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검을 치켜든 사무라이가 아니라 속세의 욕망을 초월한 승려 같다. 절에서 매화나무를 바라보는 무감한 얼굴이나, 알그렌에게 “당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되묻는 강인한 말투는 난세의 이전투구와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는 태생부터가 사무라이다. 자신이 지켜야 할 것들을 위하여 검을 드는, 결코 자신과 타인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지막’ 사무라이 카츠모토. “카츠모토의 강철과 같은 강인함에 끌렸다. 어떤 것에 대해서는 목숨을 버려도 좋다, 고 하는 그 기분을 충분히 알 것 같다. 인간적인 대범함,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건 바로 와타나베 겐의 캐릭터이기도 하다.
<라스트 사무라이>의 주인공은 모든 것을 지켜보고 동참까지 하게 되는 알그렌이 아니라 역사를 되돌리려는 카츠모토다. 서구인이 그린 일본인이지만, ‘카츠모토는 할리우드의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 있다’. 와타나베 겐은 그렇게 생각한다. 처음에는 불신도 있었지만 치밀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세트와 의상 등을 보고 감독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일상이라고 할까… 인간이라고 하는 종(種)이 살아가는 방식이나 스타일을 좇듯, 무사도를 그려내고 싶었다. 그들도 그런 점을 분명히 알아주었고. 나무가 싹트고, 꽃이 피고 그것이 반복되는, 그런 것들이 ‘살아가는 것’임을 잘 이해해주었다. 그게 일본적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라스트 사무라이>는 일본영화라고 생각해도 좋다고 본다. 즉 일본의 영화를 할리우드가 만든 것뿐이다, 라고.”
<라스트 사무라이>로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아카데미 후보도 유력한 와타나베 겐은 일본 바깥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배우다. 1959년 니이가타에서 태어난 와타나베 겐은 최근까지 <막말순정전> <신 의리없는 전쟁/모살> 등에서 폭발적인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일본 내에서도 “40대 이하는 나를 잘 모른다”고 한다. 그건 와타나베 겐의 잘못이나 실수가 아니다. 87년 NHK 대하드라마 <독안룡 마사무네>에서 맹렬한 연기를 선보이며 유명해진 와타나베 겐은, 90년에 큰 좌절을 겪는다.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그 때문에 대작영화 <하늘과 땅>에 출연했다가 도중하차한 것이다. 1년을 꼬박 병원에서 보내고, 두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느라 연기생활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트럼펫 주자를 꿈꾸다가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연기생활을 시작한 와타나베 겐의 인생은 다시 한번 전환점을 겪었다.
“두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뒤, 영화 스타가 되려는 야망은 사라졌다. 단지 좋은 영화에 참가하고 싶다는 것뿐. 지금도 일하고 있고, 그것이 너무나 기쁘다.” 와타나베 겐의 그 말은 진심으로 들린다. 게다가 <라스트 사무라이>의 장면들과도 겹친다. “이번만은 절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해내고야 말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촬영에 들어가서는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해야 화면에서 살아서 나올 것인가에 집중했기 때문에, 처음의 그런 생각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정말로 진지하게, 내 안에 있는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부었다. 바닥까지. 촬영이 끝나자, 그때까지의 이런저런 감상도 한순간에 다 날아가버렸다.” 와타나베도, 카츠모토도 그들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쏟아부었다. 카츠모토는 혼만 남기고 역사의 패배자로 남았지만, 와타나베는 승리했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혹시 아카데미 조연상을 타기라도 한다면 와타나베 겐은 일본 영화계의 신화적 존재인 다카쿠라 겐이나 마스다 유사쿠 못지않은 전설이 될 것이다.김봉석 lotusi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