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비평릴레이] <아타나주아> 정성일 영화평론가
2004-01-06
글 : 정성일 (영화평론가)
잔혹한 사실주의 계보에 진심 어린 아날로그적 찬사를

나는 이런 걸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왜 사람들은 재미있는 걸 내버려두고 시시한 것에 매달려서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강우석의 <실미도>는 나에게 시시한 영화였다. 냉전 이데올로기적인 ‘남성’ 괴물을 만들어내고, 그 괴물과 함께 모든 남자들이 좀비가 되어 일제히 함께 자폭하겠다고 매달리는 이 기괴한 남성집단의 역사극에 여자들마저 눈물을 흘리는 것은 한국사회가 얼마나 남자들의 우정이라는 전염병에 시달리고 있는지 보여주는 끔찍한 마초사회의 증후이다. 혹은 왜 사람들은 진짜를 외면하고 가짜에 홀리는 것일까 너무나도 컴퓨터로 덧칠을 해서 도무지 원본을 알아볼 길이 없는 지경이 된 화면과 시종일관 시끄러운 사운드로 요란을 떠는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3, 왕의 귀환>은 원작의 상상력을 게임 스크린으로 둔갑시켜 버렸다. 그런 시시한 영화들에 비하면 자카리아스 쿠눅의 <아타나주아>는 정말 보는 사람을 움직인다. 무려 2시간 48분이나 되는 비경제적이고 비합리적인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는 체험은 지구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삶의 황홀감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자카리아스 쿠눅은 첫 번째 에스키모 감독이고, 이 영화는 첫 번째 에스키모 영화이다. 매우 슬픈 일이지만 에스키모에 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인류학적 상식들뿐이다. 그리고 영화의 역사는 그들을 로버트 플래허티의 <북극의 나누크>를 통해서만 기억할 뿐이다. 그들은 지구에서 함께 살면서도 우리에게 일종의 미라와도 같은 존재들이었다. 자카리아스 쿠눅은 그 자신의 부모와 형제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카메라 앞에 불러온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신화 안으로 들어가서 그 어떤 사회에도 존재해 온 보편적 기억을 끌어내어 그들 자신만의 이미지로 재현해낸다. (레비-스트로스의 말투를 흉내내자면) 자카리아스 쿠눅은 세상만사의 기호적 순환을 조립하면서 그 안에서 세상에 대한 은유를 통해 현대 서구 영화의 환유와 맞선다. 그래서 <아타나주아>는 공동체와 개인, 형제와 아내, 유혹과 질투, 혹은 사랑과 부정, 우정과 증오, 용서와 복수, 그리고 영웅 서사의 귀환이 하나의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회전한다. 그것은 지구의 한쪽 끝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순환이며, 인간이 의미를 갖는 순간에 대한 숭고한 찬사이다.

지구 어디에서나 있어온 오랜 신화의 이야기. 자카리아스 쿠눅은 그것을 필사적으로 찍는다. 그 중에서도 악당 오키와 그의 일당들이 복수하기 위해 천막을 습격하자 지평선이 펼쳐진 빙판을 알몸으로 질주하는 주인공 아타나주아의 저 육체적 황홀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방천지 얼음 빙판 위를 칼날 같은 맞바람을 맨 살로 맞으면서 맨 발로 빙판 위를 달려가는 모습은 오랜 동안 영화가 잊어온 기계복제의 싱싱한 날 것의 사실감으로 살아난다. 거기에는 어떤 트릭도 없다. 맨 발의 살점이 찢겨나가고, 살을 에이는 바람소리가 웅웅거리면서 달려들 때, 자카리아스 쿠눅은 에스키모개들이 이끄는 눈썰매에 16밀리 보렉스 카메라를 싣고 덜컹거리면서 달려가며 그걸 찍는다. 그것은 버스터 키튼의 <일곱번의 기회>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피해 언덕길을 이리저리 달려가는 바로 그 장면, 혹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칠인의 사무라이>에서 장대비가 쏟아지는 진흙탕에서 도적떼들과 싸우는 저 집단적인 마지막 장면, 또는 베르너 헤어초크가 <아귀레, 신의 분노>에서 안데스 계곡에 그의 배우들을 몰아넣고 권총을 관자놀이에 들어대고 행진하라고 외쳐대는 바로 그 잔혹한 사실주의의 계보에 서는 것이다.

바로 그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 그 장소에서 그 악천후의 기후와 싸우고,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야만 얻을 수 있는 영화만의 저 참혹하리만큼 비인간적인 기계적 사실주의에의 진심 어린 아날로그적 찬사를 우리들의 디지털 시대에 다시 마주할 때 그 장면은 거의 기적과도 같은 감흥을 불러일으키고야 만다. 세상에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목숨을 거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런 영화를 보기 위해 내 인생을 걸고 싶다. 그것이 내가 당신에게 해피 뉴 이어(!)라고 말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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