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퀴어 다큐멘터리 상영전, 10개국 작품 18편 소개
2003-12-05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서울 퀴어아카이브가 “퀴어 베리테-레즈비언, 게이 다큐멘터리의 지도그리기”라는 주제하에 7일(일)까지 아트시네마에서 상영회를 갖는다. 성적 소수자들의 삶과 정치학을 다룬 10개국의 다큐멘터리 18편을 통해 ‘적극적인 개입의 장’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무엇보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대중문화의 주류 안에서 게이, 레즈비언의 영토를 구축해나가는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들이다. 국내에서도 상영되어 인기를 모았던 영화 <헤드윅>에 대한 다큐멘터리 <좋든 싫든: 헤드윅 이야기>는 록밴드 ‘헤드윅 앤 앵그리인치’의 역사를 다룬 것이자, 극영화 <헤드윅>의 메이킹 다큐멘터리 역할을 한다.

밴드의 결성과정과 최초 공연 자료, 연이은 관객의 반응, 영화의 제작과정, 선댄스영화제와 로스앤젤레스 게이영화제에서의 상영에 이르기까지 극영화의 바탕이 된 모든 사실을 다룬다. 헤드윅이자 주연과 감독을 겸한 존 미첼 카메론 외에도 밴드 또는 영화제작과 관련된 주요 인물들이 등장해 생생한 ‘헤드윅 스토리’를 전해준다. <니카라과의 호모들>은 니카라과에서 게이, 레즈비언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여 인기를 얻었던 시트콤 <섹스토 센티도>의 일부와 그에 대한 메이킹 다큐멘터리 <노베라, 노베라>로 구성되어 있다.

시트콤 <섹스토 센티도>는 엄격한 가톨릭주의로 무장되어 있는 자국 내에서 70% 이상의 시청률을 올렸으며, <노베라, 노베라>는 그 수용과 반향에 대해 기록한다. 한편 <‘필라델피아’, 그후 십년>은 에이즈 환자의 고뇌와 소외, 투쟁의 과정을 보여주었던 톰 행크스 주연의 할리우드영화 <필라델피아>에 대한 후기이다. <‘필라델피아’, 그후 십년>은 <필라델피아> 개봉 10년 뒤, 그 영화가 게이 문화에 어떤 영향력과 파급효과를 낳았는가를 다양한 층위에서 재고찰한다. <여전사들의 합창>은 음악에 초점을 맞춰 레즈비언의 문화적 활동을 계보화한다. 로니 길버트, 홀리 니어, 인디고 걸즈, 애니 디 프랑코 등 장르에 상관없이 미국 주류음악 문화 속에서 주요하게 활동해온 레즈비언 여성 뮤지션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음악이 갖는 의의도 같이 설명한다.

‘가족’, ‘인종’, ‘성장’과 맞닿은 영화들도 선보인다. 성전환자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의 아들이 직접 카메라에 담은 노르웨이의 다큐멘터리 <나의 아버지의 모든 것>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한다. “난 여자 옷을 입은 남자가 아냐. 여자 옷을 입은 여자인 거야” 또는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인 거야”라고 설득한다. 공적으로는 덕망 높은 의사 이벤스의 이름으로, 사적으로는 여장을 하고 쇼핑을 즐기는 에스더의 이름으로, 양가의 삶을 살아가는 아버지의 두 모습이 영화 속에 담긴다. 감독을 자처한 아들은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그 모습을 인정하면서도 전통적인 가족관계의 관성으로 괴로워한다. 가족이라는 범주를 통해 성 정체성의 이해를 경험하도록 하는 영화이다. <이방인 형제: 바야드 러스틴의 생애>는 인종차별과 성적 편견의 이중고에 처한 삶을 살았던 흑인 인권운동가 바야드 러스틴을 주인공으로 한다. 마틴 루터 킹의 조력자였음에도 게이였기 때문에 정당한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했던 그의 불운한 삶을 되돌아본다. <걱정마, 그건 지나갈거야>는 외로운 10대의 삶을 살았던 레즈비언 감독 시실리아 낭트-포크와 현재를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세명의 레즈비언 소녀들이 함께 만드는 영화이다. 14살 무렵, 스웨덴의 게이 잡지에 “남자와 여자 모두한테 끌리는 여자아이 혹시 있니?”라고 물었던 감독 시실리아 낭트-포크는 15년이 지난 뒤 똑같은 문구의 광고를 다시 실었고, 거기에 응해온 사람들 중 세명의 소녀에게 카메라를 주고는 ‘영상일기’를 쓰게 한다.

이 밖에도 가부장제와 맞서 싸운 독일의 여성단체 ‘거리의 기사들’의 활동을 재연과 인터뷰로 엮어 호평을 받은 <베를린의 여걸들>, 남성과 결혼하지 않기로 서약한 알바니아 여성과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는 또 다른 여성을 소재로 한 <파시케와 소피아> 등이 상영작에 포함되어 있다. 이후 15편의 작품은 지방에서도 순회 상영한다(문의: 02-3142-5626, www.sqf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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