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배우도 스탭도 알 만한 인물이 별로 없는 이 ‘B급 블록버스터’는 전인미답의 영토로 탈주하기보다 한물간 유행을 답습하는 데 매진한다. 전혀 긴장감 없는 체이스신이나 공들였지만 시원찮은 나무다리 액션은 20년 전 <인디아나 존스>를 뒤쫓고 있고, 3D-미니어처-애니 메트로닉의 앙상블은 <매트릭스3>조차 무덤덤했을 관객에겐 심히 앙상한 수준이다. 영화는 비주얼이 아닌 ‘알고 보니’식 내러티브에서 간신히 추진력을 얻을 뿐이다. 알고 보니 약혼자는 스위스 아닌 중남미로 가버렸고, 알고 보니 그는 코로나도 반군을 지원하는 미국쪽 무기상이었고, 알고 보니 정부군의 스파이였다. 이런 거듭되는 반전과 현지 미국 기자와의 새로운 로맨스는 ‘애인 찾아 삼만리’를 ‘고무신 거꾸로 신기’로 탈바꿈시키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 과정마저 여전사의 스릴 액션보다 어설픈 유머와 마구잡이 억지로 채워짐에 따라 남녀 주인공이 고생 끝에 키스를 나눌 때도 끝까지 관람한 뿌듯함은 크지 않다.
무엇보다 <인디펜던스 데이> 제작진의 도장을 찍는 건 너무나 미국적인 정치색이다. 체 게바라풍의 반군지도자를 도와 후세인 같은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미국의 선남선녀는 속보이게도 일시에, 우발적으로, 민중해방의 주역이 된다. 중남미에 저지른 미국의 과오를 이라크전에 빗대어 허구적으로 보상하는 식인데, 제3세계 배경의 할리우드 액션물이 제3세계 관객의 영혼을 잠식하리라 믿는 듯한 그 순진한 노골성도 이젠 약발이 다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