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CJ엔터테인먼트 새 대표이사 박동호
2003-12-17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정진환

지난 12월1일 CJ엔터테인먼트가 박동호(48)씨를 새로운 대표이사로 맞았다. 1995년 CJ그룹이 처음 영화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멀티플렉스 관련 업무를 맡아 2000년 8월부터 CJ CGV 대표로 일했던 그는 이번 인사로 CJ엔터테인먼트, CJ CGV, 조이큐브 등 3개 회사의 대표 업무를 동시에 보게 됐다. 1980년 입사해 제일제당 기획실, 육가공본부, 멀티미디어사업부 등을 거쳐 23년간 CJ그룹에 몸담아온 박동호씨는 CGV극장 체인을 극장업계 1위로 올려놓으면서 그룹의 신임을 얻은 걸로 알려졌다. 올해 CGV는 관객 25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영화계의 관심이 박동호 대표 체제의 CJ엔터테인먼트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에 쏠리는 건 당연하다. 내년도 올해와 비슷한 투자규모라면 최소한 12편 이상의 영화가 박동호 대표 체제에서 제작되고 배급될 것이고 CGV 극장의 위용도 강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CJ엔터테인먼트 대표로 출근한 지 1주일밖에 안 된 그를 12월8일 만났다.

-CJ엔터테인먼트의 대표가 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

=짊어질 무게가 무겁다. 집중해야 할 일이 많고 규모가 커져서 부담이 많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내게 또 하나의 도전이라는 생각도 한다. 처음 멀티플렉스 사업을 맡았을 때처럼 이 도전을 잘 헤쳐가겠다는 의욕이 있다. CGV에서 일해왔지만 엔터테인먼트 업무를 지켜봤기 때문에 큰 무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사업다각화에 힘쓸 예정이다.

-사업다각화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인가.

=엔터테인먼트가 전체 산업에 끼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 각종 유통업체들이 엔터테인먼트를 끌어들이는 걸 봐라. 카드업체만 해도 극장과 제휴하는 카드가 대부분이다. 이동통신업체들도 그렇다. 다양한 콘텐츠를 수용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런 현상은 교육에서도 드러난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그냥 책으로 읽는 아이들은 별로 없지만 만화로, 애니메이션으로 나오면서 엄청난 히트작이 되지 않았나? 산업의 전 부문에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결합되는 추세고 서비스 업종의 비중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의 중요성, 콘텐츠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데 이런 기회를 잘 활용해서 사업을 해나가겠다.

-이강복 대표가 물러난 사건을 영화계에선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퇴진의 배경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강복 대표가 지나치게 스타가 됐기 때문에 주위의 견제를 받았으리라는 설, 이미경 이사가 엔터테인먼트 업무를 총지휘하기 위한 중간단계라는 설 등이 그것이다.

=전혀 안 맞는 얘기다. 이강복 대표는 그룹에서 4대 과제로 추진 중인 글로벌라이제이션 업무를 맡게 된 것이고 바깥 소문들은 억측일 뿐이다. 여기는 대기업인데 조직의 인사가 그런 식으로 이뤄질 수 있겠는가? 대기업에서 이런 보직 변경은 늘 있는 일이다.

-그동안은 CGV 대표를 맡았는데 올해 CJ엔터테인먼트와 CGV의 경영성과는 어떤가.

=엔터테인먼트쪽은 아직 업무 파악을 다 못한 상황이라 말하기 어렵고 CGV는 올해 1800억원 매출에 순익이 300억원 이상일 것 같다.

-CGV와 메가박스, 롯데 등 대기업이 운영하는 멀티플렉스 체인의 경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얼마 전 <낭만자객>을 메가박스와 롯데에서 걸지 않겠다고 했다가 취소한 사건도 있었는데.

=업계가 과당경쟁을 해서는 안 된다. 함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해야 하는데 서로 협의해가면서 문제를 푸는 수밖에 없다. 서로 얘기가 안 통하는 조직도 아니고 상대방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인식을 갖는 것이다. 다들 이런 문제를 포용할 수 있는 아량을 가진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낭만자객>의 문제가 불거진 건 이전에 CGV쪽이 <오! 브라더스>나 <영어완전정복> 등 다른 배급사 영화를 홀대한 데서 비롯됐다. 이런 일이 앞으로도 벌어질 수 있지 않나? 사소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앞으로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정짓긴 힘들겠지.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해결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CJ와 CGV가 각각 다른 목표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CGV는 해외 합작법인이고 CJ가 제작한 영화만 많이 걸어서는 장사가 될 수 없다. 명확한 분리원칙이 있다. 배급과 상영이 각각 경쟁력을 키워야지 한쪽에 의존해서는 실패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영화를 다 걸 수는 없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다보면 이런저런 일이 있게 마련이다.

-<오! 브라더스>의 경우 지난 추석 최고 흥행작이었다. 장사가 안 되는 영화를 걸지 않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이런 흥행작을 걸지 않은 것은 문제 아닌가.

=개별 영화를 거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프로그램 실무자의 판단이다. 프로그램팀이 회의를 하면서 흥행 가능성을 예측해서 무슨 영화를 상영할 건지 결정하는 것이다. 장사가 잘될 영화라고 판단했다면 상영했겠지만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다면 안 틀 수도 있는 거다. 경쟁사를 죽이기 위해 편파적으로 하는 걸 지속할 수는 없다. 당장 CGV의 손익에 영향을 끼치는 상황이 아닌가.

-경영스타일이 공격적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공격적이 아니라 적극적인 스타일이 맞는 것 같다. 준비를 할 때는 오래 생각하지만 일단 판단을 하면 신속하게 움직이는 편이다. 불합리한 것을 밀어붙이는 일은 없다. 앞에 나서는 일을 많이 하는 편도 아니어서 95년부터 CGV 일을 했는데도 영화계에서 얼굴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CGV가 다른 회사에 비해 활기찬 조직이라는 말은 많이 들었다. 바깥에서 처음 온 사람이 보면 정신없이 많이 움직이는 조직으로 보인다.

-CJ엔터테인먼트는 CGV와 분위기가 많이 다를 텐데.

=많이 다르다. 엔터테인먼트는 크리에이티브를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역량이 높은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데 최대한 그 역량을 발휘하도록 뒷받침할 생각이다.

-박동호 대표 체제의 엔터테인먼트가 어떻게 바뀔 것인가가 중요한 관심사다. 투자, 제작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봐도 되나.

=제작의 큰 틀은 변함이 없을 거다. 제작편수에서도 그렇고. 이강복 전 대표가 잘 다져놓은 곳이라 시너지 효과를 만들고 여러 가지 윈도를 활용하는 데 힘쓰는 정도다. 바뀌는 건 없다.

-지난해 CJ엔터테인먼트가 직접 제작에 뛰어들었다. <위대한 유산>을 만들었는데 영화계에선 CJ가 직접 제작하는 영화라면 <위대한 유산>보다 규모도 크고 과감한 시도를 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직접 제작하는 목적이 내부의 제작 역량을 키워보자는 것이다. 사원들 중 제작에 관심있는 친구들이 많은데 이런 기회를 주면 업무 파악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규모가 큰 영화는 자체 제작할 역량이 없다.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1년에 1∼2편 정도를 만드는 건데 그럴 수는 없다. 과감한 영화야말로 외부의 전문적 역량이 필요한 영화 아닌가.

-95년 CGV 업무를 맡기 전에는 영화와 무관한 일을 했는데 영화계 일이 적성에 잘 맞는 것 같나.

=적성에 잘 맞는다. 맞으니까 지금까지 온 거 같고. CJ에서 여러 가지 일을 맡아왔지만 내가 일을 하려면 나 자신을 흥분시킬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흥분해야 고객을 흥분시킬 수 있다. CGV 대표로 일할 때도 항상 그걸 강조했다. 고객을 흥분시키려면 자신이 느끼고 체험해야 한다.

-23년간 CJ에서 일했는데 그만두고 싶다거나 옮기고 싶다거나 한 적은 없었나.

=그런 일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래도 계속 일했던 건 시스템이 자부심을 갖고 근무할 여건을 마련해줬기 때문이다.

-CGV 대표로 있으면서 사원들에게 한달에 한권씩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라고 했던 걸로 안다. CJ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됐으니 CJ엔터테인먼트 직원들에게도 적용시키는 건가.

=그렇게 하고 있다. 요즘 좋은 책이 많이 나온다. 회사에 일하다보면 스스로 지식을 쌓는 일에 게을러지기 쉽다. 책을 통해 지식을 얻고 감성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 사원의 지적 능력이 올라가면 그게 기업의 경쟁력이 되는 것 아니겠나. 일종의 독서경영이다.

-언제부터 독서경영을 했나.

=2000년부터 해왔다. 우선 나부터도 책을 읽지 않으면 퇴보한다.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책 안에 길이 다 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느끼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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