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카메라 너머 관객을 본다,<오구> 배우 김경익
2003-12-03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사진 : 정진환

김경익은 상당히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들고 왔다. 대본도 있고, 책도 있지만, 가장 많이 들어 있는 건 <오구>의 티켓이라고 했다. <오구>에 출연한 대다수 배우들이 지금 밀양에 있기 때문에 서울 사는 그 친척들에게 티켓을 직접 전해주고 있다고. 그는 꽤나 귀찮을지 모르는 그런 일을 하면서도 “우리 일을 위해서는 뭐든지 하고 싶고, 해야 한다. 정신없이 바빠도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우리’는 김경익이 십년 가까이 몸담아온 연희단 거리패와 극단을 이끄는 이윤택 감독을 뜻하는 단어였을 것이다.

<오구>는 연출가 이윤택이 자신의 연극을 직접 각색하고 감독한 영화다. 오전에는 그리스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연습하고, 낮과 밤에는 <오구>를 찍으면서도, 그리고 알몸으로 장터를 뛰고 썩은 물이 고인 못에 몸을 담가 피부병을 얻으면서도, 김경익은 언제나 함께해온 극단 사람들이 있어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는 단 두편. <처녀들의 저녁식사>에서 김여진에게 치근거리는 동료 연구원과 설경구가 고문하는 <박하사탕>의 운동권 대학생이 그가 연기한 인물이다.

비중은 작아도 기억에 남을 만한 연기였지만, 김경익은 연극과 영화의 연기를 나누는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연극 연기라고 하면 오버한다고들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 감정이 차 있지 않은데 표현만 넘치면 그게 오버다.” 그 때문에 김경익은 서로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만든 <오구>를 좋은 영화라고 믿는다. “<오구>의 배우들은 카메라를 보지 않는다. 카메라 너머 관객을 본다. 생명력이 스크린 밖으로 확확 뿜어나온다.”

이렇게 김경익은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연기보다는 전체 모양새에 더 비중을 두었다. 그는 연출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경익은 대학을 졸업하고 무사히 직장에 다니다가 “죽기 전에 의미있는 일을 찾아야 할 것 같아서” 연극을 택했다. 시작은 연기였지만, 하고 싶은 건 연출이었고, 지금은 두 가지 일을 같이 하고 있다.

갑자기 이승에 떨어져서 어리둥절한 저승사자와 사랑하는 여자를 지켜주지 못한 자책감에 저수지로 들어가는 청년. 김경익은 선하고 물기 많은 이목구비로 이 두 남자, 알고 보면 한 남자를 절절하게 연기했고, 그걸로도 한 사람 삶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경익은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살 수밖에 없다. 연기나 연출이 아닌, 연극을 좋아하므로. 그가 바라는 건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는데, 그간의 삶이 그림처럼 지나갔다. 정말 죽음이 왔을 때, 내 공연들이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는 천한 광대의 놀음이더라도 보고 가는 사람들이 힘을 얻는 공연을 하고 싶다. 그것은 많은 이들이 원하는 공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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