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새 영화] <루니 툰:백 인 액션>
2003-12-26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영원한 ‘넘버 투’ 또 무슨 사고를?

영화에는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넘버 투’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캐릭터들이 종종 등장한다. 미국의 워너사가 40년대에 창조한 애니메이션 루니툰 시리즈의 대피 덕도 그 중 하나다. 언제나 쿨한 벅스 바니와 달리 요란스럽게 설치고 다니지만 사냥꾼 엘모어의 총탄을 비롯해 온갖 수난을 당하면서 스타일 다 구기는 검은 오리, 대피 덕. 사람처럼 늙어 죽지도 못하는 탓에 정말이지 ‘영원한’ 넘버 투로 살아가야 하는 이 대피의 슬프면서도 우스운 운명을 모티브로 루니 툰 시리즈의 실사 애니메이션 <루니 툰:백 인 액션>이 <스페이스 잼> 이후 7년 만에 극장에 돌아왔다.

워너사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절대강자인 벅스 바니에 가려져 지내온 대피는 어느날 부사장 케이트(지나 엘프만)로부터 해고당한다. 모든 계층에서 고른 사랑을 받는 벅스 바니와 달리 “오로지 루저(실패자)들에게만 사랑받는다”는 것이 그 이유. 조그만 두뇌에 자존심을 관할하는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이는 대피는 낙심할 새도 없이 넘버 투 근성을 발휘해 자신과 함께 해고된 스턴트 배우 지망생 디제이(브랜든 프레이저)에게 들러붙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납치사건으로 인해 디제이가 엄청난 음모에 휘말리면서 대피도 얼떨결에 모험에 휩쓸린다.

모든 실사 애니메이션의 운명이 그렇듯 <루니 툰:백 인 액션>에서도 무대의 주인은 실제 인물들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다. 근육질의 힘이 넘치는 브랜든 프레이저라 하더라도 커다란 상자에 깔렸다가 쥐포처럼 납작해진 몸에 공기를 불어넣거나 떨어져 나간 신체의 일부를 태연하게 갖다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촬영 스튜디오에서 라스베가스, 파리와 아프리카 정글까지의 갈짓자로 종횡무진하는 이 모험에서 항상 시끌벅적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건 대피 덕과 벅스 바니를 비롯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고 실제 인물들은 허덕거리며 쫓아가기 바쁘다. 그러니 실제인물인 악당 에크미 주식회사 회장(스티브 마틴)의 실패는 불보듯 뻔한 결과일 수밖에.

<루니 툰:백 인 액션>의 재미는 악당과의 한판 승부라는 큰 줄기보다 텔레비전 시리즈 때부터도 유명한 ‘어른 취향’의 지적인 유머가 버무려진 잔가지들에 있다. 벅스 바니가 샤워를 하다가 케이트를 보고 놀라는 장면이 베낀 <싸이코>의 유명한 샤워 장면을 비롯해 <스타워즈>의 광선검으로 변하는 벅스의 당근 등 고전영화의 패러디가 줄줄이 등장한다. 특히 루브르 박물관에서 벅스와 대피가 엘모어에게 쫓기며 달리의 <기억의 영속>, 뭉크의 <절규> 등 유명한 회화의 일부로 그림의 패턴과 스타일에 따라서 위장하는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그렘린> 시리즈를 비롯해 <이너 스페이스> <마티니> <스몰 솔져> 등 할리우드 안에서 조금씩 옆으로 새는 영화를 만들어 온 조 단테의 개성이 제법 잘 버무려진 작품이다. 2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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