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생존의 스타일화, <라스트 사무라이>
2004-01-06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사무라이가 되어 임오군란을 겪다

라스트 사무라이>를 보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임오군란을 겪는 이야기 같다”고 한다면, 엉뚱하긴 해도 얼토당토않은 강변은 아니다. 미국의 네이든 알그렌(톰 크루즈) 대위는 1876년의 일본이라는 이상한 나라에 갑자기 뛰어들어 예기치 못한 모험을 겪는 ‘앨리스’다. 그리고 ‘앨리스’를 좌충우돌하게 만드는 일본의 정치적 상황은 구한말 임오군란과 닮은꼴이다. 구한말 찬밥신세로 떠밀리는 구식군대와 그들의 정치적 지도자는 개화파와 일본의 파트너십이 주도하는 정국에 반기를 들었다가 결정타를 맞고 소멸해간다. 메이지 천황의 배후에서 실세 노릇을 하는 개화파에 반기를 든 ‘라스트 사무라이들’의 운명이 딱 그 신세다. 알그렌 대위가 앨리스와 결별하는 지점은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칼잡이들에게 감화감복돼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을 맞이하고 새로운 인생을 찾는다는 거다. 그가 겪는, 목숨을 아끼지 않는 모험은 자기 의지로 가속화된다.

알그렌은 어른이고 군인이며 알코올에 찌든 남자다. 그는 폐부 깊숙히 파고든 정신적 상흔을 치유할 길을 찾지 못한다. 이것이 생물학적 차이를 떠나 앨리스와 근본적으로 다른 길을 가게 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알그렌을 지배하는 건 아이와 여자들까지 모조리 학살한 인디언 토벌 작전의 기억이 낳은 죄의식이다. 학살을 무공으로 바꿔준 상관이 일본인 관료와 함께 찾아온다. 서구식 군대 제도와 무기로 신식 군인을 양성하는 교관이 돼달라는 요청이다. 대가는 돈이다. 알그렌이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다. 알그렌 대위가 일본으로 건너가 처음 한 일은 메이지 황제를 알현하는 것이다. 황제가 묻는다. 인디언들이 어땠냐고. 그들은 용감했다, 는 알그렌의 대답은 사무라이를 향한 그의 태도를 일찌감치 규정해준다. 자신이 초토화한 인디언 마을과 용감했다는 인디언 전사들의 대리물 속에서 죄의식을 씻어내는 일 말이다. 그 대리물은 사무라이 마을과 사무라이 정신이다. 알그렌 대위는 미숙련 신식군대를 이끌고 개화파의 정적을 처단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 사무라이와 첫 전투를 벌인다. 거기서 포로가 되고 적의 소굴로 끌려간다. 천진난만하지만 야무지기 그지없는 아이들과 남편을 죽인 포로조차 지극정성으로 돌볼 줄 아는 절대복종의 여자, 자결조차 성스런 행위로 내면화하고 절도와 충성으로 똘똘 뭉친 칼잡이들이 알그렌의 몸과 마음을 서서히 정화시켜준다. 함께 피투성이가 되고 무수한 살을 베어내는 방식으로.

<라스트 사무라이>가 일으키는 호기심은 알그렌이 사무라이에게 동화되는 이유와 과정에 있을 것이다. 톰 크루즈가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사무라이의 세계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사무라이에게 심취한 방식과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삶은 불가해하다. 난 교회를 다닌 적이 없다. 그러나 이들은 영적이다”라고 하는 알그렌이나 “존재의 의미를 아는 게 무사도야”라고 나직이 내뱉는 사무라이의 마지막 지도자 카츠모토(와타나베 겐)의 말은 숙연하고 거창하다. 그러나 그건 ‘폼’일 뿐이다. 카츠모토가 겁나게 쌍칼을 휘두르지만 정작 대화를 좋아하고 유머를 즐긴다는 진면목이나 “생각이 너무 많아요. 마음을 비워요”라고 훈수를 두는 젊은 사무라이의 호의가 힌트처럼 이어지지만 그것이 ‘폼’의 알맹이를 채워주지는 못한다. 말하자면 <라스트 사무라이>에는 칼잡이들의 ‘생존의 스타일화’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도 미국이라는 타자, 할리우드 시스템의 주축인 톰 크루즈라는 타자가 골라잡은 것으로만. 에드워드 즈윅 감독은 “겉으로 드러난 폭력과 죽음 속에 내재되어 있는 복종과 헌신, 그러한 이중성이야말로 일본 문화의 핵심 코드이자 이 영화의 언어”라고 했다. 그래서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사무라이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절한 시점에 죽음을 선택할 줄 아는 자다.

어디까지가 사무라이 정신이고 어디부터 사무라이 스타일인지 구분한다는 게 애초부터 무의미한 것일 수 있다. 스타일의 소비가 이 시대의 도도한 흐름이니까. 그래도 사무라이가 자꾸 눈앞에 어른거리는 건 불편한 일이다. 칼 든 마초의 비장미를 숭상하는 정서나 스타일의 진부함은 모두 시대와 거꾸로 가는 것이니까 말이다.

두 개의 일본도와 한벌의 기모노

<라스트 사무라이의 일본 배우들>

<라스트 사무라이>에는 수백명의 일본인이 등장하지만, 단연 세명의 일본 배우가 돋보인다. 카츠모토 역의 와타나베 겐, 카츠모토의 누이인 타카 역의 고유키(사진), 톰 크루즈를 흠씬 두들겨패는 우조 역의 사나다 히로유키. 카리스마 넘치는 와타나베 겐은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다가 1982년 텔레비전에 발을 들여놓았고 1987년 NHK의 사무라이 드라마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줬다. 이력에서 현대극과 사극을 반반으로 나눠온 그는 사무라이 정신을 칭송한다. “오늘날 일본인들은 사무라이 정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사무라이 정신은 기본적으로 인간성과 인간의 삶에 대한 것이다. 이건 정직, 겸손, 자긍심과 부끄러움 같은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이런 가치들을 잃어버렸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서 일본의 역사와 전통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조 역의 사나다 히로유키는 말보다 행동으로 사무라이 정신을 드러내며 전사로서의 단단함을 과시한다. 아닌 게 아니라 5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고 그때부터 무술을 익혀왔다. 무엇보다 그는 1999년 반년 동안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일원으로 런던 무대를 밟은 정상급 연기자다. <리어왕>에 출연한 뒤에는 영국 여왕으로부터 훈장까지 받았다. 그러나 <라스트 사무라이>에선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카츠모토와 달리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는 영화의 배경으로 깔린 역사의 의미를 영화와 이렇게 연결짓는다. “메이지 시대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서구에 문호를 열었고 많은 서구 문화가 일본이란 지역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이런 두개의 문화가 협력해 위대한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도쿄 거리 세트에는 서구적 빌딩과 일본의 전통가옥이 혼재하며, 기모노를 입은 사람과 서구식 양복과 모자를 쓴 이들이 뒤섞여 있다. 그 세트와 이야기가 잘 중첩돼 어울렸다고 느꼈다.”

타카 역의 고유키는 시나리오 원안에선 카츠모토의 딸이었다. 그건 이름을 부르는 일본어와 영어의 차이, 즉 카츠모토 모리와 모리 카츠모토의 혼동 같은 것이었다고 와타나베는 말했다. 아무튼 타카와 알그렌 대위는 은밀히 서로에게 빠져드는데, 그 모습에서 일본을 바라보는 서구의 시선, 서구를 바라보는 일본의 시선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패션잡지 <논노>의 모델 콘테스트에 뽑혀 모델로 활동하다가 텔레비전을 통해 배우로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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