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루니 툰: 백 인 액션> LA 현지 시사회를 가다
2003-12-01
글 : 옥혜령 (LA 통신원)

예전에는, 아마 지금도, 매일 저녁 식사 시간 전후로 TV에 어린이 프로그램 시간이 있었고 일요일 아침 특별 만화 방송 시간이 있었다. 일요일 아침 늦잠 자고 싶은 유혹을 떨치고 일어나 <마징가 제트>와 <들장미 소녀 캔디>를 보던 사람이라면, 미국인들이 토요일 아침마다 벅스 버니가 등장하던 <루니 툰> 시리즈를 보던 그때를 추억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루니 툰의, 루니 툰에 의한, 루니 툰을 위한

워너브러더스가 <루니 툰> 시리즈의 주인공들을 실사영화 속에 화려하게 부활시킨, <루니 툰: 백 인 투 액션>의 LA시사회에 가던 길에 문득 마징가 제트나 캔디는 영화 속에 부활할 일은 없을까라는 공상을 잠깐 하기도 했다. 아마도 어렵겠지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 이유, 역시 마징가 제트나 캔디가 벅스 버니같은 슈퍼스타가 아니라는 것이다. 1930년대 흑백 단편만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오늘날까지 디즈니사의 미키 마우스와 한 시대를 풍미한 벅스 버니는 한국의 관객에게조차 친숙한 ‘캐릭터’가 아니던가. 한국에도 할리우드 스타와 나란히 공동주연을 할 만한 만화주인공은 없을까라는 다른 공상을 이어가며, 해외 기자들로 가득 찬 시사회장에 도착했을 때 어쩐지 벅스 버니를 보며 웃고 자란 보통의 미국 관객들이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아쉬움이 남았다.

1988년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에서 야심차게 시도했던 카툰 캐릭터와 실사영화의 결합은 드디어 <루니 툰: 백 인투 액션>에서 결실을 맺었다. 지난 10여년 동안 눈부신 컴퓨터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벅스 버니와 그의 영원한 사이드 킥, 대피 덕을 <미이라> 시리즈의 브랜든 프레이저, 스티브 마틴, 티모시 달튼, 조앤 쿠색 등의 쟁쟁한 할리우드 스타와 맞먹는 주연배우로 되살려놓았다. 워너브러스사가 유구한 전통을 가진 루니 툰 카툰 캐릭터들을 새 단장한다는 의미에서 이 영화를 기획했다고 밝히듯이, <루니 툰: 백 인투 액션>은 루니 툰의 루니 툰을 위한 영화다. 주인공인 벅스 버니와 대피 덕 이외에도 포키 픽, 요세미티 샘, 코요테, 트위티 버드 등 낯익은 루니 툰 카툰의 캐릭터들이 종횡무진 스크린을 누비고 있으니. 왠지 기자회견에는 벅스 버니와 대피 덕이 참석해야만 할 것 같다. TV시리즈로 정착된 이래 당대의 시대상과 대중문화를 날카로운 유머로 민감하게 반영하던 30년대 원작의 정신을 잃고, 어린이용 캐릭터로 변모했던 이들 카툰 캐릭터들은 조 단테 감독이 만들어낸 판타지 종합선물세트 액션의 세계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기보다는 약각은 삐딱하고 딴죽걸기가 장기이자, 욕심과 야망, 게으름을 굳이 감추지 않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왕년의 스타들도 함께 돌아오다

흥미롭게도 <루니 툰: 백 인투 액션>에서 되살아오는 것은 벅스 버니만이 아니다. 새로운 코미디물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는 워너브러더스사의 제작회의에서 대피 덕을 해고하고 벅스의 새 파트너를 찾자는 결론이 나오고, 지시에 따라 대피를 쫓아낸 코미디과 담당 제작자 케이트(제나 엘프만)는 다시 대피 덕을 찾아와야만 하는데, 그 와중에 대피 덕이 찾은 새 짝, 스턴트 맨을 꿈꾸는 워너브러더스사의 경비원, 디제이 드레이크(브랜드 프레이저)의 아버지, 스파이영화로 유명한 왕년의 인기배우인 데미안 드레이크(티모시 달튼)가 진짜 첩보원임이 밝혀지고 어찌하여 이들이 라스베이거스, 파리, 아프리카의 정글을 누비는 보물 찾기 모험에 얽히게 된다는 스토리에서 알 수 있듯, 익숙한 영화사의 기억과 스타일들이 총집합했다. 조 단테 감독은 시리즈나 <인디아나 존스>, 심지어 히치콕의 <싸이코>를 유서 깊은 워너브러더스의 세트에서 최첨단의 테크놀로지와 B급영화의 감수성으로 되살려내서 벅스 버니 세대를 위한 종합선물세트를 선사하고 있다.

영화사의 정글 속에서 액션을 펼치는 이들 카툰 캐릭터들을 주연급으로 그려낸 것은 애니메이션팀과 특수효과팀의 몫. 전통적인 2D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캐릭터들을 3차원의 영화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새롭게 개발된 조명 효과 소프트웨어 등 첨단기술이 빛을 발한다. 정작 어려움을 겪은 것은 가상의 캐릭터들을 염두에 두고 연기해야 했던 배우들이다. 배우들의 연기를 돕기 위해 퍼펫 마스터들이 동원되기도 했는데, 대피 덕과 놀라운 앙상블 연기를 보여준 브랜든 프레이저는 그저 어릴적 흠모하던 카툰 캐릭터들과 공연할 수 있었던 게 영광일 뿐이라고. 특수효과 기술의 발전에는 끝이 없다는 애니메이션 디렉터, 에릭 골드버그의 장담이 사실이라면 추억 속의 영화, 만화스타들이 21세기의 감성으로 부활하길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성싶다.

감독 조 단테 인터뷰 인용과 패러디의 향연

처음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는데,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는지.

상당히 도전적인 일이었다. 20년대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 처음 나온 이래 많은 기술 발전이 있었지만, 요즘엔 특수효과 같은 후반작업의 비중이 상당히 크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제작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인데, 1년 반 정도의 제작기간 동안 언제 작품이 완성되는 것인지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이 영화는 영화사에 대한 인용으로 가득하다. 가히 영화에 관한 영화라고 할 만한데.

원래 장르 패러디는 루니 툰 카툰 시리즈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번 영화를 보면 마치 여러 편의 만화를 한꺼번에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할리우드, 라스베이거스, 정글 등에서 벌어지는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각기 다른 장르 형식을 차용해서 만들었을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현상에 대한 패러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개인적으로 카툰을 좋아하는지.

60년대 말까지 극장에서 장편 만화들을 보곤 했는데, 그때 나온 카툰들은 그저 그랬다. 대신 TV에서 재방송한 30, 40년대 흑백 만화를 많이 봤는데, 휠씬 매력적이었다. 요즘은 워너브러더스가 독립적인 TV 채널을 만들면서, 다른 네트워크에 만화 배급을 중단해서 워너 채널이 아니고서는 루니 툰 시리즈를 보기 힘들어졌다. 카툰 네트워크나 다른 장편 만화 등이 많아져서 이래저래 경쟁이 심해지기도 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루니 툰 특유의 날카로운 유머도 사라졌다. 이번 영화에서는 30년대 루니 툰 시리즈의 감성을 되살리려고 노력했다.

이번 영화뿐 아니라 줄곧 <그렘린>을 위시한 판타지영화들을 많이 만들어왔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판타지영화를 많이 만든 건 사실이다. 내가 판타지영화로 돈을 많이 벌게 해줬으니까 계속 그런 작업만 들어온다. (웃음) 사실 판타지 장르를 좋아하는 것은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와 맞닿아 잇다. 어렸을 때부터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는 영화들을 좋아했다. 이 영화도 현실에서는 볼 수 없고, 일어날 수 없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내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영화와 비슷하다. 단 하나 차이가 있다면 벅스 버니는 상상의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이다. 알다시피 벅스 버니는 슈퍼스타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