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이상하다. 지난 11월8일 LA의 한 극장에서 전세계 기자를 대상으로 열린 <더 캣> 시사회 풍경은 남달랐다. 500석 정도 극장의 절반 정도에 어린이들이 자리를 잡았다. ‘어, 이거 극장을 잘못 찾은 게 아닐까?’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동행한 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더 캣>이 어린이를 주관객으로 삼는 영화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드림웍스에서 학교신문에 기사를 쓰는 초등학생을 초청했고 아이들이 영화를 보고 평도 쓰고 인터뷰도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더 캣>의 주연배우 마이크 마이어스는 ‘오직’ 어린이들하고만 인터뷰를 한단다. 영리한 마케팅이라고 해야 할까? 하긴 아이들이 졸라대면 부모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극장에 가는 수밖에. 영화를 보고 나자 드림웍스가 왜 이런 마케팅을 시도했는지 납득이 갔다. 어른들이 지루해하는 장면마다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평론가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지만 미국에서 추수감사절 연휴기간(11월21∼23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3800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이유도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탓일 것이다.
고양이가 된 오스틴 파워
<더 캣>은 2000년 미국 최고의 흥행작이 됐던 <그린치>의 후속편 성격이 강한 영화다. <더 캣>과 <그린치>는 일단 원작자가 같다. 초등학교에서 매년 ‘닥터 수스 데이’를 개최할 정도로 미국인들의 애정이 극진한 그림책 작가 닥터 수스(본명 테오도르 S. 가이젤)가 1957년 출간한 <더 캣 인 더 햇>은 오늘날에도 하드커버 아동용 도서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드는 클래식. 미국의 초등학교 1학년생이 알아야 할 220여개 단어로 이뤄진 쉬운 책이면서 이야기가 흥미롭고 운율의 배치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린치>로 성공의 단맛을 본 제작진이 이런 원작을 내버려둘 리 없었다. <그린치>의 제작자 브라이언 그레이저는 특수분장으로 동화의 세계를 구현하는 전략을 다시 한번 동원했고 <그린치>의 짐 캐리를 대신할 인물로 마이크 마이어스를 지목했다. 짐 캐리가 녹색괴물 그린치가 됐듯 <더 캣>에서 마이크 마이어스는 빨간 나비넥타이를 맨 고양이 인간으로 등장한다. 이를 위해 매번 2시간30분씩 털을 붙이고 다듬었지만 마이크 마이어스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마이크 마이어스는 “<오스틴 파워즈>의 ‘팻 배스터드’를 연기할 때는 분장에 5시간씩 걸렸다”며 여유를 부렸다고 한다.
마이크 마이어스가 분장한 고양이 인간은 온갖 신기한 신기한 쇼를 보여준다. 영화는 마이크 마이어스의 원맨쇼에 상당 부분 의지하고 있다.
팀 버튼식 총 천연색 세트
<더 캣>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집안을 어지럽히는 데 선수인 아들 콘래드와 깔끔한 새침데기 딸 샐리, 두 남매를 홀로 키우는 어머니에게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 번째는 한집에 살아볼까 생각 중인 이웃집 남자가 콘래드를 기숙사가 딸린 사관학교에 보내도록 권유하고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정리정돈 안 된 것을 참지 못하는 직장 상사가 집으로 찾아오겠다고 한 것이다. 직장 상사가 찾아오기로 한 그날, 갑자기 상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모자를 쓴 고양이 인간이 나타나 콘래드와 샐리에게 즐겁게 놀자고 유혹하는 것이다. 결국 고양이 인간이 일으키는 소동은 아이들이 어머니가 봉착한 문제를 해결하도록 만든다. 이웃집 남자의 검은 속셈이 탄로나고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남매는 서로 아끼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더 캣>에서 이야기는 중요한 게 아니다. <더 캣>은 한마디로 ‘프로덕션디자인의 영화’로 불릴 만하다. 31가지 종류가 있다는 모 아이스크림 체인을 연상하면 딱 맞을 알록달록한 색채에 장난감처럼 꾸민 세트는 그냥 예쁘다는 말로 부족하다. 누구라도 그 달콤함에 입맛을 다실 법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그림 같은 마을 풍경에서 <가위손>을 연상할 수도 있는데 아닌 게 아니라 <더 캣>의 감독 보 웰치는 <가위손> <배트맨2> <맨 인 블랙> 등에서 프로덕션디자인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비틀쥬스>부터 팀 버튼과 작업했던 보 웰치를 감독으로 발탁한 이유는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그린치>를 본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론 하워드가 아니라 팀 버튼이 연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표현했을 만큼 닥터 수스의 동화는 팀 버튼과 궁합이 맞아 보였다. 사정상 팀 버튼이 안 된다면 보 웰치에게 맡겨볼 만한 프로젝트였던 셈이다. 아쉬운 것은 보 웰치가 프로덕션디자인만큼 연출에 솜씨를 발휘하진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대다수 동양인에게 <더 캣>의 동양인 유모 캐릭터는 불쾌하게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아이들을 돌보러와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낮잠만 자는 유모를 등장시키는데 아무리 웃겨보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인물이라지만 인종적 편견이 숨어 있음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 같다. <더 캣>은 국내에서 12월31일 개봉할 예정이다.
[인터뷰 말말말] "나 아직 그렇게 망가지지 않았어요!"
11월9일 유니버설스튜디오에서 이뤄진 인터뷰는 감독 보 웰치와 출연배우 알렉 볼드윈, 켈리 프레스톤, 스펜서 브레슬린, 다코타 패닝 등 5명이 차례로 한국 기자들이 모인 테이블에 들어오는 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에서 나온 흥미로운 답변들.
알렉 볼드윈(이웃집 남자 로렌스 퀸 역)
엄청나게 배가 나온 남자로 나왔는데 실제 내 배는 아니다. 아직 그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다. 내가 코미디 연기쪽을 더 파고들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요즘 중년 배우들은 진지한 드라마에서 연기할 기회가 차츰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스릴러나 액션 등 다른 장르에서 연기를 한다. 마이클 더글러스는 스릴러를 하고 멜 깁슨은 액션영화를 한다. 관객도 마흔다섯살 된 중년 남녀가 사랑하는 장면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랑 이야기는 젊은 사람들의 몫이 됐다. 사랑은 애시튼 커처나 브리트니 머피가 하고, 중년 연기자는 범죄스릴러에 출연한다. 나도 젊었을 때는 키스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제는 아들이 키스하는 걸 뜯어말리는 아버지 역할을 하고 있다.
켈리 프레스톤(어머니 역, <제리 맥과이어> <트윈스> 등 출연)
책에서 어머니의 비중은 작다. 내내 등장하지 않다가 끝에만 나온다. 하지만 영화는 다르다. 이 영화의 장점은 판타지적 요소와 현실적인 요소를 잘 섞은 것에 있는데 일하면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 부각됐다. 실제로 일하면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들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있다.
보 웰치(감독)
팀 버튼은 내게 많은 영향을 줬다. <비틀쥬스> 촬영장을 생각해보면, 그때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미쳤다고 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영화랑 너무 많이 달랐으니까. 하지만 <비틀쥬스>는 내게 영화에 대한 눈을 뜨게 만든 작품이다. 팀 버튼은 표현주의적 영화 디자인을 보여줬고 남들이 뭐라든 뒤돌아보지 않고 밀어붙였다. 확실히 모든 영화에는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 영화가 아무리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더라도 독자적인 디자인이 있어야 한다. 눈에 보이든 아니든 영화에선 독자적인 디자인이 중요하다.
다코타 패닝(샐리 역, <아이 엠 샘> 출연)
5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고 3년 넘게 연기를 했다. 좋아하는 배우는 조디 포스터, 홀리 헌터, 줄리아 로버츠, 카메론 디아즈 등. 장래의 꿈은 오스카상을 받는 것이다.
스펜서 브레슬린(콘래드 역, <미트 페어런츠> 출연)
온 가족이 디즈니랜드로 놀러가기로 한 날, 프로듀서가 만나자고 해서 오디션을 봤다. 오디션을 보고 디즈니랜드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콘래드 역을 맡게 됐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그날은 정말 즐거운 날이었다. 연기는 우연히 시작했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오디션을 보라는 권유를 받고 광고에 출연했다. 그때가 3살 때였는데 찰스 버클리(농구선수)와 맥도널드 CF를 찍는데 “아저씨, 유명한 야구선수죠?”라고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