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바람몰이.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의 한 상영관인 아트큐브에서 상영 중인 <아타나주아>의 흥행을 두고 사람들은 ‘기적’이라고까지 표현한다. 3천명에 불과한 관객이지만, 77석짜리 극장에서 상영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깜짝성공’이 아닐 수 없다. 이 놀라운 흥행의 이면에는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 예술영화를 소개해온 ‘예술영화의 전도사’ 이광모 백두대간 대표가 자리하고 있다. 1995년 <희생>을 필두로 70여편의 예술영화를 개봉시켰으며, 1998년에는 <아름다운 시절>을 연출해 해외 각종 영화제에서 숱한 상을 받았던 그가 백두대간 창립 10주년을 맞는 2004년 벽두부터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올해를 예술영화 르네상스의 원년으로 만들고 4년 동안 기획했던 작품에도 돌입할 예정인 그는 <아타나주아>만큼이나 조용하지만, 큰 변화를 일으킬 채비에 여념이 없는 듯했다.
<아타나주아>의 흥행이 대단하다고 들었다.
지난해 12월19일 개봉했는데, 12월30일까지 2800명 정도 들었다. 상영관인 아트큐브의 좌석 수가 77석인 것을 고려하면 대단한 성적이다. 개봉 첫 주말 객석점유율이 93.4%였는데 개봉 다음 주말에는 98.2%를 기록했다. 크리스마스 때는 매진이었다. 관객이 떨어지지 않는 추세라 2월까지 장기상영할 계획이다. 1월8일부터는 엠파크에서도 개봉하고 시네마테크 부산과 광주극장에서도 순회상영을 가질 예정이다. 2만명 정도 들 것으로 본다. 이번에는 광고도 별로 안 했고 이벤트도 벌이지 않았는데 관객이 제 발로 찾아오더라. 관객이란 게 알 수 없어서 영화의 묘한 무엇인가를 인지하는 것 같다. 에스키모와 알래스카의 이국적 풍경을 보는 재미도 있겠지만, 그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함과 인간미에 감동받는 것 같다.
2003년엔 활동이 소극적이었던 것 같다. 일부러 조금 쉬어간 한해였다. 예술영화의 환경이 너무 안 좋아져 영화를 많이 하면 할수록 적자가 났다. 2003년의 전략은 극장수입으로 외화 수입·배급의 손실을 막아내자는 것이었다. <레전드 오브 리타> <베터 댄 섹스> <사랑의 시간> <내가 여자가 된 날> <칠판> <아타나주아>, 이렇게 6편을 개봉했는데 창사 이래 가장 적게 개봉한 것 같다. 수입배급한 작품 중 <아타나주아> 외엔 모두 적자였다. <베터 댄 섹스>는 53개 극장에서 개봉했는데 관객 7만명 정도 들어 손익분기점에 미치지 못했다.
예술영화를 수입·배급하는 일은 여전히 어려운 것 같다. 갈수록 나빠진다. 특히 2002년부터 더 안 좋아졌다. 비디오 시장이 극장수입보다 더 컸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는데 완전히 붕괴하면서 수익을 거두기 어렵게 됐다. DVD의 경우 원가는 비싼데 덤핑시장이 너무 거세 내봐야 별 실익이 없다. 2004년부터 공중파와 케이블TV쪽은 조금 나아질 것 같다. 미국영화 비율을 제한하는 방송쿼터제와 케이블방송사의 증가로 판권 가격이 좀 올랐다.
2004년은 백두대간 창립 10주년이 되는 해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1994년 2월 베를린영화제에 가서 판권을 구매했던 게 백두대간의 첫 활동이었던 것 같다. 10주년이란 게 큰 의미는 없지만 2004년을 계기로 예술영화를 부흥시키자는 르네상스 운동 같은 것을 펼쳐보자는 생각이다.
어떤 행사들을 기획하고 있나. 예술영화 수입·배급쪽으로는 네 가지 방향이 있다. 첫째는 예전에 우리가 수입했던 영화를 포함해서 과거 한국에서 개봉했던 좋은 영화들을 다시 보는 행사다. 두 번째는 기존 백두대간 영화들을 개봉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최신 트렌드랄까, 새롭고 젊은 감각의 영화를 집중 발굴하는 일이며, 네 번째는 다른 나라 대사관, 문화원들과 함께 기획전을 여는 것이다. 올해 4월부터 시작해 2005년 말까지 이뤄질 것이다.
차근차근 물어봐야 할 것 같다. 첫 번째 행사에선 어떤 영화들을 개봉하나.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국내에서 개봉됐던 영화들과 미개봉작 일부를 상영할 예정이다. 지금의 20대나 30대 초반조차 거의 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예전에 했던 영화를 다시 본다는 의미뿐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고민케 하는 작품들을 보여줄 생각이다. 예를 들어 시나리오의 전범격이라 할 수 있는 <위선의 태양> 같은 영화 말이다. 루이 말의 <굿바이 칠드런>, 앙겔로풀로스의 <안개 속의 풍경>, 고다르의 <비브르 사 비>, 쿠스투리차의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첸카이거의 <현 위의 인생> 등이 개봉작이고, 미개봉작으로는 트뤼포의 <투 잉글리시 걸스>, 체코 지리 멘젤 감독의 <가까이서 본 기차> <줄 위의 종달새>, 루이 말의 <심장의 속삭임> <라콤 루시엔>, 타비아니 형제의 <피오릴레> 등이 있다.
다른 행사는 어떤가. 기존 백두대간 영화들로는 2월 <블러디 선데이>와 <인 디스 월드>를 시작으로 <노 맨스 랜드> <할리우드 엔딩> 등을 개봉한다. 그중에는 독일에서 역대 흥행 1위를 기록한 패러디웨스턴 <마니토스 슈>나 2002년 이탈리아 흥행 1위를 했던 <라스트 키스>도 있다. 심의에서 통과하면 무라카미 류의 <도쿄 데카당스>도 개봉할 계획이다. 젊고 새로운 영화를 소개하는 ‘뉴&영’ 시리즈로는 <알래스카> <줌> <권태> <룸 투 렌트>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리컨스트럭션> 등 아주 새로운 영화언어를 갖고 있는 작품들을 보여줄 생각이다. 기획전은 앞으로 계획을 짜봐야 한다.
예술영화 시장이 안 좋다면서도 굉장히 적극적인 것 같다. 공격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술영화 관객은 항상 있는데 우리가 못하기 때문에 안 드는 것이다. 다만 예술영화 진영이 열세에 몰리다보니까 뭔가 계기를 마련하지 못한 것 같아 좀더 다양하게 접근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관객에게 접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다. 7∼8년 전만 해도 나름대로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게, 당시 충무로의 마케팅 비용은 2억∼3억원 정도였고 우리는 그 10분의 1 수준인 2천만원에서 2500만원 정도를 썼다. 또 매체들도 호의적으로 써줘 노출도나 인지도에서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그 사이 충무로의 마케팅 비용은 15억∼20억원으로 뛴 데 비해 우리는 비디오 시장이 나빠져 오히려 1천만~1500만원 정도밖에 못 쓰게 됐다. 게다가 기사도 잘 나지 않고 있다. 이젠 노출도 면에서 100분의 1도 안 된다. 결국, 상업영화의 방식과는 다른 수단을 택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복안이 있는가. 예전 ‘미지의 명감독’ 행사를 했을 때처럼 매체와 평론가, 교수 등과 극장, 관객을 연결하는 것이다. 영화 상영과 함께 강의도 마련하고 자료집도 내고 출판으로 마무리해서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를 하나의 흐름 속에서 체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씨네큐브도 2000년 11월 개관했으니 3년이 넘었다. 성과는 있는지.2001년 20만, 2002년 17만, 지난해 17만명 정도 관객이 찾았다. 괜찮은 편이다. 극장에서 흑자가 나서 수입·배급 적자를 메워줬으니까. 지난해 우리가 썩 잘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 들었다는 것은 성장잠재력이 있다는 얘기다. 잘하면 25∼30만명까지는 될 것으로 본다.
이제 자리는 확실히 잡은 것으로 보인다.극장 색깔이 점점 명확해진다. 우리 극장에서 2003년 최고의 히트작은 <디 아워스> <그녀에게> 이런 작품이다. 고급스런 여성 취향 영화가 잘된다. 반면 가장 흥행이 안 됐던 작품들은 <낭만자객>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같은 한국 코미디영화다. 이들 영화는 하루 20∼30명 정도 들기도 했고, 개봉주인데도 아예 한명도 안 들어 상영을 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돈 벌려고 이런 영화도 하냐는 항의도 많이 들었다.
관객 취향이 확실하다는 게 장점일 수도 있지만, 부담일 수도 있겠다. 지금 같아선 큰 부담이다. 예술영화의 수급이 안 된다. 예술영화가 안 되니까 수입사가 어렵고, 그러다보니까 좋은 영화가 없다. 극장 입장에서는 1년에 50편 정도 필요한데 반도 안 된다.
예전 동숭아트센터에서 할 때보다 관객의 예술영화에 대한 열기가 떨어진 것은 아닌가. 열기가 떨어진 게 아니라 분산됐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처음으로 본격적이고 집중적으로 소개한 것이어서 동숭에 관객이 몰린 것 같다. 지금은 독립영화 행사며 감독들의 회고전, 국제영화제가 계속 열리고, 하이퍼텍 나다 등도 생긴 만큼 분산된 것 같다. 다만 구심점을 마련 못해서 흩어져 있는 것이다. 예술영화를 찾는 전체 관객의 숫자가 줄어들었다고 생각진 않는다. 다만 흡입력 있는 기획을 못 내고 있다는 게 문제일 거다. 지난해 일부 회고전이 성공한 게 의미있다고 본다. 허우샤오시엔이나 데릭 저먼 회고전에 관객이 몰리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 정도만 기획하면 관객은 온다는 얘기니까.
시네마테크와 협력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 씨네큐브와 시네마테크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다. 얼마 전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공유하자고 얘기했다. 서로 협조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을 것이다. 예술영화전용관처럼 제도로서 보장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자생적인 연대가 더욱 필요한 실정이다.
<아름다운 시절>을 만든 게 1998년인데 아직까지 감독으로서 작품활동은 못하고 있다. 백두대간은 설립할 때부터 한국영화 제작을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세웠었다. 사실, 올해의 가장 큰 목표는 한국영화 제작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10년 동안의 활동을 바탕으로 발전적 토대를 굳히는 일 정도까지가 내 역할이라고 본다. 그런 작업을 마무리하고 올해 안에 무조건 내 작품에 돌입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10주년이 하나의 매듭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 매듭을 지음과 동시에 나는 내 작품으로 들어갈 것이다. 작품이란 게 정기적으로, 의무감에서 하는 것은 문제가 있겠지만, 하고 싶을 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작품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 같다. 이제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고.
과연 이광모 없는 백두대간이 운영될 수 있겠나.영화에 전념하기 위한 첫 단계로 2002년 8월 교수직도 그만뒀다. 이제 회사일에서도 빠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단계다. 직원들이 알아서 할 수 있는 구도를 짜는 것이다. 이사급 2명도 영입할 예정이다. 이번 칸영화제를 마지막으로 올해 상반기부터 회사 업무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감독으로서 임하는 작품은 이전부터 기획했던 이산가족 프로젝트인가. <아름다운 시절>을 끝낸 뒤 다큐멘터리들을 보는 등 죽 리서치해왔다. 사실, 하고 싶은 다른 작품이 있긴 한데 이 작품을 마무리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안에 시작하게 된다.
어떤 영화인가. 기존 제작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찍는 게 목표다. 내 생각은 시나리오 없이 찍는 영화다. 리서치를 바탕으로 찍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가도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시나리오 써서 거기에 맞춰서 관행대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재미없는 것 같다. 특히 이산가족 문제는 소재 자체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인데, 기존의 영화적인 방법이라면 과거회상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리 즉흥적으로 찍는다고 해도 캐스팅부터 시작해서 모든 게 정해진 틀 안에서 이뤄지고, 결국 과거를 복원해내는 작업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현재진행형의 작업이다. 소재가 흘러가는 대로 카메라가 같이 가면서 뭔가를 잡아내고 그것을 축적해나가면서 작업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하고 싶은데…. 모르겠다 너무 이상적인 건지.
정확히는 감이 안 잡히지만 왠지 다큐멘터리의 느낌이 강할 것 같다. 극영화적 접근이 있고 다큐멘터리적인 기법을 활용하는 게 있다. 다큐멘터리는 분명 아니다. 다큐를 만드는 것과 극영화가 나란히 가면서 현실을 콜라주하는 것이다. 극영화라는 것은 드라마, 스토리, 캐릭터라는 것 안에 갇혀 있는데, 그 소우주 속에서 전체를 대변하기 바라는데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해도 불가능하다. 현실 속에 들어가서 취재를 하듯 카메라가 대상을 찍을 것이고, 미리 정해진 콜라주할 틀 안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묶일 것이다. 다큐라는 것은 한 인물을 따라가든 한 모티브를 따라가게 되는데 여기서는 그것보다 조금 폭넓은 개념으로 접근할 것이다. 분단과 이산이라는 것을 주제 삼아 다양한 것을 보여줘 관객이 커다란 흐름을 잡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작가가 ‘이것이 이산가족이다’라며 아주 편협하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이게 이산가족으로 인해 일어나는 전체의 양상이야’라고 관객 스스로가 판단할 수 있게 하자는 거다. 프레스코 벽화 같은 느낌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그래도 정확히 이해는 안 된다. 나도 이 프로젝트를 오래 구상해왔는데, 아마도 마이클 윈터보텀의 <인 디스 월드>가 가장 유사한 미학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거기에서는 이미 주인공들의 여정이 정해져 있긴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 다큐멘터리 같지만, 어떤 앵글은 반드시 연출됐을 수밖에 없는 장면이 보인다. 내가 반드시 보여줘야 하는 장면인데, 현실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다른 방식으로 인물을 던져넣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솔직히 나도 오리무중이다. 어쨌건 영화라는 게 한국에서, 그리고 전세계에서 수도 없이 많이 만들어지는데, 따지고 보면 다 고만고만한 게임 아니냐. 리얼리티를 100% 전달하려고 할 때는 다른 접근이 필요한 것 같다.
이산가족 문제를 다루려는 이유는 뭔가.우리 집안도 이산가족이다. 할아버님의 경우 할머니, 고모 두분, 삼촌 두분을 북에 두고 내려오셨다. 북한 식구의 생존 여부도 모른 채 돌아가셨다. 살아계실 때 할아버님은 유언 비슷하게 영상물을 만들고 싶어하셨다. 당시 내가 비디오카메라로 아르바이트하던 시절이라 내게 부탁하셨는데, 나는 만류했다. 당시만 해도 정정하셨기 때문이다. 결국 할아버님은 <아름다운 시절> 크랭크인을 하기로 했던 날 돌아가셨다. 그걸 찍어드렸어야 하는데 하면서 두고두고 한이 되고 죄스럽다. 우리 사회는 이산가족 문제를 헤어진 가족의 문제만으로 인식하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사회처럼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사회가 드물다. 이 사회는 약자들을 돕는 데 인색하다. 우리 민족은 정신적 불구인 것이다. 그런 정신적 결함이 어디서 오나, 하는 것이 이산가족에서 시작된다. 너무 절박한 문제이기 때문에 빨리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 것 같다. 한 4년 걸릴 것 같다. 촬영에만 3년이 걸린다. 애초에는 10부작 다큐를 만들고 그 안에서 극영화 1∼2편을 뽑아낼 생각을 했는데 예산이 93억원이 나오더라. 최근까지도 고민하다가 극영화에 집중하고, 부산물로 다큐가 1∼2편 나오면 다행이라고 생각을 정리했다. 아마 전체적으로 45억원 정도 들 것이다.
별도 법인인 시네마 상상도 활동을 하게 되나. 시네마 상상도 4년간 준비해왔다. 기획 중인 작품이 12∼13개 정도 되는데, 올해부터 1년에 2편씩 제작하는 게 목표다. 대부분 상업영화이고 장르는 다양하게 가져갈 생각이다.
매우 바쁜 한해가 될 것 같다. 10년 동안 사무실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지금 뛰고 싶다. 현실과 호흡도 같이 하면서 현재진행형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만드는 작업 자체가 현실에 영향을 끼치는, 그렇게 현실을 만들어가는 그런 영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