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리베트에 대해 낯설어할 수도 있는 (잠재)관객에게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누드모델>(1991)에 이어 오랜만에 극장 상영되는 리베트의 영화인 <알게 될거야>는 어쩌면 리베트의 생소한 세계로 용이하게 입문하게 할 수 있는 영화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리베트의 세계를 구성하는 중요 모티브들, 이를테면 현실과 근접해 있는 세계로서의 무대 위의 세계, 비밀과 음모가 은밀하게 이뤄지는 어떤 한정된 공간, 혹은 사랑의 변덕스러움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그것들이 경쾌한 리듬 안에 실려 있다. 그런 면에서 <알게 될거야>는 어쩌면 여기에 매혹된 사람들로 하여금 리베트의 세계를 향해 좀더 깊숙이 들어가고픈 욕망을 생기게 해줄 영화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영화는 온통 검은색의 화면을 밀쳐낸 빛이 무대 위의 한 여인을 서서히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녀가 영화의 주인공인 카미유(잔 발리바르)이다. 3년 전 파리를 떠나 이탈리아로 가서 연극배우로 성공을 거둔 그녀는 이제 극단과 함께 연극 공연을 하기 위해 오랜만에 파리로 돌아와 있다. 이런 카미유에게 파리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예전의 연인이었던 철학자 피에르(자크 보나페)의 존재를 무심결에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결국 이 두 옛 연인은 만남을 갖게 되고 이어 미묘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한편 카미유의 현재 연인이며 극단의 연출가인 우고(세르지오 카스텔리토)는 18세기 이탈리아의 작가 골도니의 미간행 희곡을 찾는 일에 매달리다가 이 일을 도와주는 젊은 여인 도미니크(엘렌 드 푸제롤레)와 친밀함 혹은 그 이상의 감정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피에르의 현재 연인인 소냐(마리안 바슬레)와 그녀를 쫓아다니는 도미니크의 이복오빠 아르튀르(브뤼노 토데쉬니)의 이야기도 그려진다.
<파리는 우리의 것>(1960)이나 <아무르 푸>(1968) 같은 리베트의 이전 영화들에서 종종 그랬던 것처럼, 루이지 피란델로의 <당신이 내게 원한 대로> 공연을 끌고 들어오는 <알게 될거야>에서도 연극 무대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외딴 세계가 아니라 현실을 비추거나 하면서 현실과 접점에 있는 세계이다. 그래서 영화 속의 연극은 종종 영화 속 인물들의 무대 밖 이야기를 슬그머니 암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혹은 이 영화 속의 극장이 배우와 연출가인 카미유와 우고를 제외한, 즉 연극과 특별한 관련이 없는, 다른 네 인물들이 꼭 한번씩은 들러서 자신들의 감정을 확인해보는 공간이라는 점에서도 현실과 무대 사이의 흐릿한 경계를 알아채기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무르 푸>의 스토리 개요의 첫 부분에다가 리베트는 피란델로의 구절을 인용해 이렇게 쓴 적이 있었다. “내가 생각해봤더니 우리는 모두 미쳤더라.” 그만큼 리베트의 초기 영화들에는 광기나 편집증, 인간관계의 단절 같은 요소들이 자주 보였었다. 그러나 하워드 혹스나 에른스트 루비치가 다룸직한 별난 커플들의 로맨틱 스토리를 한번 더 꼬아놓고서는 그 험한 도로를 혹스보다는 훨씬 한가롭고 느리게 걸어가는 듯한 <알게 될거야>에는 앞서 이야기한 부정적인 요소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유희할 줄 아는 노감독의 가벼우면서도 우아한 자태가 더 두드러진다. 그래서 <알게 될거야>는 초심자들에게는 리베트의 세계로 좀더 쉽게 들어가는 관문이 될 수도 있다. 2시간30분에 이르는 다소 긴 러닝타임? 이건 4시간은 족히 되는 <누드모델> 같은 리베트의 다른 영화들에 비하면 절대 긴 편이 아니다.
:: 그녀는 우리를 놀라게 한다
잔 발리바르
<알게 될거야>의 한 장면에서 옛 연인 피에르를 찾아갔던 카미유는 그만 예전의 감정이 다시 불타버린 옛 연인에 의해 그만 다락방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연극 공연 시간에도 맞춰가야 하는 그녀는 결국 그 방의 천장을 통과해 지붕 위를 걸어간다. 그때의 카미유의 그 걸음걸이, 서두르는 듯하지만 절대 샌들을 벗지 않은 채로 아슬아슬한 품위를 유지하는 그 걸음걸이는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것 가운데 하나였다. 이때쯤이면 영화를 보는 많은 사람들이 이 여배우의 이름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어할 것 같다.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인 미소가 돋보이고 가늘고 긴 몸에 유연함과 품위와 확신을 한꺼번에 새겨넣은 그녀의 이름은 잔 발리바르(1968∼)이다.
연극과 무용을 공부한 발리바르는 아르노 데플레생의 <파수병>(1992)으로 스크린에 뛰어들었다. 이후로 그녀는 데플레생(<나의 성생활>(1996)), 올리비에 아사야스(<8월 말 9월 초>(1998)) 같은 저명한 감독들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지금까지 그녀의 매력을 가장 잘 발휘하게 해준 감독은 <알게 될거야>의 리베트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발리바르는 <알게 될거야>를 통해 동시대 프랑스 영화계의 가장 뛰어난 여배우 가운데 하나로까지 발돋움하게 되었다. 켄트 존스라는 미국의 저명한 영화평론가는 “그녀가 나를 놀라게 한다”라는 글에서 발리바르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가장 단조로운 대사조차 음악으로 만들어버리는 기분 좋은 목소리, 너무도 우아한 동작에의 감각, 1분 동안은 환희로 번쩍였다가 그 다음엔 분노로 불타는 눈, 항상 주의깊게 말을 만들어내는, 관능적이면서도 독기서린 입. 발리바르는 정말이지 많은 것들을 비축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