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회 베를린영화제 Internationale Filmfestspiele Berlin
베를린은 태양을 보기 힘든 도시다. 맞받기 힘든 바람도 묵직한 구름을 흩어놓진 못하고, 잠깐 빛이 드는구나 싶으면 금세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창 밖으로 바라보기만 해도 어깨를 감싸안게 되는, 겨울의 베를린. 노란색과 빨간색으로 환하게 채색된, 베를린영화제의 상징인 앞발 치켜든 곰이 길을 잃은 것처럼 난처해 보이는 건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요 상영관이 모여 있는 탓에 원색 깃발이 가득 펄럭이는 포츠담 광장과 그 바로 옆 미래도시의 분위기를 가진 소니센터는 이 회색 도시에 잘못 뛰어든 이방인과도 같았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정작 베를린을 찾아왔어야 할 레드 카펫 위의 이방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카데미 영향으로 할리우드 스타들 대거 불참
2월5일 베를리날레 팔라스트에서 개막을 선언한 제54회 베를린영화제는 베를린시의 교육예산감축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시위 속에서 다소 어수선하게 시작됐다. “베를린은 영화산업기지로 최고의 도시”라는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베를린 시장의 치하는 “우리의 교육을 위해 천사가 되어달라”는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묻혔고, 협찬사 폴크스바겐이 준비한 40대의 판테온 리무진은 승객을 찾느라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5일 아침 불참을 통보해온 주드 로를 필두로 잭 니콜슨과 닉 놀테, 니콜 키드먼, 마이클 윈터보텀 등 개막식 참석이 기대됐던 스타감독과 배우들은 결국 베를린에 오지 않았다. 개막작 <콜드 마운틴>의 앤서니 밍겔라 감독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1967-1976: 아메리카 뉴시네마 회고전’을 위해 뒤늦게 당도한 페이 더너웨이, <굿바이 레닌>의 다니엘 브륄이 몇 안 되는 스타들. 이 와중에, 세 번째 행사를 치르는 디이터 코슬릭 베를린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독일 코미디언 앙케 엥헬케와 함께 행사를 진행하면서 만담으로 일관했다. 코슬릭은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베를린영화제 상영작들이 지나치게 진지하고 웃음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위대한 독일 시인 하이네는 ‘진지한 주제를 위트있게 전달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코슬릭의 유머는 찬바람 부는 광장에서 예정보다 한 시간 가까이 늦어진 행사를 기다리던 많은 이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데 그쳤다. 유력일간지 <디 벨트>는 그에게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이 할리우드 스타들의 불참으로 상당한 곤란을 겪고 있다”는 멘트를 던졌다.
△ 아케이드 안에 설치된 매표소 앞은 표를 구하기 위해 줄을 선 관객으로 문을 열기 전부터 장사진을 이뤘다.
△ 개막식에 참석한 클라우디아 쉬퍼. 할리우드 배우들이 없는 행사장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2월 말로 앞당겨지면서, 베를린영화제가 올해 유독 한산하리라는 예상은 오래전부터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일간지 <쾨니셰룬트샤우>는 “영화제는 스타가 아니라 영화를 보러 온다”고 썼다. 그런 점에서 스물세편의 경쟁부문 상영작,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아우르는 파노라마, 거장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제시하는 새로운 섹션 베를리날레 스페셜 등 400편에 달하는 영화들은 부족함 없는 선택을 보장하고 있다. 경쟁부문은 노장 에릭 로메르와 테오 앙겔로풀로스, 켄 로치, 파트리스 르콩트, 존 부어맨이 신작을 들고 찾아와 건재한 역량을 과시하고, 9년 만에 만나는 <비포 선라이즈>의 속편 <비포 선셋>이 옛 친구를 만나는 듯한 기쁨을 준다. 베트남 전쟁의 상처를 탐구하는 <뷰티풀 컨트리>와 올해 선댄스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한 <영광스러운 마리아>는 베를린이 발견한 젊은 기운. 할리우드영화 <미싱> <몬스터>를 포함해 라틴아메리카와 스칸디나비아 같은 변방까지 골고루 배려한 경쟁부문이지만, 아시아영화는 홍콩·대만의 여배우이면서 감독인 장애가의과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 두편뿐이다. <사마리아>는 2월10일 첫 번째 시사와 공식 기자회견을 가지는데, 2002년 경쟁부문에 초청된 <나쁜 남자>가 충격에 가까운 반응을 불렀던 터라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파고>의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위원장을 맡아 사미라 마흐말바프, 가브리엘 살바토레 등과 함께 황금곰상 트로피의 행보를 결정하는 심사위원단을 이끈다.
베를린의 관객은 정치적인 것을 기대한다
2004년 베를린영화제는 모토가 없지만, 파노라마 부문을 지휘하는 빌란트 스펙은 “우리는 항상 정치적이었고, 그것이 우리 관객이 기대하는 바다”라고 선택의 기준을 설명했다. 남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 초점을 맞추면서, 정치와 역사에 눈을 돌리겠다는 건 코슬릭도 오래전부터 강조해온 사실. 파노라마와 인터내셔널 포럼은 칸영화제에 뺏긴 월터 살레스의 체 게바라 전기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대신하는 다큐멘터리 <체 게바라와의 여행>,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벌어진 아파르트헤이트와의 투쟁을 다룬 <메모리 오브 레인>, 막차를 타고 도착한 샹탈 애커만의 <내일, 우리는 나아간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때문에 고통받는 이스라엘과 독일 젊은이의 이야기 <워크 온 워터> 그리고 한국의 독립영화감독 김곡·김선 형제의 <자본당 선언>과 “한국영화의 떠오르는 스타”라고 소개된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로 프로그램이 인쇄된 벽보를 가득 메우고 있다. ‘1967-1976: 아메리카 뉴시네마 회고전’은 <대부> 시리즈와 <이지 라이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페이퍼문> <와일드 번치>를 포함하고 있는 섹션. 이 영화들을 스크린으로 보지 못했던 젊은이들은 여전히 무관심한 반면 중년으로 접어든 기자와 관객은 거칠었던 젊은 시절을 향수하는 듯 티켓을 요청하고 있다. 피터 그리너웨이와 에르마노 올미는 신설된 베를리날레 스페셜을 통해 반가운 새 영화를 선보인다.
보기만 해도 눈앞에 색색 무늬가 아른거릴 만큼 복잡한 프로그램 앞에서, 부지런한 독일 관객은 커다란 수첩을 들고 보고 싶은 영화와 매진된 영화, 그 대안이 될 만한 영화를 꼼꼼하게 점검했다. 마를렌 디트리히 광장 옆 쇼핑몰 아르카덴은 티켓 판매대가 문을 열기도 전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선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책과 음악, 간식을 준비한 열성적인 관객이지만, 가장 먼저 매진된 영화들은 <콜드 마운틴>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미싱> 등 할리우드 메이저영화들. 독일영화의 현재를 제시하는 도이체스 키노와 단편영화가 그 틈바구니에서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티켓 판매대 앞에서 만난 한 엔지니어는 “메이저영화는 곧 극장에서 상영하기 때문에 볼 필요가 없다. 나는 십년째 베를린영화제를 찾고 있는데 인터내셔널 포럼 중심으로 예매할 생각이다. 홍콩이나 일본영화를 좋아하지만 독일에선 자주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올해 베를린영화제는 스타는 없지만, 여전히 관객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유려한 영상, 밋밋한 드라마
<콜드 마운틴>은 전쟁영화이면서 로드무비이고 러브 스토리이기도 한 영화다. 원작 <콜드 마운틴의 사랑>은 참혹한 전쟁에 지쳐 탈영을 선택한 남자의 여정과 생존을 터득해가는 여자의 분투를 담고 있지만, 앤서니 밍겔라는 여기에 전작 <잉글리쉬 페이션트>처럼 눈물어린 사랑을 덧붙였다. 콜드 마운틴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년 인만(주드 로)은 연인 아이다(니콜 키드먼)를 고향에 남겨두고 남북전쟁에 참전한다. 피터스버그 전투에서 부상당한 그는 “전투도, 행진도 모두 그만두고, 내게 돌아와 달라”는 아다의 편지를 받고선 고향으로 향한다. 인만과 아이다는 서로 몇 마디 나누어보지도 못한 채 애틋한 연정만 확인하고 이별한 연인. 인만이 죽음과도 같은 고난을 견디면서 콜드 마운틴으로 가는 동안, 아버지를 잃고 홀로 남은 아이다는 씩씩한 처녀 루비(르네 젤위거)의 도움으로 농장을 꾸려간다.
<콜드 마운틴>은 수은처럼 무겁게 찰랑거리는 물결 위로 먼 산맥이 비치는 첫 장면부터 아름다운 영상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떠올리게 하는, 고운 모래를 한겹 뿌린 것처럼 아득한 영상은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촬영감독이기도 했던 존 실의 흔적. 그러나 <콜드 마운틴>은 그 그림에 걸맞은 드라마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밍겔라는 “<콜드 마운틴>은 단순히 남북전쟁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한 남자의 귀향, 전쟁 때문에 변해버린 삶을 말하는 영화다”라고 했지만, “이건 스토리가 아니라 아이디어에 불과하다”는 로저 에버트의 혹평이 더 적절하게 느껴지는 단조로운 서사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밍겔라는 지난해 12월25일 미국에서 개봉한 <콜드 마운틴>의 흥행 실패와 함께 남북전쟁 영화를 루마니아에서 찍었다는 이유로 언론의 공격에 시달려왔다. 사정은 베를린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루마니아에서 즐거웠느냐”는 비난 섞인 질문까지 나왔다. 세명의 주연 외에도 내털리 포트먼과 지오바니 리비시, 도널드 서덜런드 등이 출연한 <콜드 마운틴>은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과 감독, 조연인 브랜든 글리슨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만이 참석한 가운데 2월5일 조촐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콜드 마운틴> 감독과 제작자 인터뷰 “위대한 사랑, 비범한 우정에 관한 영화다”
△ 왼쪽부터 필립 세이무버 호프먼. 감독 앤서니 밍겔라. 브랜든 글리슨.
<콜드 마운틴>은 미국에 관한 거대한 서사시 같은 영화다. 하지만 당신은 외국 배우를 여러 명 기용했고, 노스캐롤라이나가 아닌, 루마니아에서 영화를 찍었다.
앤서니 밍겔라 노스캐롤라이나는 더이상 1860년대 같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루마니아에서 오래된 세월이 느껴지는 산맥을 찾았고, 그곳에 옛 시절처럼 보이는 콜드 마운틴을 만들었다.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건 영화의 자연스러운 속성 아닌가. 루마니아는 우리가 가진 유일한 대안이었고, 그 덕분에 제작비 2천만달러를 절약할 수 있었다. 게다가 <콜드 마운틴>은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이면서 위대한 러브 스토리이기도 하다. 이 세상 어느 나라에나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다.
하비 와인스타인 문화는 서로 교감하고 변화를 겪어야 한다. 미국영화는 유럽과 아시아 박스오피스를 석권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미국 바깥 세상을 향한 이해가 필요하다. 나는 <콜드 마운틴>이 영국과 루마니아 같은 유럽 인력과 합작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콜드 마운틴>에는 흑인의 목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백년 전에도 목소리를 가질 수 없었다.
앤서니 밍겔라 노스캐롤라이나 사람들은 노예제도를 수호하기 위해서 참전하지 않았다. 그들은 노예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북부의 위협으로부터 땅을 지키고자 했을 뿐이다. 이 영화에는 노예제도를 담은 장면도 몇 군데 있었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삭제됐다. 나는 진실을 말하는 원작에 충실하기로 했다(한 기자는 원작에서 흑인이었던 루비를 왜 백인으로 바꾸었느냐고 묻기도 했지만, 앤서니 밍겔라가 이미 몇번이나 해명했던 오해로 밝혀졌다. 루비는 원작에서도 백인이었다).
아이다와 루비의 우정은 매우 인상적이다. 당신은 왜 그 두 여인의 관계를 중요하게 다루었는가.
앤서니 밍겔라 그들은 서로에게 다가가고, 말없이 서로를 돕고, 변화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다와 루비는 고난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그 독특하고도 비범한 우정에 계속 마음이 끌렸다. <콜드 마운틴>은 비극으로 끝나는 것 같지만, 스토브로드(루비의 아버지)가 그런 것처럼 이 영화 속의 사람들은 그렇게 상처를 치유한다. 아이다와 루비와 스토브로드는 그 참혹한 폭력 속에서도 살아남아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원작 <콜드 마운틴의 사랑>은 인만의 이야기와 아이다의 이야기로 나누어져 있다. 어떻게 각색했는가.
앤서니 밍겔라 각색은 신비롭고도 복잡한 과정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엔 원작이 가진 장점과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니콜 키드먼과 주드 로, 르네 젤위거는 오늘 나타나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인가.
하비 와인스타인 주드 로와 르네 젤위거는 다른 영화를 찍고 있고, 니콜 키드먼은 집안일 때문에 호주에 갔다. 그들은 모두 <콜드 마운틴> 해외 홍보에 열심이다. 바쁘지만 않았다면 분명히 이곳에 왔을 것이다. 나는 베를린영화제와 인연이 깊다. 조지 클루니와 르네 젤위거, 모니카 벨루치, 줄리엣 비노쉬, 리처드 기어가 모두 미라맥스 영화 때문에 베를린영화제에 왔었다. 나에 대한 평판을 믿어라. 내가 그들을 오게 할 수 없었다면, 누구도 할 수 없는 거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