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시각장애인인 경우는 어린 시절 딱 한번 자신의 두눈으로 세상을 본 적이 있다(혹은 그런 적이 있다고 믿는다). 그녀는 그것이 돌연 자신의 앞에 나타났던 UFO 덕택이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은 29살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간직된다. UFO가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경우의 믿음은 급기야 동네 사람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전염되어 작은 소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UFO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은 경우 그 자신이며, 결국 그 UFO의 역할을 떠맡게 되는 것은 당연히 상현이다. 영화 초반에 경우는 헤어진 연인을 향해 잠결에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라고 말하는데, 그것을 듣고 있는 이는 사실 상현이다(이는 분명 수신인에게 정확히 전달된 메시지이기는 하지만 그 함의가 너무 뻔한 까닭에 관객의 입장에선 별로 매력적인 대사는 되지 못한다).
경우는 29살이 된 지금까지도 UFO의 존재를 믿으며 다시 한번 보길 간절히 기다린다.
한편 버스기사 상현에게는 별다른 취미가 하나 있다. 바로 밤마다 자신이 DJ가 되어 <박상현과 뛰뛰빵빵>이라는 ‘짝퉁’ 교통방송을 녹음한 뒤 막차 손님들에게 틀어주는 것이다. 경우가 이 녹음된 방송을 관심있게 듣는다는 걸 깨닫게 된 뒤로 상현의 방송은 점점 그녀를 향한 남모를 연애편지가 되어간다(이를테면 그녀가 관심있어 할 만한 이야기를 가지고 방송을 구성하는 식이다). 문제는 자신이 버스기사라는 걸 밝히길 꺼려하는 상현이 경우에게 자신을 동네 전파사 ‘오너’인 박평구로 소개함으로써 생겨난다. 항상 제 시간보다 늦게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는 바람에 원망을 사는 154번 막차 버스기사, 새로 이사 온 동네에서 사귄 친절한 동네친구 박평구, 밤마다 귀가버스 안에서 듣는 교통방송의 DJ 박상현, 이 세 몫의 일을 감당하게 된 상현은 때로 난처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예컨대 경우가 ‘짝퉁’ 음악방송 DJ에게 자신의 사연이 적힌 편지를 적어 우체통에 넣는 것을 본 상현은 아침에 일어나기가 무섭게 우체국으로 달려간다.
따라서 <안녕! 유에프오>의 서사적 종결의 순간이 경우가 마침내 UFO를 보게 될 때(그리하여 다시 한번 세상을, 그리고 비로소 상현의 얼굴을 보게 될 때)이자, 상현이 자신의 정체를 경우에게 밝히는 때가 될 거라는 건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일이다. 아쉬운 것은 그 순간이 다가오기까지 <안녕! 유에프오>가 별다른 흥미로운 사건들의 연쇄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데서 기인한다. 나름대로 개성을 지닌 동네 사람들, 경우의 직장동료, 그리고 상현이 어린 시절 만났던 가수 전인권- 전인권 자신이 직접 연기했다- 등 제법 많은 수의 조역들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찰나적이고 일회적인 웃음을 유발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서사적으로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하는, 혹은 고작해야 방해가 될 뿐인 단순한 ‘끼어들기’ 이상의 역할을 담당하지 않는다. 결국 <안녕! 유에프오>는 코믹함에 대해서는 로맨스가 로맨스에 대해서는 코믹함이 방해가 되는 기이한 로맨틱코미디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경우가 보내는 사연엽서를 받기 위해 상현은 아침부터 우체국을 향해 달려간다.
라디오 방송이라는 매개를 통해 시각장애인 여성을 향한 사랑을 키워나가는 ‘순진무구한’ 남성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언뜻 한국영화 <후아유>- 여기서는 인터넷이 매개가 되며, 여자주인공은 시각장애인은 아니지만 남자주인공의 ‘참모습을 보는 것’이 불가능한 탓에 사실상 그 둘의 관계에 있어서는 거의 봉사나 다름없다- 나 찰리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 같은 영화들을 부분적으로 떠올리게 만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안녕! 유에프오>는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데 3명의 작가가 투입된 영화치고는 긴장이 떨어지고 짜임새도 허술하기 그지없다. 영화 말미에 경우에게 아무리 유치해 보이고 바보 같아도 자신의 말은 진심이라고 외치는 상현의 모습을 볼 때는 꼭 그게 이 영화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자기지시적 발화처럼 들리는 탓에 쓴웃음밖에 안 나온다. 진심이라는 말은 아무 때나 써먹는 게 아니다. 그 말이 자리를 잘못 찾은 순간엔 정말이지 모든 게 바보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U F O 를 믿 으 십 니 까 - UFO 혹은 외계인에 관하여
UFO 혹은 외계인을 만난다는 건 적어도 영화 속에서라면 드문 일은 아니다. 그것은 로버트 와이즈의 <지구가 멈추던 날>에서처럼 공포를 유발하는 일일 수도, 혹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제3종 근접조우>나 론 하워드의 <코쿤>에서처럼 구원의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물론 <안녕! 유에프오>는 후자쪽에 가까운 영화다). 좀더 흥미롭게는 일종의 계시적 존재로서의 UFO를 통해 오스카 와일드의 탄생을 성서적이고 신화적인 시공간에 위치시키고 있는 토드 헤인즈의 <벨벳 골드마인> 같은 영화를 떠올려볼 수도 있겠다. 여하간 여전히 UFO의 존재는 ‘믿거나 말거나’식의 논의 이상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혹시?’라고 생각하며 <안녕! 유에프오>의 여자주인공 경우와 같은 희망을 품고 있는 이들이라면 (문명화된) 외계생명체가 존재할 확률에 관심을 가져보았을 법도 하다.그런 분들을 위해, 전파천문학자 프랭크 드레이크는 유명한 ‘드레이크 방정식’이라는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이 방정식은 의외로 합리적이고 단순한 편인데, (특히 전파통신이 가능한) 외계문명의 수는 다음과 같은 변수들의 곱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문명화된 생명체의 발달에 적합한 별(항성)의 생성비율, 이들 별이 행성을 지니고 있을 확률, 한별에 딸린 행성들 가운데 지구와 같은 행성의 수, 이 행성에서 생명체가 탄생할 확률, 이 생명체가 문명화된 생명체로 진화할 확률, 이 지적생명체가 외부에 자신의 존재를 알릴 전파통신기술을 갖고 있을 확률, 마지막으로 이 문명이 존속할 수 있는 기간이다. 계산의 결과값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어찌 되었건 0이 되지는 않으니, UFO 찾기에 도전해볼 만하겠다고? 이때 한 가지 유의할 점, 드레이크 방정식에는 문명화된 생명체가 행성간 (혹은 항성간) 여행이 가능한 UFO를 발명할 확률은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 그걸 고려하면 UFO 찾기란 거의 하늘에서 별따기만큼이나 힘들다고 하겠다. 결론은? UFO의 출현은 영화에서 ‘기적’의 순간으로 간주되기에 아직까진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