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새 영화]<라스트 사무라이> 파란눈의 칼, 기관총에 맞서다
2003-12-31
글 :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국외자에 비친 오리엔탈리즘 설득력의 빈곤, 화면의 웅장

19세기 후반, 미국의 네이든 알그렌(톰 크루즈) 대위는 아메리카 원주민과의 전투에서 무공을 세워 민간인들을 상대로 돈 받고 무용담을 강의하고 다닌다. 그러나 그의 속은 원주민 학살의 참혹한 기억과 죄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그에게 일본인 관료가 찾아온다. 천황제 아래 서구식 군대 제도를 도입한 일본 군의 교관이 돼 달라고 요청한다. 물론 거액의 연봉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네이든은 서구식 근대화에 반대하며 전통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마지막 남은 사무라이 가쓰모토(겐 와타나베) 일행과 전투를 치르게 된다. 거기서 사무라이의 포로가 된다.

〈라스트 사무라이〉는 서구 문명의 이면에 숨은 잔혹함을 몸소 체험한 한 서구인이, 서구화에 반대하는 동양인의 편에 서서 싸운다는 이야기다. 이 설정이 말로는 그럴듯한데 실제 영화에서 네이든이 사무라이와 함께 싸우는 동기 부여가 제대로 됐는지를 짚어보면 허술한 데가 많다. 네이든은 포로로 잡혀 끌려간 사무라이의 마을에 살면서 사무라이 정신에 매료된다. 영화에서 이 마을 사람들은 평화롭고 너그럽게 그려지고, 사무라이들은 대의가 아니면 기꺼이 죽음을 선택하는 ‘사나이’들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 마을은 네이든이 학살한 원주민들처럼 원시 공동체의 평등과 평화를 가진 곳이 아니다. 또 다른 가부장 권력의 문명 사회일 뿐이다. 이미 문명 사회의 잔인함에 질린 네이든이 다시 이런 질서에 매료된다는 건, 설득력이 빈약하다. 가쓰모토의 입을 통해 이런저런 경구를 인용해대지만 영화는 외부자의 시선으로 본 오리엔탈리즘에서 시작해 그걸 넘어서지 못한다. 그 결함을 의식한 듯, 서구화를 주도하는 일본 관료는 부패해 있고 비겁하기까지 한 인물로 묘사한다.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전투 장면의 스펙터클은 사실성 여부를 떠나 볼 만하다. 대포와 기관총 앞에 칼과 활로 맞서며 죽어가는 사무라이들과, 거기 끼어든 국외자 네이든의 모습은 〈와일드 번치〉 같은 서부극을 연상케 한다. 새 질서를 추종하지 않고 옛 가치를 붙잡고 죽어가는 마초들의 모습인데, 비장미를 느낄라치면 느닷없는 신파를 연출해 감흥을 반감시키는 것도 답답하다.(가쓰모토가 죽자 천황의 서구식 군인들이 모두 그에게 절을 하는 식이다.) 〈가을의 전설〉 〈비상계엄〉의 에드워드 즈윅이 감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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