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김경형 감독 <라이어> 촬영현장
2004-01-16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꼬림누 거짓말…세상을 뒤집어주마

온도계의 수은주가 바짝 오그라든 지난 13일 오후 서울 성동구 응봉동의 오래된 주택가. 한 남자가 각목을 휘두르며 사람들을 위협하는 살풍경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주변에서는 킥킥 웃음이 터져나온다. 각목을 들고 있는 남자의 긴장된 얼굴을 살짝 덮고 있는 분홍색 여성팬티 때문. 다리가 들어가야 할 팬티의 두 구멍 사이로 큰 눈을 껌뻑이며 어리바리하게 설쳐대는 이 남자는 늘 진지하고, 강렬한 모습으로만 스크린에 등장했던 배우 주진모(30)다.

‘두집 살림’망가지는 주진모

자신을 찍으려는 극중 기자들을 쫓아가다가 잽싸게 방향을 돌려 도망가는 주진모의 모습이 한방에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동갑내기 과외하기〉로 520만의 흥행기록을 세우며 데뷔한 김경형 감독의 새 영화 〈라이어〉(씨앤필름 제작)의 8회차 촬영이 진행되는 현장이다.

1000회 상영을 돌파하며 지금도 대학로에서 인기리에 상영중인 동명의 연극을 영화화한 〈라이어〉는 ‘시작은 미미했으나 그 파국은 창대’해지는 한나절 동안의 거짓말 소동을 다룬 코미디다. 주진모가 맡은 만철은 순전히 두명의 여자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이유로 두집살림을 하는 택시기사. 우연히 현상수배범을 잡은 뒤 ‘모범시민’으로 언론의 사진세례를 받으며 평온했던 두집살림이 발각될 위험에 처하자 이를 수습하기 위한 거짓말의 대공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동갑내기…’땐 여유가 없었죠

여느 영화현장답지 않게 진행 스케줄 100% 달성을 착착 기록하며 스태프들을 놀라게 하고 있는 김경형 감독은 “이제야 첫작품을 찍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98년 연극을 보고 시나리오 작업을 했죠. 그런데 몇몇 영화사에서 거절당하고 〈동갑내기…〉 연출 제안을 받았어요. 〈동갑내기…〉는 망하면 끝이라는 초긴장 상태에서 찍느라 다른 생각 할 여유가 없었는데 이 작품은 이런저런 궁리를 하면서 찍게 되니까 비로소 내 작품을 한다는 느낌이 드네요.”

〈라이어〉는 해가 떠서 떨어지기까지의 한정된 시간과 두 여자의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선굵은 사건보다 대사(거짓말)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연출자로서는 “도전”이 될 만한 작품이라는 게 “재미있다는 것말고 작품을 선택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라고. 김 감독은 “자칫 답답하고 지루해질 수 있는 이야기의 흐름과 속도를 어떻게 장악하느냐가 연출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만철 역의 주진모와 만철 집에 얹혀사는 백수 친구 공형진이 주연이기는 하지만 〈라이어〉는 만철의 두 부인인 정애(송선미)와 명순(서영희), 만철을 괴롭히는 형사(손현주)와 일을 더 꼬이게 만드는 기자(임현식) 등 여섯 인물의 비중이 엇비슷하며 서로 거짓말을 치고받는 연기 앙상블이 핵심이 될 영화다. 김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는 설정이나 느낌만 주고 배우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감각을 드러낼 수 있도록 최초의 관객 입장에서 연출할 예정”이라며 “서 있는 것만으로 존재감을 주는 임현식씨와 손현주씨가 다른 배우들의 지지대가 돼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거짓말 치고받는 연기가 핵심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그것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서 본인 스스로 내가 누구인지 모를 지경이 되는 상황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허위의식을 가볍게 비틀어서 보여주고 싶다”는 게 연출의 변. 순제작비 23억원으로 찍고 있는 〈라이어〉는 오는 3월 중순쯤 세트촬영을 마치고 5월초 관객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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