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의 관객에게 ‘끝없이 바라보거나 끝없이 문답하는 영화’, ‘철학하는 영화’로 오랫동안 이미지를 굳혀온 프랑스영화가 몇년 전부터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 시리즈, <택시>(사진) 시리즈, <벨파고> <블리트> 등 최근 한국 개봉한 <야마카시>까지 거대 예산이 투입된 프랑스 오락영화들은 공공연히 할리우드 오락영화와의 정면승부를 선포한다. 그러나 외국 관객 입장에서는 의아스럽기도 하다. 액션, 유머 같은 흥행 요소에서 할리우드를 능가하는 파괴력을 지닌 것도 아니고 보편적 감수성에 대한 호소력도 처지는 이 프랑스영화들은 어떤 목표와 계산 아래 누구의 돈으로 만들어지는 것인가?
할리우드 문법에 익숙해진 관객을 잡아라
제작비 인플레이션을 이끄는 이같은 대형영화들이 프랑스에서 만들어지는 첫 번째 요인은 변화하는 관객취향이다. 나이에 큰 차이없이 두터운 영화관객층을 자랑하는 프랑스지만 할리우드 문법에 익숙한 25살 이하의 젊은 세대가 전체 관객의 40%에 달하는 상황을 제작사들이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30대와 40대 초반의 관객까지 끌어들일 흡인력이 있는 영화라면 한해 최고 흥행작 관객 수가 1천만명에 이르는 프랑스 내에서 몇 백만명의 관객 동원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는 승산있는 게임인 셈이다. 프랑스 내 역대 흥행성적 20위를 놓고 볼 때 대부분 50∼60년대의 영화들이 차지하는 이 리스트에 겨우 얼굴을 내민 영화 세편 중 두편이 최근에 제작된 프랑스산 블록버스터라 할 수 있는 영화-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 미션 클레오파트라>(역대 흥행성적 8위), <택시2>(20위)- 라는 사실은 제작자들의 논리를 증명해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왼쪽부터 <아스테릭스: 미션 클레오파트라>, <야마카시>
누가 뭐래도 프랑스에서 제작비 상승을 이끈 제작사는 뤽 베송의 유로파(Europa Corp)와 역시 영화감독 출신인 클로드 베리의 렌 프로덕션(Renn Productions)을 꼽을 수 있다. 이 두 제작사는 프랑스 영화계 최대 프랜차이즈인 <택시> 시리즈와 <아스테릭스> 시리즈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이 밖에도 <블리트> <블루베리> 등을 기획한 ‘프타트 렌느’나 <벨파고>의 필름 알랭 사르드, <크림슨 리버>의 고몽레장드 앙트르프리즈 역시 주요 프로덕션들에 속한다.
이들 프로덕션은 기본적으로 정부에서 모든 영화에 지원하는 진흥기금 외에 배급사나 TV채널들과의 연계를 통해 부담을 분산시키고 있다. 유료 채널인 카날 플뤼스와 다수의 영화 채널을 보유한 위성방송 카날 새틀리트. 카날 새틀리트의 경쟁 위성방송사인 TPS, 상업방송인 TF1 등은 이런 고예산 영화의 자금을 대는 주요 파트너들이다. 이들은 공동제작이나 선구매를 통해 제작에 참여한다. 공영방송인 프랑스2와 프랑스3, 악테(ARTE) 등이 영화파트에서 전반적으로 예술성 높은 영화에 참여하는데 반해 이들 상업 채널들은 흥행성 높은 영화를 요구하는 시청자들을 위해 기꺼이 제작비를 대고 있다.
카날 플뤼스·TPS 등 상업 채널이 돈줄
지난 몇년간의 제작, 흥행, 수출 실적을 비교해볼 때 프랑스 내 영화의 대작화 경향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형 자국영화들의 흥행에 힘입어 모처럼만에 할리우드영화의 관객점유율을 50% 미만으로 끌어내리는 프랑스는 이를 큰 성공으로 자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장 르노와 함께 브누아 마지멜을 기용한 제작비 3천만유로의 <크림슨 리버2>가 내년 2월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고, 뱅상 카셀 주연의 <블루베리>, 마티외 카소비츠의 <바빌론 베이비즈>를 비롯해 20여편에 달하는 고예산 영화들이 제작 진행 중이거나 이미 완료상태이다. <아스테릭스 인 히스파니아> 역시 배우 겸 감독 제라르 주뇨를 기용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영화인들이 제작 고비용화에 따른 저예산 예술 영화의 위치와 제작사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 배급문제를 염려하는 목소리를 내고는 있지만, 초대형 와이드릴리스의 경우에도 총스크린 수(2002년 말 현재 5280개)의 20%선을 넘기지는 못하는 프랑스 영화배급 상황을 고려할 때 아직까지는 영화의 다양성이 위태로운 것으로는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프랑스 영화 역시 할리우드영화와의 경쟁 차원에서 이런 영화들은 필요하다는 논리가 실질적으로 먹혀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