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유럽공동체시대 젊은이들의 제자리 찾기, <스페니쉬 아파트먼트>
2003-12-30
글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E.U.시대 파리 젊은이, 바르셀로나의 ‘잡탕’아파트에서 길을 찾다.

당신의 국적은 무엇입니까? 현재 유럽의 젊은이들에게 이 질문은 조금 곤란하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맥도널드의 가격표가 ‘마르크’나 ‘리라’가 아닌 ‘유로’로 바뀐 이후 인생의 큰 결정을 내려야 하는 세대들에겐 더욱더. 자신의 미래를 불안하게 응시하던 프랑스 젊은이 자비에는 ‘성공하려면 떠나라’는 아버지 친구의 충고에 따라 스페인으로 1년간 유학생활을 시작한다. 사랑스러운 여자친구와 이혼한 부모 곁을 떠나 처음 생소한 나라에 발을 디딘 자비에의 앞길은 의외로 막막하다. 엄마가 소개해준 집은 그가 머무르기엔 사정이 있고 더듬거리는 스페인어로 찾아간 숙소들은 높은 가격에 비해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다. 결국 자비에는 유럽 각지에서 온 학생들이 공동으로 기거하는 아파트를 찾게 되고 “5년 뒤 자신의 모습을 말한다면?” 같은 엉뚱하고 심오한 질문을 통과한 뒤 그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한 여자와 이웃들의 고양이 찾기 대소동을 담은 경쾌한 코미디 <웬 더 캣츠 어웨이>(1996)를 감독했던 세드릭 클라피쉬 감독은 <스페니쉬 아파트먼트>에서도 유럽공동체시대 젊은이들이 겪는 혼란을 비교적 밝게 채색했다. 극중 자비에의 설명처럼 이 아파트는 “문화의 용광로”이자 “몸으로 부대끼며 세상을 배워가는” 곳이다. 남자 셋, 여자 셋(5명의 스트레이트와 한명의 게이)으로 구성된 룸메이트들은 국적도 짜맞춘 듯 다양하다. 벨기에의 ‘이사벨’, 영국의 ‘웬디’, 스페인의 ‘솔레다드’와 덴마크인 ‘라스’, 독일 총각 ‘토비아스’, 이탈리아 ‘알렉산드로’. 이처럼 <스페니쉬 아파트먼트>는 다문화가 혼재되어 있는 아파트의 풍경을 경쾌하고 코믹하게 쓸어담는다. 냉장고 속은 구획을 나누어 마치 자신의 영토처럼 이름이 적힌 깃발이 꽂혀 있고, 전화기 앞 벽에는 “지금 학교에 가고 집에 없어요”라는 말이 작은 국기그림 옆에 각국의 언어로 쓰여 있다. 또한 자유분방한 이탈리아 남자, 깔끔한 정리벽에 빈틈없는 독일 남자, 약간 보수적인 영국 여자, 직설적인 스페인 여자 등 적당히 각 민족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보여준다.

자비에는 사랑스러운 여자친구를 프랑스에 남겨두고 1년간의 스페인 유학길에 오른다.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지는 법. 자비에는 레즈비언인 이사벨에게 여자를 유혹하는 기술을 온몸으로 배우기도 한다. (왼쪽부터)

그러나 미국인에 멸시적인 태도를 보이던 영국 아가씨 웬디가 결국 털북숭이 미국인과 침대에서 뒹구는 등 이들의 국적과 정체성은 냉장고의 영역을 침범하듯 자연스럽게 서로 넘나든다. 코펜하겐, 로마, 베를린, 바르셀로나를 돌아다니면 캐스팅된 7명의 다국적 배우들은 모두 바르셀로나의 호텔에서 한 달 동안 함께 숙식했고, 이들 사이에서 벌어진 자연스러운 대화와 에피소드들의 여진은 영화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이처럼 ‘네 남자와 세 여자의 1년간의 동거’라는 구조는 거의 <프렌즈> 같은 청춘시트콤을 상상하기 쉽지만, 영화는 그보다는 자비에라는 한 청년의 제자리 찾기에 방점을 찍는다. 몸은 성인이지만 자신의 울타리 밖을 떠나본 적 없는 청년이 “천번도 넘게 같은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까지는” 익숙해질 수 없을 것 같았던 새로운 공간에 익숙해지는 1년의 변화를 성심껏 따라가는 것이다. 라디오 헤드의 <No Surprises>는 혼란스럽고 신산한 마음을 대변해주듯 영화 전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울려퍼진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촬영된 이 영화는 그 유명한 가우디의 건출물뿐 아니라 구엘공원 등 바르셀로나의 아름다운 풍광을 카메라에 담았다.

<팟럭 파티>(Pot Luck) 혹은 <유로 푸딩>(Euro Pudding) 등의 제목으로 소개되었던 이 영화의 국내 개봉제목인 <스페니쉬 아파트먼트>는 프랑스어 속어로 ‘여러 문화가 섞여, 모든 법들은 무시되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장소’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도저히 함께 살기 힘들 것 같은 구성원들이 별다른 시스템 없이도 유기체처럼 서로 평화로운 공생을 해나가는 모습은 유럽연합이 그리는 이상적인 풍경의 축소판일 것이다. 또한 영화 내내 다소 뒤바뀐 성역할을 보여주었던 레즈비언 이사벨과 자비에, 극 후반부에 이사벨이 나란히 누운 자비에에게 “니가 여자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순간은 트위스트된 성정체성의 혼란 속에서도 평화로운 풍경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귀국한 날, 유학생활이 어땠냐고 묻는 엄마에게 자비에는 “… 좋았어요. 그냥 1년인데요, 뭐”라고 덤덤하게 대답한다. 그러나 사실 그에게 스페인에서의 1년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사유하는 그 어떤 기간보다 길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자비에는 오히려 자신의 고향인 파리의 한가운데서, 관광객이 북적거리는 파리의 몽마르트르에서 눈물을 흘린다.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순간이다. “어디에도 내 모습은 없어요. 모두를 합친 게 내 모습이에요. 그저 나는 혼란에 빠진 유럽인일 뿐….”

'에라스마스'는 누구? 아니, 뭐지?

한번쯤 유학을 준비해본 사람이라면 그 복잡한 절차와 엄청난 서류의 압박을 이해할 것이다. <스페니쉬 아파트먼트>의 자비에가 초반에 겪는 일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바르셀로나의 골목보다 더 찾기 힘든 입학사무실을 찾기 위해 그의 발걸음은 결국 ‘빨리감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정도다. 또한 화면은 그의 눈앞에 필요한 서류목록을 하나하나 에워싸듯 던져놓는다. 이토록 자비에가 갈망하는 유학은 ‘에라스무스’라는 프로그램이다. 근대자유주의의 선구자인 16세기 인문학자 에라스무스(1469∼1536)는 <우신예찬>이란 저서로 잘 알려져 있다. 로테르담에서 출생한 그는 이탈리아, 벨기에, 스코틀랜드, 영국 등 세계 각지를 돌아다닌 여행가이자, 세계주의적 정신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21세기 유럽의 젊은이들에게 그의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좀 남다르다. 1987년 유럽연합이 국가간의 정치적·문화적 장벽을 해소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마련한 유럽 대학간 교류프로그램이 ‘에라스무스’(ERASMUS: European Action Scheme for the Mobility of University Students)이기 때문이다. 각국 대학간 교환학생제도는 물론 교수교환, 상호학점인정, 공동커리큘럼 연구, 대학간 공동 세미나 주최 등 모든 형태의 유럽 내 대학간 교류를 장려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유럽연합의 가장 성공적인 결과물로 간주되고 있다. 감독 세드릭 클라피쉬는 10년 전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통해 바르셀로나에서 공부하고 있었던 여동생을 일주일 정도 방문했었고, 뒤에 이 기억을 토대로 <스페니쉬 아파트먼트> 시나리오를 12일 만에 완성했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