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곽재용 감독이 만난 <사토라레>의 모토히로 가즈유키 감독 [1]
2003-12-05
글 : 김의찬 (영화평론가)
감독들은 모두 사토라레 같다

빔 벤더스 감독의 <베를린 천사의 시>(1987)엔 이런 장면이 있다. 지하철에 있는 승객들은 각기 뭔가 열심히 고민하고 있다. 행복한 고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슬픔과 분노, 좌절에 빠진 사람도 있는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천사는 절망에 빠진 인간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는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새로운 희망이 생명력을 얻는 것이다. 영화 <사토라레>의 주인공 사토미 앞에 천사가 나타난다면 천사는 스스로의 능력이 쓸모없음을 알게 된 뒤 개탄할지 모른다. ‘사토라레’는 자신의 생각을 사념파 형태로 전환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존재. 다시 말해서 마음이 타인에게 그대로 읽히는 것이다. 영화 <사토라레> 홍보를 위해 국내를 방문한 모토히로 가즈유키(本廣克之) 감독에게 “혹시 감독 자신이 사토라레 아닙니까?”라며 질문을 던진 이가 있다. <엽기적인 그녀>와 <클래식> 등을 만든 곽재용 감독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각기 대중영화를 만들고 있는 곽재용 감독과 모토히로 감독은 타인들이 알 수 없는 비밀스런 속내를 둘만의 대화에서 은근히 털어놓았다.

모토히로 가즈유키(이하 모토히로) 뵐 수 있어서 너무나 반갑습니다.

곽재용(이하 곽) 저야말로 꼭 만나고 싶던 분을 만나서 좋습니다.

모토히로 현재 곽 감독님은 촬영하고 있는 영화가 있는 걸로 아는데요?

곽 배우 전지현씨가 경찰로 나오죠. 코미디이면서 슬픈 영화이기도 해요. 25% 정도 촬영을 했습니다. 모토히로 감독님의 <사토라레>는 언제 만든 영화인가요?

모토히로 2001년작입니다.

곽 일본 영화계는 영화계 형편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모토히로 감독님은 계속해서 흥행작을 만드는 것 같아요. 대단합니다.

모토히로 전 원래 TV연출자 출신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영화가 흥행해도 얼마만큼 흥행을 했다는 건지 감이 안 올 때가 많아요. 실감도 안 나고. 월급제로 급여를 받는 감독이라 흥행해도 벌이가 딱히 달라지지 않지요.

곽 TV프로그램 연출자에서 영화감독으로 전업이라, 일본 영화계는 TV와 영화의 영역구분이 뚜렷하지 않는지 궁금하네요.

모토히로 TV에서 영화쪽으로 옮겨서 일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죠. 그래서 성공한 케이스도 많고요. 이와이 순지 감독도 비슷하지요. 그런데 감독님께 꼭 질문하고 싶었던 게 있어요. <엽기적인 그녀>에서 UFO가 잠깐 나온 장면은 누구 아이디어였지요?

곽 제 아이디어였어요.

모토히로 전 UFO를 보기 위해서 <엽기적인 그녀>를 여러 번 봤어요! 아마 아직 그 사실을 모르는 관객도 많을걸요.

곽 제 영화를 보면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여럿 있지요. 영화 조연으로 나오는 어느 배우 분은 여러 장면에 각기 다른 캐릭터로 출연하기도 했지요.

모토히로 영화에서 세세하게 찾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아, 이런 장면이 있었던 거 같아 하고 다시 찾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일본에서 <엽기적인 그녀>를 아끼는 팬들은 이런 장면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경우도 적지 않더군요.

-곽재용/ 모토히로 감독님은 <춤추는 대수사선> 등 일본 관객에게 유독 사랑받는 연출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모토히로 일본엔 오락영화의 숫자가 적은 편이에요. 그러니 오락영화 한편이 만들어지고 어느 정도 흥행을 하면 쉽게 주목을 받게 되지요. 곽재용 감독님 영화도 일본에서 반응이 좋아요. <엽기적인 그녀>도 흥행이 잘됐고 내년에 개봉할 예정인 <클래식>도 여기저기 선전이 많이 되고 있어요. <춤추는 대수사선>의 배우였던 오다 유지도 <엽기적인 그녀>를 보고 “내가 본 최고의 오락영화”라고 말했는 걸요.

모토히로 가쓰유키 감독

곽 그러고보면 차태현과 오다 유지가 이미지가 비슷한 배우들인 거 같아요.

모토히로 그래요. 둘 다 코미디가 되는 배우들이지요.

곽 저는 <춤추는 대수사선>이 TV드라마처럼 만든 상업영화여서 재미있었어요. 그중에서도 교정기 낀 여배우가 눈에 띄던데….

모토히로 고이즈미 교코를 말씀하시는군요. 영화에선 어느 정도 설정된 이미지였지요. 고이즈미는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카리스마 아이돌’이라는 이미지로 기억되는 배우예요. 강한 이미지를 지닌 사람이죠. 전 영화에서 그녀에게 곤충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성공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곽 아, 예쁘면서도 아주 무섭더군요. 그런데 <춤추는 대수사선> 개봉할 때도 한국에 오셨나요?

모토히로 안 왔어요. 영화와 관련해선 처음 방문이에요. 홍콩엔 몇번 간 적 있어요.

곽 전 영화 관련해서만 일본에 4번 갔어요. 도쿄, 유바리영화제, 그리고 홍보차 갔었죠.

모토히로 많이 다니셨군요! <엽기적인 그녀> 때도 오셨나요?

곽 홍보차 도쿄, 오사카 등에 갔어요.

모토히로 전 오늘로 한국에서 모든 일정이 끝나고 내일 일본에 돌아가요. <춤추는 대수사선2>(2003)인터내셔널 버전을 만드느라 미국에 갔다가 한국에 들른 셈이에요. <춤추는 대수사선2> 인터내셔널 버전은 편집을 해서 영화를 20분 정도 짧게 만든 거지요.

곽 언어는 영어인가요 아니면 일본어인가요?

모토히로 일본어지요. 대신 영어자막이 들어가요. 미국의 메이저급 회사에서 수입한다고 하면 미국 관객을 위해 더빙할 수도 있고요. 지금 의논 중이에요. <엽기적인 그녀>는 미국 개봉계획이 없나요?

곽 어느 회사에서 리메이크 판권을 산 것으로 알고 있어요. 오리지널 영화의 개봉은 잘 모르겠어요. <춤추는 대수사선>은 인터내셔널 버전이 없나요?

모토히로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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