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팀 버튼의 환상세계 <빅 피쉬> 뉴욕 시사기
2004-01-13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지난 20여년간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세계로 스크린을 수놓았던 팀 버튼이 <빅 피시>로 다시 팬들을 찾아왔다. <혹성탈출>의 리메이크로 상처(?)를 받은 팬들이 있다면, <빅 피시>는 팀 버튼의 감각이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한 작품이라고, 그러니 안심하라고 전해주고 싶다. 마음 착한 거인과 유리 눈을 가진 마녀, 늑대인간, 하반신이 붙어 있는 쌍둥이 가수, 사람만큼 거대한 메기 등 <빅 피시>는 마술같이 신비로운 캐릭터와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최근 뉴욕에서 열린 이 영화의 시사회에서는 이처럼 신비로운 장면들이 나올 때마다 “와아!” 하는 관객의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당신이라면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당신이 태어나던 날 아버지가 거대한 메기를 낚아올려 당신 같은 아이를 얻게 됐다는 이야기가 좋은가, 아니면 여기저기 가정용품을 팔러다니다 출산 때 아내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믿고 싶은가. <빅 피시>는 보통 남자의 보통 이야기에 ‘허풍’이라는 감미료를 넣어 마치 전설처럼 들려준다. 에드워드 블룸(이완 맥그리거)은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작은 마을에서 가장 인기있는 청년이지만, 큰 물에서 놀고 싶어한다. 넓은 세상을 탐험하고 싶은 그는 동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거인 칼을 친구 삼아 여행을 시작한다. “네가 큰 것이 아니라 이 마을이 너한테 작다고 생각한 적은 없니?” 어릴 적 미래를 말해준다는 마녀를 통해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알게 됐다는 그는 그래서인지 아무리 어려운 경우에 처해도 두렵지 않다.

이렇게 여행을 시작한 에드워드는 여정 중 늑대인간과 쌍둥이 자매 가수 핑과 징, 시인에서 은행 도둑으로, 도둑에서 월스트리트 거부로 변신하는 노더 윈슬로(스티브 부세미) 등 흥미진진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경험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서커스에서 미래의 아내 산드라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린 에드워드는 그 순간을 이렇게 기억한다. “진정한 사랑을 만나면 순간 시간이 정지해버린다.” 그는 산드라에게 그녀가 좋아하는 수선화 1만 송이를 기숙사 앞에 펼쳐놓고 청혼한다. 이렇게 40년간 변하지 않는 사랑을 간직한 에드워드는 세일즈맨으로 남부 곳곳을 다니면서 경험한 모험담을 아들 윌에게 말해주곤 했다.

그러나 좋은 말도 한두번이면 질리는 법. 수십년간 이야기를 들어온 윌은 아버지의 이야기라면 지긋지긋하다. 아버지의 모험담을 싫어하는 사람은 자신뿐인 것 같다. 그래서 ‘에드워드의 아들’로만 알려진 남부를 떠나, 머나먼 프랑스에서 허풍선이 이야기꾼과는 거리가 먼 뉴스 리포터로 일한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어머니의 연락을 받은 뒤 몇년간 연락을 두절했던 윌은 다시 아버지를 찾는다.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 중 얼마가 진실일까? 고민하던 윌은 아버지의 친구들을 찾아다니면서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빅 피시>는 영상만큼이나 캐스팅도 화려하다. 이완 맥그리거가 젊은 시절의 에드워드 블룸을, 앨버트 피니가 노년의 에드워드를 연기한다. 에드워드의 아내 산드라는 <매치스틱 맨>에 출연해 연기력을 과시했던 앨리슨 로만이 젊은 시절을, 제시카 랭이 노년 시절을 각각 연기한다. 이외에도 헬레나 본햄 카터, 스티브 부세미, 대니 드 비토 등도 잊혀지지 않는 조연으로 출연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오랫동안 대화를 하지 않아 이제는 이방인처럼 돼버린 노년의 에드워드와 아들 윌 사이의 그랜드캐니언처럼 깊은 골짜기가 다시 메워지는 과정이다. 원작자 대니얼 월래스는 보통 남자의 이야기를 전설처럼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그려냈다. 이는 얼마 전 아버지를 잃은 감독 팀 버튼의 개인적인 경험과 느낌이 보태져, 환상적인 모험담인 동시에 부자간의 관계를 그린 휴먼드라마로 거듭났다.

팀 버튼은 다른 작품을 준비하던 중에 <빅 피시>의 시나리오에 반해 연출을 결정했다고 한다. 두 영국 배우가 미국의 전형적인 남부 남성을 연기한다?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맥그리거는 “모두 미국인 연기를 해본 적이 있고, 본래 악센트와 남부 악센트가 비슷해 구사하기가 쉬웠다”고 말했다. 맥그리거의 경우 스코틀랜드 출신이고, 피니의 경우 맨체스터 출신. 이들은 같은 보이스 코치에게 악센트를 배웠고, 플라이 피싱을 배우러 다니기도 했다.

출연배우들은 <빅 피시>에 출연하면서 부모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특히 자신의 모습에서 부모의 모습을 언뜻 보았을 때 놀라움이 컸다는 것. 제시카 랭은 “우리는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이 많고, 평가하려 한다. 모두가 좀더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티브 부세미는 “우리는 부모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리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심하게 낙담한다. 우리 자신이 부모가 되면 그제야 이해하게 된다. 나도 그랬다. 이 영화에서 에드워드의 아들 윌에게 아이가 없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에게 아이가 있었다면 아이가 커가는 것을 보면서 아버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덧붙혔다.

팀 버튼 감독과는 실제 연인 사이이며, 몇달 전 첫아이를 출산한 헬레나 본햄 카터는 이 영화에서 3가지 독특한 역할을 했다. 유리 눈을 가진 마녀와 에드워드를 흠모하는 어린 시절과 노년의 제니를 연기한다. “젊음을 숭배하는 할리우드 영화계에 익숙해 있다가, 주름이란 주름은 다 가지고 있는 마녀로 분장한 모습을 보니 너무 재미있었다. 내가 이렇게도 보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서였을까. 그런데 분장하는 데 5시간이나 걸리는 것과 임신 중이어서 분장할 때 냄새가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도 감독이랑 사귀어서 그런지 이틀 만에 마녀 연기를 마치게 배려해주더라.”

감독과 절친한 사이인 대니 드 비토는 그와 이번까지 4작품을 같이했다. 팀 버튼이 감독한 <배트맨2>와 <화성침공>에 출연했고, 드 비토가 감독한 <호파>에는 팀 버튼이 시체로 우정(?) 출연했다. 그는 “팀이 어느 날 갑자기 전화를 해서 이 영화에 출연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더니 내가 맡았으면 한다는 서커스 단장의 모습을 직접 스케치해서 스크립과 함께 보내주었다”고 말했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스케치를 보고 단숨에 결정했다고.

배우들에게 팀 버튼은 자신만의 독특한 상상의 세계로 끌고 가는 존재다. 모두가 그와 함께한 여정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맥그리거는 “상상했던 그대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팀의 스타일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스크립을 읽을 때부터 나름대로 장면을 상상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스타워즈>처럼 블루스크린을 많이 사용하지 않아 좋았다는 것. 배우들은 버튼이 촬영할 때 너무 편안하게 해준다고 했다. 최대한 특수효과를 자제한 이번 작품에서는 배우들이 연기하기 쉽도록 완벽한 세트장을 조성해 점수를 높게 받은 것. 그리고 그는 아이처럼 에너지가 넘친다. 제시카 랭은 “팀은 세트에서 세트로 늘 뛰어다닌다. 프로젝트 전체를 책임지려면 무척 힘들 텐데 늘 주위사람들을 배려해줘서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앨라배마주에서 촬영된 이 작품에는 300여명의 제작진이 참여했고, 7천여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됐다. 특히 서커스 장면에서는 6개의 서커스단과 말, 낙타, 기린, 코끼리, 사자, 곰 등 150여 마리의 동물들이 동원됐다. <빅 피시>가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것처럼 사운드트랙도 펄잼에서부터 엘비스 프레슬리까지 다양하다. 이외에도 빙 크로스비, 버디 홀리, 올맨 브러더스 등의 노래와 팀 버튼의 여러 작품을 담당해온 대니 앨프먼이 배경음악을 담당했다. 지난 2003년 12월10일 뉴욕과 LA에서 한정 개봉된 <빅 피시>는 1월9일 전국적으로 확대 개봉됐다.

감독 팀 버튼 인터뷰 "진실과 과장이 멋지게 뒤섞여 있다"

뉴욕에 살다보면 길거리에서 가끔 배우나 감독을 마주치는 경우가 있다. 몇년 전 당시 약혼자였던 배우 리사 마리와 함께 산책하던 팀 버튼 감독을 본 적이 있다. 따뜻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검은 옷에 선글라스를 쓴 이 커플의 모습이 어찌나 이상하고 낯설게 보이던지…. 하지만 인터뷰를 위해 인사를 나눈 그에게서는 고딕풍의 기괴함은 찾기 힘들었다. 오히려 따뜻하고 온화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은 <빅 피시> 홍보를 위해 뉴욕을 방문한 버튼 감독과의 인터뷰다.

<빅 피시>의 스크립을 받기 전에 다른 작품을 준비 중이었다고 들었다. 이 작품을 먼저 선택한 이유는.

진실과 과장이 멋지게 뒤섞인 이야기 구조가 좋았다. 또 멋진 판타지를 보여주다가도 부모를 잃게 된다는 가슴 아픈 현실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구조가 마음에 와닿았다. 얼마 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더 절실하게 느꼈던 것 같다.

전형적인 남부 미국인인 에드워드 역에 영국 배우 2명을 고용했다. 이유는? 어려움은 없었나.

국적을 떠나서 이미지와 분위기가 비슷한 두 배우를 그것도 각기 다른 연령층(청년과 장년기)으로 찾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만족스러운 배우를 찾는다 해도 이들이 출연에 동의할지도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앨버트 피니와 이완 맥그리거를 찾은 것은 행운이다. 앨버트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이완과 참 비슷하다. 몇년 전에 주간지 <피플>에서 이 두 배우를 비교하는 기사가 나왔는데, 영화사 대표들을 설득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웃음) 일부에서 영국 배우가 어떻게 미국 남부 사투리를 구사하겠냐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재능있는 배우라면 악센트쯤은 큰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했다.

주인공 에드워드가 한국전쟁에 참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설명이 좀 필요한 것 같다.

영화 속에서 에드워드가 하는 이야기는 사실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이야기꾼이 ‘설’을 풀 때 과장을 하는 것처럼 그의 이야기에도 사실이 있긴 하지만 상상의 세계와 더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전쟁 장면에서는 에드워드가 낙하산을 타고 중공군들로 가득 찬 위문공연장 세트장 위로 떨어진다. 하반신이 붙은 쌍둥이 가수가 영어로 노래를 하고, 공연장 옆 텐트 안에는 한글로 쓰여진 기밀 문서들이 널려 있다. 에드워드와 텐트 안에 있던 북한군들은 쿵후로 실력을 겨룬다. 어디 하나 맞아들어가는 구석이 없는 허풍스러운 모험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빅 피시>에는 CG 사용이 많지 않다고 하던데….

이번 촬영 중 특수효과를 제한하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했다. 좀더 사실에 가깝게 ‘살아 있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고 싶어서 블루스크린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나무 위에 차가 걸려 있는 장면도 실제로 촬영했다. 차 내에 무거운 부속품들을 빼낸 뒤 크레인으로 올려 찍었다.

촬영 중 어려움은 없었나.

촬영 기간 중 특히 서커스 장면을 찍는 동안에 토네이도가 불기도 했고, 폭우가 쏟아져 서커스 텐트가 3피트 물에 잠기기도 했다. 그런데 하나도 걱정이 안 되더라. 촬영 자체가 즐거워서였는지 힘들었던 기억은 잘 안 난다. 4개월간 앨라바마주에서 찍었는데, 앨버트와 제시카 랭의 장면을 우선 촬영했다. 그런 뒤에 이완과 앨리슨의 장면을 촬영했다. 약간 커닝을 했다고 해도 좋겠다. 이완과 앨리슨이 앨버트와 제시카의 모습을 많이 참고했으니까. (웃음)

앞으로의 작품 계획은.

현재 조니 뎁이 주연할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준비 중이다. 아마 올해 중 촬영에 들어가서 내년에 개봉할 것 같다. 1971년 진 와일더가 주연한 <윌리 왕카 앤드 초콜릿 팩토리>를 리메이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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