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이지만 입시지옥과는 무관하게 ‘맑고 밝은’ 생활을 하는 하영(하지원)은 연하의 ‘남친’에게 만난지 100일날 채인다. 화풀이로 걷어찬 맥주캔이 무개차를 운전하던 왕자님 대학생 형준(김재원)의 얼굴에 날아가자 차는 벽을 향해 돌진한다. 흉터가 생긴 범퍼 수리비를 미끼로 형준은 하영에게 ‘노비문서’를 던진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에 이어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 <내사랑 싸가지>는 백일동안 노비생활하다가 왕자님과 사랑에 빠져 공주로 신분상승하는 여고생 신데렐라 이야기다. 남자대학생과 여고생의 로맨스라는 얼개는 다르지만 부잣집 남자와 평범한 여자의 사랑이라는 점은 <동갑내기…>와 비슷하다. 어떤 논리적 전개나 귀결에서도 자유로운 ‘요즘 아이들’의 어법에 충실하다는 점도.
김재원·하지원 ‘동갑내기’흉내, 밋밋한 캐릭터·겉도는 웃음그런데 <내사랑 싸가지>에는 <동갑내기…>가 뿜어내는 발랄한 에너지가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남녀 주인공의 캐릭터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싸가지’라는 원색적인 제목이 무색하게 형준은 느끼한 포즈만 반복하는 왕자님의 고전적 모습을 답습하고, 설정으로만 보면 한싸가지 할 것같은 하영 역시 왕자님이 가지고 있는 ‘럭셔리함’에 너무나 쉽게 투항하며 ‘보랏빛 향기’를 신파적으로 불러젖힌다. 대책없는 여고생으로 아무 생각없고 ‘쥔님’이 시키는 일이라면 세일러문까지 능청맞게 흉내내는 하지원의 연기가 때때로 웃음을 유발하지만 이 역시 ‘개인기’에만 머물 뿐 영화 속에 스며들지는 않는다. 여기에 우격다짐식으로 끼워넣은 화장실 유머도 영화의 흐름과 무관하게 동동 떠돌아다닐 뿐이다. <동감>의 원작을 썼던 신동엽 감독의 연출데뷔작이다. 16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