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설국>을 보는 내내 기시감이 작용하는 건 어쩔 수 없다. 무엇보다 사사쿠라 아키라의 원작소설 <신 설국>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196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설국>의 속편격으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피할 수 없이 <설국>으로의 공명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국>의 완성을 위해 무려 13년 동안 끊임없는 수정을 거쳤다고 한다. ‘설국’이라는 제목답게 세심하게 묘사되는 설경의 스펙터클과 지역 풍물은 등장인물들이 직접적으로 발화하지 않는 미묘한 내면에 조응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가와바타는 대상의 즉물적이고 감각적인 묘사를 통해서만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문자와 심상의 행복한 결합에 그토록 집요하고 엄격하게 오랜 시간을 보낸 것이다.
하지만 <신 설국>을 쓰고 각색까지 맡은 사사쿠라 아키라의 시나리오는 지나치게 진부하여, 제목 이외에는 가와바타의 세심하게 구조화된 아름다움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고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오히려 오페라 <나비부인>이 더욱 닮은꼴이 아닐까). 눈밭에서 죽음을 꿈꾸는 시바노와 모에코의 절망은 얄팍하게 통속적인 표면만을 건드릴 뿐이다. 자동차 사고로 죽은 옛 연인, 회사의 부도와 가족과의 이별이라는 통속적인 사건들이 당사자에게는 어떤 식으로 절실한 운명으로까지 다가오게 되는가는 전혀 호소력 있게 표현되지 못한 채 최소화되고 그만큼 감정의 농도가 희석된다.
‘스키 타는 게이샤’라는 기묘한 조합만큼이나 뜬금없는 이야기의 비약은, 일본 하면 (우리를 비롯한 외국인이) 떠올리는 일련의 익숙한 엑조틱한 파노라마들과 함께 영화 전체를 무감하게 받아들이게 한다. 절망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는데 구원의 가능성 역시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똑같이 설원을 배경으로 했으며 죽음 직전까지 다가갔던 아픈 사랑의 추억담을 그린 이와이 순지의 <러브레터>가 정서를 전달하는 데 있어 비할 바 없이 효과적이었다는 엉뚱한 추억만 더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