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매혹과 모순의 ‘젠틀맨’, 캐리 그랜트
2004-01-08
글 : 홍성남 (평론가)
<어페어 투 리멤버><연인 프라이데이>의 캐리 그랜트 탄생 백주년(1904∼86)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이주의 영화>는 클래식영화에의 여행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 가벼운 필치로 써내려간 일종의 클래식영화 소개서이다. 이 책에서 보그다노비치는 독자를 대신해 매주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 1년간의 스케줄을 짜놨다. 그럼 대략 현재 시점에 해당하는 3주째에는 과연 어떤 영화가 선정되어 있을까? 보그다노비치는 1월15일경부터 시작되는 그주의 영화로 레오 매커리의 <놀라운 진실>을 골랐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썼다. 1월16일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남자배우 가운데 하나인 캐리 그랜트가 태어난 날이니 그로 하여금 영화스타로 태어나게 한 영화를 보며 그날을 축하해주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지금 이 자리에서 하필이면 캐리 그랜트라는 ‘옛날 배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앞에서 드러났듯이 곧 그의 생일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의 1월16일은 특별하게도 100번째 맞이하는 그의 탄생일이다. 그러니 보그다노비치가 했던 말을 조금 바꿔서, 우리에게 즐거운 영화적 경험들을 안겨주었던 한 배우의 자취와 그의 세계를 길지 않으나마 되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하며 그에게 축하의 말을 보내는 건 절대 어색한 일이 아니다. 여기서 그 축사는 보그다노비치와는 약간 달리 레오 매커리가 연출을 맡은 다른 영화로부터 시작해보고자 한다.

<어페어 투 리멤버>의 한 장면에서 남자는 자신이 청혼하려던 여자가 니키(그랜트)라는 남자와 어느샌가 사랑에 빠졌음을 직감하고는 이렇게 묻는다. “정말이지 그가 못 견딜 정도로 매력적이던가(irresistible)?” 여자로부터 긍정의 대답이 나오자 남자의 얼굴에는 낭패감과 질투가 뒤섞인 표정이 깃든다. 여자의 표정에는 미안함이 먼저 보이지만, 그건 니키에 대한 버릴 수 없는 열정이 깃들인 미안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랜트가 다른 이들에게, 남성들과 여성들에게 각각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 존재인가에 대한 한 실례를 봤다고 해도 무방하다. 다시 말해 이 장면은 그랜트라는 ‘사랑의 대상’에 대해 영화평론가 폴린 카일이 다음과 같이 쓴 한 실례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그처럼 운이 좋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남자들은 그랜트처럼 되고 싶어한다. 한편 여자들은 그를 자기들 손 안에 넣기를 꿈꾼다.” 그랜트라고 하면 우리는 예컨대 <어페어 투 리멤버>에서의 니키 같은 존재, 즉 수려한 외모를 가진 데다가 부유하고 재능 있으며 유순하고 그 밖에 위트와 스타일, 우아함 등의 가치마저 고루 갖춘 젠틀맨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그랜트에 대한 이런 이미지는 ‘교정’이 필요한 것임이 뒤에 밝혀지겠지만 하여튼 그가 한때 남성들에게는 동경(과 질투)의 대상이었고 여성들에게는 꿈속의 로맨틱한 파트너였음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갖고 싶은, 닮고 싶은

‘캐리 그랜트’라는 이미지에 대한 사람들의 선망을 그랜트 자신은 이렇게 요약한 바 있다. “모두가 캐리 그랜트가 되기를 원한다. 심지어 나조차도 캐리 그랜트가 되고 싶다.” 그랜트의 이 유명한 말 속에서 우리는 ‘캐리 그랜트’와 그랜트 사이의 거리를 감지할 수 있다. 스크린 위의 그랜트는 항상 심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여유있는 남자로 등장하지만 영국의 브리스톨에서 태어난 실제의 그는 가난한 가정에서 나고 자랐다. 게다가 정신병적 증세가 있었던 그의 어머니는 그가 아홉살 때 정신병원으로 보내져 이 소년의 어린 시절은 외로움의 그것이었다. 그랜트는 나중에 회고하기를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는 숨을 쉬는 것말고 야심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단지 하나 ‘여행을 하겠다는 야욕’이 있을 뿐이었는데 그것이 결국에는 그를 연기로 이끌었다. 열네살 무렵에 그는 유랑극단에 들어가 곡예를 시작했고 나중에는 그 일을 하며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게 되었다(그랜트의 특출한 재능 가운데 하나인 동작의 유연함과 역동성은 아무래도 그의 이런 이력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혼잡한 거리를 잘도 빠져나오는 것으로 시작해 절벽에 매달린 연인을 끌어올리는 것으로 끝나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같은 영화는 몸을 활용하는 데 있어서 그랜트의 비범함을 잘 보여주는 실례에 속한다. 조지 쿠커의 <휴일>에서 그랜트는 걱정이 생기면 공중제비를 도는 인물을 맡기까지 했다). 이후 그는 뮤지컬 무대에 서고 영화 스튜디오와 계약을 맺어 작은 역을 맡고 하는 식의 경로를 거쳐 1930년대 중반 이후로 할리우드의 스타로 확실한 발돋움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랜트는, 아니 아치발드 리치(그의 본명)는 자신만의 재능과 자신이 꿈꿔왔던 이미지를 스크린 위에 불어넣어 자신을 비롯해 모두가 선망하는 독특한 스크린 페르소나 ‘캐리 그랜트’를 빚어냈다.

<할리우드의 비슈누(Vishnu): 미국 남성의 변화하는 이미지>라는 책에서 저자인 데이비드 그로스보겔은 “백색 전화(White Telephone)의 시대”라는 제목을 가진 장(章)에서 캐리 그랜트를 이야기한다. 확실히 전형적인 스크린 속의 캐리 그랜트는 백색 전화의 세계, 즉 보통 사람들의 고단하고 지저분한 일상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상류사회에 속하는 존재이다. 그런 세계 속에서 그가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인 분야는 약삭빠르면서도 맵시있는 대화, 특히 여성들과의 대화가 아닌가 싶다. <나는 결백하다>에서 이야기하듯이 그는 결코 ‘외로운 늑대’가 될 수 없는 인물이다. 그의 주위에는 항상 매력적인 여성들이 다가오고 또 멀어져간다. 그녀들과의 로맨스야말로 그랜트의 제일 가는 ‘사업’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그랜트라는 ‘연인’은 이를테면 몽고메리 클리프트나 로버트 레드퍼드로 같은 연인들과는 또 다른 그룹에 속해야 할 인물이다. 무엇보다 남다른 건 그가 로맨스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이는 듯하는데도 실상은 그것에 전적으로 몰두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오명>의 유명한 키스신은 그랜트식 로맨스의 중요한 특징을 요약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데블린(그랜트)은 앨리샤(잉그리드 버그만)와 오랜 키스를 나누면서도 결국은 전화를 걸고 자신이 할 일을 체크하기까지 하는 불성실한(?) 연애 태도를 보여준다.

이쯤에서 이런 상상을 한번 해볼 수도 있겠다. <로마의 휴일>에서 바깥 사정 모르는 공주와 함께 멋진 외유를 담당한 미국인 신문기자 역을 그레고리 펙이 아니라 그랜트가 맡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실제로 그랜트는 펙보다 먼저 이 역할에 대한 제의를 받았었다고 한다. 그러나 출연할 영화가 자신의 배역보다 공주가 좀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난 다음 그랜트는 그 역할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런데 여하튼 머릿속으로만 한번 그려보면 어쩌면 <로마의 휴일>의 신문기자 조는 펙보다는 그랜트에게 더 어울리는 캐릭터인 것 같기도 하다. 친절함 뒤에 사욕을 감춘 매력적인 미국인이라면 그랜트와 같은 피를 나눈 캐릭터이니 말이다. 아마도 그가 연기한 조는 펙의 캐릭터에서 드러나는 지나친 신중함 혹은 절제의 기운을 많이 덜어내고 좀더 쾌활한 에너지를 불어넣었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렇듯, 그랜트의 페르소나는 외면적인 우아함과 매력 그뒤로 그것과는 배치되는 듯한 가치들, 이를테면 이기심이라든가 악의라든가 또는 냉담함, 심지어는 여성혐오의 태도 같은 것들을 겸비하고 있을 때가 많다. 그리고 바로 그럴 때 그랜트만의 독특한 매력이 풍겨나온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이제 앞에서 이야기한 그랜트에 대한 피상적인 ‘젠틀맨’ 이미지에서 어느 정도의 수정이 가해질 때가 되었다. <놀라운 진실>에서 음악선생이라는 남자는 자기 교습생의 남편인 제리(그랜트)에게 “대륙적 도량”(continental mind)을 가진 남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건 제리의 속좁음을 비꼬는 말임이 드러난다. 제리는 아내의 정숙함을 믿지 못해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는가 하면 이혼 위기까지 자초하는 신중하지 못한 인물이다. 친절함의 덕목을 갖추지도 않았고 사려 깊지도 못한 그랜트적인 캐릭터로는 <연인 프라이데이>의 저널리스트 월터도 빼놓을 수가 없다. 그는 온갖 계략을 다 써서 곧 다른 사람과 결혼해 자기 곁을 영영 떠나려고 하는 전처 힐디를 결국 자기 옆에 붙들어놓는다. 그런데 월터의 이 전부인에 대한 갈구는 아무래도 사랑을 절실히 원해서라기보다는 유능한 직업적 전문가를 잃기 싫다는 데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모든 소동을 자기가 원하는 결과대로 마감한 월터가 힐디에게 던지는 대사는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그의 캐릭터를 단숨에 코믹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드러내준다. “그 가방은 손에 들지 그래?”(방문을 나설 때까지 힐디는 큰 여행가방을 버거워하며 품에 안고 있었다)

가장 훌륭했다기보다 가장 중요했다

이런 사례들에서 보듯 그랜트는 자신의 캐릭터 안에 누가 봐도 매력적이라고 평가할 외모와 가치를 지녔으면서 한편으로는 그것들을 상쇄할 만큼의 매력적이지 못한 측면들을 공존시킴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매력을 높여놓은 배우라고 하겠다. 사실 이건 그의 주요 활동 공간이 다툼하듯 로맨스가 벌어지는 스크루볼코미디(혹은 로맨틱코미디)였음을 감안해볼 때 자연스런 전략이었는지도 모른다. 인물 안에 무언가 빈 부분이 있어야 효과적으로 양성간에 전투가 일어나는 장소가 바로 그런 영화들이니까 말이다. 여하튼 그랜트는 자신을 양면성을 가진 인물로 만들고 코미디적인 터치를 가함으로써 자칫하면 고전적인 미남형의 얼굴을 가진 자신도 모르게 매여 있었을지도 모를 범주, 즉 멋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 많은 무색의 미남 배우들 가운데 하나에 그치고 말 위험성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랜트를 두고 제임스 캐그니나 험프리 보가트 등에 붙이곤 하는 ‘작가로서의 배우’라 부르는 이를 개인적으로 아직 보지는 못했으나 그가 구축한 독자적인 스크린 페르소나를 감안할 때 그렇게 불러도 별 무리는 없을 듯하다. 한편으로 그랜트는 그렇게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 굉장히 능숙한 솜씨를 보여준 훌륭한 연기자였음에도 워낙에 유명한 스타이다 보니 그런 면모 역시 종종 간과되곤 했었다. 예컨대 신문사를 나오기까지 온통 그 많은 대화와 제스처들로만 이뤄진 <연인 프라이데이>의 초반 10여분만 봐도 대사, 타이밍, 동작에 대한 그랜트의 감각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새삼 실감할 수가 있다. 물론 이런 식의 연기는 아카데미가 바라는 ‘심도있는 연기’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랜트는 명성과 달리 한번도 활동하는 동안 오스카 트로피를 쥐어보지 못했다. 영화계를 떠난 뒤인 1970년에야 그는 명예 오스카 트로피를 수여받았는데 당시의 수상 소감 가운데 이런 말을 했었다. “할리우드의 가장 영광스런 시대의 한 일원이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특권이었습니다.” 영화평론가 데이비드 톰슨이 “영화사상 가장 뛰어나고 가장 중요한 배우”라고 칭했던 그는 그런 특권을 누릴 자격이 충분히 있는 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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