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성실한 음악가의 전형적 납품, <라스트 사무라이> OST
2004-01-15
글 :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요즘 할리우드의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동양풍’이다. 최근의 동양풍은 예전의 ‘오리엔탈리즘’과는 조금 다르다. 예전의 ‘오리엔탈리즘’이 이국적인 동양세계에 대한 일종의 경의 속에 그것과 모던한 세계(다시 말해 서구) 사이의 시간적 격차를 은연중 드러내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동양풍은 ‘스타일화된 장르’로서의 동양을 자기 자신의 스타일과 병치시킨다는 특징이 있다.

<라스트 사무라이>는 그런 면에서 매우 전형적이다. 음악은 할리우드의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한스 짐머가 맡았다. 이 영화는 한스 짐머가 음악을 맡은 100번째 영화라고 한다. 100번째 영화라. 정말 엄청난 정열이다. 아니, 정력이다. 할리우드에서 한스 짐머보다 더 부지런한 음악가는 솔직히 없어 보인다. 그의 성공의 비결은, 물론 뛰어난 영화파악 능력도 있고 훌륭한 오케스트레이션과 빛나는 멜로디들을 만들어내는 음악적 능력도 중요하지만, 단연 ‘성실’이다. 어느 영화에서도 성실하게 시공하여 철저하게 납품한다. 이런 예술가들의 납품을 할리우드는 선호한다. 제품에 하자가 없기 때문이다. 100개의 영화 속에서 100번 신용을 쌓아놓은 그의 영화음악 만들기는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상당 기간 탄탄대로를 달릴 것이 예상된다.

O.S.T에는 모두 11곡이 들어 있다. 모두 한스 짐머의 오리지널 스코어들이다. 그의 음악은 이 영화에서 특히 전형적이다. 대담하게 불협을 자아내는 전위적인 트랙도 눈에 띄지만 대체로 서정적이고 쉽다. 일본 음계의 단순함을 재현하는 편곡들. 전체적으로 할리우드의 웅장한 저음과 동양적인 피리소리가 내는 이국적인 고음이 매우 전형적으로 병치된다.

<라스트 사무라이>는 19세기 중반 미국 시민사회의 이상을 관념화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미국군인의 철저한 군인정신과 그것의 등가물로 제시되는 사무라이 정신을 일대일로 대입시키고 있다. 그 과정이 그리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 않는 것은, 그 둘 사이의 역사적 연관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동양의 모습을 철저한 고증을 통해 있는 그대로 재현하면서 그 속에 ‘푸른 눈’을 박아 넣는 일에 이처럼 공을 들이는 것을 보면 서구 사람들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예전과는 사뭇 다른 시각을 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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