다. 오브리는 손상된 선체를 해상에서 수리하고 적함을 따라가기로 결정한다. 아케론호가 먼저 브라질 해역에 닿으면 전세가 역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프라이즈호의 의사 마투린(폴 베타니)은 오브리가 자존심 때문에 배와 선원들을 위험 속으로 몰아넣는다며 귀항하자고 주장하지만, 오브리는 고집을 꺾지 않는다.

:: Review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는 1억3500만달러가 들어간 영화다.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십년 동안 다섯개 영화사를 전전했던 이 프로젝트는 이십세기 폭스와 미라맥스, 유니버설 세 메이저 회사가 힘을 모으고서야 촬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감독 피터 위어는 영화사 하나를 침몰 위기에 몰아넣을지도 모르는 엄청난 제작비를 기대와는 다른 부분에 쏟아부었다. <타이타닉>을 촬영한 바하 스튜디오, 1만평에 달하는 그 거대한 물탱크로 들어간 <마스터 앤드 커맨더>는 아찔한 태풍을 몰고 오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배우들의 목소리를 뒤덮는 물보라와 프리깃함을 요트처럼 뒤흔드는 파도는 왜 이 베스트셀러 원작의 영화가 그토록 오랫동안 떠돌았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마스터 앤드 커맨더>는 스펙터클만으로 이루어진 블록버스터가 아니다. 이 영화는 육지를 버리고 바다로 나선 남자들의 모험담이다. 짜디짠 소금절임 고기와 알코올로 버티는 강인한 남자들은 이 영화를 통해 세월을 건너고 파도를 넘어 살아 있는 육체를 얻었다.

피터 위어는 나폴레옹 시대 바다 위의 삶을 재현하면서 강박에 가까운 집착을 보였다. 그는 나침반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못을 쓰지 않았던 그 당시 선박과 같은 방식으로 서프라이즈호를 제작했다. 선원들의 복장이나 높이 솟은 돛대, 구석에 놓인 램프 하나까지도 지독하게 치밀한 고증을 거쳐야만 서프라이즈호에 승선할 수 있었다. 배 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카메라는 고정되지 않고 바다의 상태에 따라 미세하게 떨리거나 요동쳤다. 피터 위어는 단지 비슷한 영화가 아니라 “시간여행을 떠난 것처럼 느껴지는” 정확한 영화를 원했고,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쓴 것이다. 그러나 피터 위어가 망각의 강에서 건져낸 서프라이즈호는 소품뿐만 아니라 기나긴 여행 자체도 싣고 있는 배였다. 잭 오브리는 나약한 태도 때문에 선원들에게 따돌림받는 사관생도를 가르치고, 붉은 뺨을 가진 어린 생도들에게 책임을 지도록 독려하며, 무서운 오기로 적과 맞붙는다.

그래야만 외로운 배 안에서 무사히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와 그의 선원들은 전투만 벌이는 영화 속 영웅들이 아니다. 그들은 술을 배급받고 느긋한 저녁 시간을 즐기는 평범한 일과도 중요하게 여긴다. 극적인 사건이라고는 두번의 전투와 한번의 폭풍에 불과한 <마스터 앤드 커맨더>는 그런 식으로 ‘진짜’ 항해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한 남자가 더 있다. 외과의사 스티븐 마투린은 오브리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면서 그를 견제하는 적수다. 하루하루가 쉽지 않은 항해 도중, 그는 침착하게 두개골 절제 수술을 행하고 팔 하나를 잃은 어린 소년생도를 다독인다. 마투린은 소년에게 외팔이 제독 넬슨의 전기를 선물하는 오브리와는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전투와 학문, 불같은 성질과 초연한 시선, 군인다운 의지와 학자에 어울리는 세심함. 이토록 다른 두 남자는 아케론호를 추적하기로 한 오브리의 결정을 두고 두 시간 넘는 영화 내내 적절하고도 깊이있는 긴장을 빚어낸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저녁 시간이면 바이올린과 첼로를 연주하며 서로에게 녹아들고, 꼭 그런 방식으로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묘한 화합의 방식을 찾는다. 거친 기운을 가진 러셀 크로와 사려깊은 표정의 폴 베타니는 스무권에 달하는 원작 시리즈를 이끌었던 이 매력적인 남자들을 담담한 현실의 인물로 살려냈다.

<마스터 앤드 커맨더>는 패트릭 오브라이언의 시리즈 소설 중에서 열 번째 이야기 <세계의 머나먼 끝>( Far Side of the World)을 선택했지만, 미국 대신 프랑스를 적국으로 삼았다. 피터 위어는 넬슨 제독의 시대를 되살리고 싶어서 그랬다고 말했다. 단 한번도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넬슨은 <마스터 앤드 커맨더>의 정서를 그 이름만으로 대신할 수 있는 존재일 것이다. 서프라이즈호의 남자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넬슨은 팔을 잃고도 바다에 나섰고, 배 위에서 죽었다. 서프라이즈호는 지휘관 중 하나였던 어린 생도와 동료들을 바다에 던져넣고, 비슷한 죽음을 견뎌야만 할 항해를 계속한다. 비장미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 위대한 정복자가 아닌, 그저 임무에 따라 해류를 타는 이들. 소금기 어린 그들의 여정으로 인도하는 <마스터 앤드 커맨더>는 갑판 위로 휘몰아친 8천 갤런의 바닷물보다도 직접 친구의 수의를 꿰매는 소년의 손길이 더욱 기억에 남을 영화다.

:: 서프라이즈호와 기타 소품 제작

19세기에 관한 값비싼 기록물

HMS 서프라이즈호는 28문의 대포를 장착한 프리깃함이었다. 19세기에 정말 존재했던 이 함선은 온갖 분야의 숙련공이 모인 <마스터 앤드 커맨더> 세트에 원형 그대로의 자태로 자리를 잡았다. 첫 번째 서프라이즈호는 미국 해양학교에서 사용됐던 로즈호를 보수한 선박이었다. 피터 위어와 제작진은 로드 아일랜드에서 이 배를 찾아냈는데, 19세기 영국 군함을 모방했기 때문에 모델로는 적격이었다. 로즈호가 로드 아일랜드에서 샌디에이고까지 바다를 건너온 다음에는 또 다른 배를 만들어야 했다. 선실과 갑판 하부 등에서 부분 촬영을 진행하는 경우를 위해서였다. 수리와 건조에 걸린 기간은 석달에서 넉달 정도. 제작진은 서프라이즈호를 정확한 모조품으로 만들기 위해 영국해군본부를 찾아가 도면을 얻었고, 예전 서프라이즈호의 갑판 치수와 체인 굵기, 난로의 위치까지 확인한 다음에 계산을 거쳐 닻의 크기를 알아냈다. 이런 치밀한 태도는 사소한 소품들에도 적용됐다. 1900켤레에 달하는 신발은 1806년 침몰한 배에 남아 있던 신발 모양을 따왔고, 제복은 넬슨이 선도한 유행의 변화를 그대로 반영했다. 다만, 잭 오브리는 옛 스타일을 선호하는 사람이었다는 판단에 따라 젊은 장교들의 판탈롱 대신 무릎 밑에서 묶는 짧은 바지를 입었다. 단추나 버클 디자인도 19세기 모양 그대로였다. 이 고집은 로케이션에서도 마찬가지. 제작진은 진화의 과정을 보존하기 위해 영화촬영을 허가하지 않는 갈라파고스 당국을 설득해 핀치새와 바다거북이 쉬고 있는 그 섬 해안에 직접 상륙했다. <마스터 앤드 커맨더>는 영화이지만, 값비싼 기록물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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