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여느 영화광처럼 <데르수 우잘라>(Dersu Uzala), <아군 오인 사격>(Friendly Fire), <로사>(Rosa), <알제리의 전투> <초분> 등 고상한 작품을 생각했다. 그런데 미출시! 다음으로 <지옥의 묵시록>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계엄> <휴전> <허공에의 질주> <프라하의 봄> <파업전야> <낮은 목소리>를 놓고 머리를 쥐어짜며 고심했다. <지옥의 묵시록>을 구하러 비디오가게 네 군데를 전전하다가 실패할 때까지 말이다. 써야 할 글이 ‘영화평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야 내 홈페이지에 정리해놓은 추천영화 400선을 옆으로 밀어냈다.
내 삶의 영화? ‘입문’하던 시절에 아프게 다가온 <사격장의 아이들>, 사춘기의 나처럼 청소년 연애금지문화에 도전한 <여고시절> 등에 얽힌 개인사를 쓰라는 주문인가? 내 인생에 가장 깊게 각인돼 있는 영화를 꼽으라면 미학적 평가와는 거리가 멀지도 모른다. 하기사 가장 감동적으로 들었던 음악은 전문 성악가나 가수의 노래가 아니었다. 11년 전 미국의 어떤 캠프장에서 새벽 3시경에 들었던 한 2세동포의 <그날이 오면>! 박자, 음정, 발성 모든 면에서 형편없었던 그 노래에 결국 눈시울이 벌게졌던 것은 오지도 않을 ‘그날’을 기다리던 내 처지와 ‘그날’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그의 절실하고 순진한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춘기 시절, 제도권 교육의 바깥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자칫하면 중졸로 끝나버릴 학력에 추가사항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과 수만 가지의 의미없는 내용을 달달 외우는 대입공부의 공허함, 그 둘 사이에서 방황하는 슬럼프가 길게 이어졌다. 담배 피우러 ‘출근한’ 조조할인 영화관에서 <빠삐용>이 돌아가고 있었다. 억울하게 남태평양 고도의 감옥에 갇힌 두 범죄자의 끈질긴 탈출이 계속되고 여지없는 실패가 반복되었다. 마지막 유배지에서 한 사람은 평온을 대가로 안착하고 또 한 사람은 목숨을 담보로 마지막 탈출을 시도한다. 그가 엉성한 뗏목에 의지해 푸른 바다로 나아갈 때 내가 어디에 있는지 보였다.
당시 종로 ‘언더그라운드’에서 나와 내 친구들은 창살 없는 감옥에 있었다. 교실 밖으로 자의반 타의반 ‘탈출’했지만 대낮의 뒷골목에서도 마찬가지 신세였다(물론 그렇다고 창살 있는 감옥과 ‘똑같다’라는 망언은 출옥한 분들께 결례다). 불혹의 나이를 넘겨서 본 임순례의 <세친구>들처럼 말이다(나는 이 영화를 한국 최고의 리얼리즘영화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교사 그리고 고참병의 주먹세례로 청각을 잃은 만화가 지망생 ‘무소속’은 획일성과 폭력에 상처입은 나였다. ‘사내자식이 계집애같이!’의 폭력 앞에서 미용사의 꿈을 포기하는 ‘섬세’는 남성주의 문화 속에서 억압되었던 예민한 내 몸 안의 ‘여성성’이 아니던가? 또한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며 미세한 변화의 의지조차 상실한 ‘삼겹’과 내가, 몸무게만 빼고는 뭐 그리 달랐을까.
자유에 목말라했지만 뗏목을 만들 생각은 못했다. 방법도 모르고 의지도 없었다. 내게 비수처럼 꽂힌 것은 죄수의 꿈장면이었다. 재판관 앞에 불려간 그에게 사형이 언도된다. 몸부림치며 그는 항변한다. 나는 무죄다, 억울하다. 그러자 재판관 중 하나가 말한다. 너의 죄는 인생을 낭비한 죄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게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학교의 폭력성과 변덕을 저주했고 어른들의 위선에 분노했으며 ‘유신’ 이후 돌변한 세상에서 순진함을 버렸다. ‘친구’ 민이가 길거리에 나오게 된 것은 구둣발로 가슴을 짓밟던 국어 선생의 턱을 한대 갈겨버린 탓이었고 백이의 죄는 <피가로의 결혼> 콘서트 의무 관람을 거부하자 ‘결손가정’ 운운하며 모욕하던 음악 선생의 실습실 유리창을 박살내버린 일이었다. <세친구>의 상처를 깊게 안고 있었고 우리도 그들처럼 전혀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삶은 어떻게 살든 마찬가지라고 믿었다. 자포자기하고, 닐 다이아몬드 뺨치게 노래부르던 ‘동수’형 따라 목포나 인천으로 도망가고 싶은 유혹에 휩싸여 있었다.
햇빛 속으로 나오며 ‘낭비’에 대해 생각했다. 담뱃갑을 짓이겨서 거리의 휴지통에 넣었고 그날 미술관 옆 도서관에 처음 갔다(물론 담배를 그때 딱 끊었다고 생각하면 순진한 독자다). 지금 돌이켜보면 불굴의 의지를 찬양하고 낭비를 죄악시하는 <빠삐용>은 일종의 근대적 근면이데올로기를 감추고 있었지만 그때 내게는 늪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를 단순하게 설명해주었다. 물론 스티브 매퀸 탓만은 아니겠지만, 나 ‘무소속’은 ‘상택’이 되었다. 민이는 이민 가서 야채가게에서 일하며 주경야독해서 물리학자가 되었고 백이는 실종되었다. ‘동수’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