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배우, 확실히 얼굴이 익다. 하지만 어디서 보았나 자문해볼 일이다. <천하대장군>이라는 영화제목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면 김철수로서는 다행일지도 모른다. 1994년부터 96년까지 김철수가 출연했던 영화들은 대개 16mm 에로영화였기 때문이다. 아니면 영구아트무비에서 일하며 찍었던 <영구와 우주괴물 불괴리> 등 한국형 SF물이거나. 영화배우로서 처음에 그는 그렇게 한복을 걸쳐 입은 힘센 사내이거나 아니면 외계인이었다.
학창 시절 그는 문제학생이었다. 수업을 빼먹고 밖에 나가 싸움도 하고 사고도 쳤다. 고2 때 국어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 한마디로 ‘꼴통’이었다고 한다. 선생님은 사고뭉치 학생이었던 김철수와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그를 다독였다. 차차 그는 국어시간만큼은 책상머리에 앉게 되었고, 그 선생님이 지도교사로 있는 학교 연극부에도 들게 되었다. 선생님의 사랑으로 ‘교화’되어가며, 그는 생전 생각도 안 했던, 그러나 이제는 생업이 돼버린 연기자의 첫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것이다. 고1 때 ‘매우 소극적임’이었던 ‘축구부’ 활동평가가 이듬해 연극부란에 ‘적극적임’으로, 그 이듬해에는 ‘매우 적극적임’으로 바뀌어갔던 나날들. 자율학습시간에, 또래들이 학원에 다닐 때 대학로에 있었던 그의 생활은 졸업 뒤 그대로 연극무대로 이어졌다. <똑바로 살아라>. “충무로 양아치들과 인연을 끊고 처음으로 오디션을 봐서 조직폭력배로 나온” 이 영화는 그 스스로 내세우는 영화데뷔작이다. <할렐루야> lt;체인지> <약속> 등에 단역으로 출연하던 그에게 <교도소 월드컵>은 조연이라 말할 수 있는 첫 작품. 그런 만큼 후회도 많다.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많이 굳어 있었거든요. 감독의 요구가 자기 생각하고 달라도 그대로 잘해야 좋은 배우인데 전 그렇게 못한 거죠.” 그는 ‘휘발유’라는 인물을 단순무식하긴 해도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내고 싶었으나 감독과 뜻이 맞지 않았다고 한다. 차력사 출신으로 차력 때 쓸 휘발유가 모자라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훔치다 감옥에 들어온 특수절도범 ‘휘발유’는, <교도소 월드컵>에서 시종일관 거대한 몸과 뚱한 얼굴로 우스갯짓을 하는 인물이다. 자살골을 넣어 동료 재소자들로부터도 비난을 받는 말썽꾸러기.
스무살 때 ‘그냥’ 밀었던 머리는 이제, 그의 철저한 전략상품이다. 눈썹까지 싹 깎아버린 둥글고 울퉁불퉁한 얼굴. “나를 캐릭터로 만드는 거죠.” 한 서른다섯까지, 그는 지금 갖고 있는 이미지로 승부를 건 다음, 그 다음을 생각할 요량이다. 외모를 바꿀 생각도 그때까지는 없다. 이름난 악당배우, 이름난 조폭배우로 스스로를 캐릭터화하는 데 성공한 뒤 그는 어쩌면 머리를 기르고 살을 빼 ‘평범한 배우’로 변신할지도 모른다. “잘 모르겠어요. 한번 해보는 거죠. 사실 평범한 배우는 가능성이 많잖아요. 저는 거칠어서 거친 역밖에 할 수 없지만, 아직은 밀고 나가보는 거예요.” 김철수는 요즘 <엽기적인 그녀>에서 난생 처음 경찰 역을 맡고 있다. “조폭 같은 경찰을 연기해달라데요. 그냥 평범하게 했거든요. 그런데도 평범하지 않을 거예요.” (웃음) 무서운 인상 뒤에 조금은 쓸쓸함을 남기는 배우 김철수. 그가 슈렉 같은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5년 정도 더 지켜보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