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 사고의 여지를 남기지 않은 <매트릭스3 레볼루션>
<매트릭스3 레볼루션> 속의 혁명은 혁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역(逆)혁명에 가깝다(물론 이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매트릭스3 레볼루션>이 세계의 숨겨진 비밀을 당신에게 알려줄 거라고 성급히 기대하지는 말라. 지난 세기에 시작된 이 시리즈물의 인간 내면을 향한 격렬한 여정은 스펙터클의 대혼란 속에서 이제 한 차례의 연습을 마무리짓고 있는 듯 보인다.
사실 <매트릭스> 본편이 애초에 보여준 독창성은 이 영화가 시각적 혼란보다는 형이상학적 내용을 통해 우리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는 데 있다. 모순되게 들리지만, 가히 천재적이라고 할 만한 <매트릭스> 본편은 총알의 속도에 가까운 슬로모션을 통해 영화사상 가장 기억할 만한 “폭력”장면을 펼쳐 보인 “지적인” 액션영화였던 것이다. 거기에다 <매트릭스> 본편은 90년대 후반의 두 가지 영화적 유행을 (비디오 게임의 이야기 구조를 따르는 영화적 조류와 맥루한적인 견지에서 역사를 바라보며 텔레비전 형태의 새로운 사이버-전체주의에 착안한 좀더 편집증적인 조류의 두 가지) 성공적으로 버무려놓았다.
닷컴 시대 천재들의 등장을 알린 <매트릭스>
무엇이 우리가 <매트릭스>에 그토록 열광하도록 만들었던가? 이 영화는 주도면밀하게 다문화적이고 (물론 가장 처음 홍콩영화의 창조성을 흡수한 할리우드영화 중 한편이기도 하다) 닷컴시대의 천재들을 미화하고 있으며, (1999년 당시를 돌이켜보건대) 시각효과에 있어 하나의 기술적 경의였다. 오랜 세월 인간의 실제 행위를 기록해온 카메라 촬영술과 새롭게 떠오른 컴퓨터그래픽 이미지, 실제 배우들과 그들의 스턴트 대역들, 그리고 실제 로케이션 장면들과 스튜디오 세트장면들을 결합해내기 위해 워쇼스키 형제가 감내해야 했을 복잡다단함을 생각해본다면, 영웅 해커 네오(키아누 리브스)와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가 컴퓨터에 의해 구현된 가상의 현실을 상대로 펼치는 이 무용담은 아마도 영화 역사상 가장 자연스러운 애니메이션영화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난 지금 너의 정신을 해방시키려는 거야”라는 영적 지도자 모피어스의 주장이 당신의 흥미를 더욱 자극했던 것이다.
하지만 <매트릭스3 레볼루션>에서의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는 전편에 비해 그 비중이 커진 니오베(제이다 핀켓 스미스)와 짝을 이룬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주창하는 계급이론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한다. 사실 네오가 매트릭스에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매트릭스 내부에 (혹은 다른 곳 어디에) 남겨져 있다는 영화의 첫 설정 자체가 하나의 미스터리이다. 뒤바뀐 오라클의 모습은 글로리아 포스터의 사망으로 인한 메리 앨리스로의 배역 교체를 설명하기 위해 의도적인 설정이라 치더라도,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별거 아니야”라는 뜻으로 시온 사람들의 대화 속에 은근슬쩍 기어들어 와 있는 “It’s the big bupkes-nada”(역자: bupkes, nada는 모두 nothing을 의미하는 고어 및 은어)라는 할리우드 은어의 존재는 정말 하나의 미스터리라 할 것이다. 그리고 “전체 방어 시스템을 상대로 겨우 전함 한척이 무슨 희망이 되겠는가?” 따위의 대사나 지껄이는 코넬 웨스트의 끈질긴 등장 역시 그 못지않은 미스터리이다.
무엇이 진짜 희망인가? 네오를 구하기 위해 지하세계로 들어선 트리니티는 우선 유로트래시 음악이 죽음의 향연처럼 울려퍼지는 디스코텍에서 메로빈지언(람베르 윌슨)과 그의 배우자 페르세포네(모니카 벨루치)를 상대로 전투를 치러야 한다. 여지없이 등장하는 트리니티의 공중 발차기와 완벽한 구형에 가까운 페르세포네의 빵빵한 가슴, 그리고 지독하리만치 악의에 찬 메로빈지언의 중얼거림 모두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메로빈지언은 오라클의 한쪽 눈을 가져오라고 요구하지만 트리니티는 시간낭비하기 싫다는 듯 총을 빼들고, 이제 한바탕 총격전이 벌어진다. “그녀가 우리 모두를 죽여야 한다면 그녀는 정말로 사랑에 빠진 거야”라는 페르세포네의 설명처럼 <매트릭스3 레볼루션>은 초반 한 시간 동안 사랑이라든지 카르마라든지 하는 단어들의 의미를 분석한다거나 오라클이 미래를 알고 있었는지 아닌지 아님 알고 모르고가 차이가 있는지 없는지 등등에 어리둥절해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굉장한 전투장면 뒤에 남은 것
간단히 말해서 영화 <매트릭스3 레볼루션>은 시온의 병사들이 육중한 전투 로봇에 자신들의 몸을 싣고 무지막지하게 밀려드는 기계충 무리를 상대로 포화를 퍼부어대기 전까지 전혀 딴짓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에서 우리는 버로스의 SF소설 속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위용마저 느끼게 되는데, 이쯤 되면 필자의 해설 역시 버로스를 모방한 학부 때의 습작을 닮아가기 시작한다. “BX 케이블, 오징어 스파게티, 전기 충격파! 기관총, 기계 지옥, 최후의 성전! 지긋지긋한 주황빛-푸른빛 안광들, 무시무시한 촉수들의 회오리여!!!” 니오베의 우주선이 나타나 전장을 정적으로 몰아넣기까지 한 시간쯤 이어지는 이 전투장면은 초반부에 비해 훨씬 나을 뿐 아니라 한마디로 굉장하다고 할 수 있겠다.
<매트릭스2 레볼루션>은 그 이야기 구조면에서 <반지의 제왕> 최종편을 예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곤도르 방어는 여기서 시온에서의 전투로, 둠산으로 향하는 샘과 프로도의 이야기는 여기서 홍수와도 같은 기계충들의 화염을 거슬러 어둠의 심장, 검청색 기계 도시의 영토로 향하는 네오와 트리니티의 이야기로 각각 치환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실체의 사막인가? 아님 네오와 (말하자면 사우론의 존재에 해당하는) 스미스 요원이 들이치는 번개와 폭풍우 속에서 공중 격투를 벌인 끝에 추락한 진흙 웅덩이마저 복구된 매트릭스 속에 존재하는 초록빛 기호의 협곡일 뿐이라는 것인가? 무슨 상관인가. 아무튼 그래픽 이미지는 훌륭하지 않은가!
<매트릭스3 레볼루션> 속에서 특수분장을 통해 만들어진 상처들은 가히 예술의 경지를 보여주며, 영화 속에 즐비한 시신들은 <킬 빌> 속의 그것보다도 훨씬 뻔뻔스럽게 미화되어 있다. <매트릭스3 레볼루션>은 (가장 부정적인 형태의 니힐리즘이라고 할) 최고의 사랑과 가장 설명하기 힘든 우주론을 함께 보여준다. 그리고 휘황찬란한 만신전의 약속과도 같은 광활한 하늘과 그 속으로 펼쳐진 무지개는 피땀으로 적셔진 도피처 시온의 존재를 허용하는 것과 동시에 또 다른 매트릭스 후속편이 이어질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매트릭스> 시리즈를 현대판 성경 서사극이라고 (헐뜯기라도 하듯) 말한 동료 비평가의 지적은 물론 옳은 것이겠지만, 당신이 영화 속의 육중하고 어리석기까지 한 테크놀로지를 무시해버리기로 한다면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마치 고약한 대중 선동가와 같이 영화 <매트릭스3 레볼루션>은 지식에 대한 진실의 우위를 주창한다. 하지만 일단 영화가 당신 앞에서 가동(?)되기 시작하면, 가히 “승리”라고 평가할 만한 영화 속의 비주얼들이 당신에게 그 어떤 추상적인 사고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곧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