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누가 누군지 부모도 헷갈려! <열두명의 웬수들>
2004-02-10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자식은 열두명인데, 부모는 단 두명. 날마다 12:2로 맞붙어야 하지만, 한명이라도 부족했다면 이렇게 행복할 수 있었을까?

<열두명의 웬수들>은 정말 존재했던 가족의 이야기다. 열두명의 자식을 두었던 프랭크 B. 길브레스는 그중 두 아이와 함께 <치퍼 바이 더 더즌>(Cheaper by the Dozen)을 썼고, 그 책은 1940년대에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 50년이 넘게 흐른 지금, “열둘이나 되는 아이들을 자식 둘 키우는 것처럼 수월하게” 길러낸 이 경이로운 아버지는 시대와는 맞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선량하고 난처한 얼굴을 가진 스티브 마틴은 일보다 가정을 위에 두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남자를 설득력 있게 연기했다.

풋볼 코치 톰 베이커(스티브 마틴)와 아내 케이트(보니 헌트)는 열둘이나 되는 아이들 때문에 좋은 직장도 포기하고 시골에서 살고 있다. 아이들은 헌옷을 물려입어야 하고 자기만의 방도 가질 수 없지만 행복하게 지내왔다. 그러나 이 행복은 톰이 모교팀 코치 자리를 받아들이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새로 이사간 화려한 저택보다 시골의 낡은 옛집을 그리워한다. 케이트가 처음으로 출판되는 자신의 책 홍보를 위해 2주 동안 뉴욕으로 떠나면서, 베이커 가족은 한층 힘든 위기를 맞는다.

이 영화의 감독 션 레비는 TV시리즈로 경력을 쌓다가 가벼운 로맨틱코미디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를 연출했다. 그 때문에, 그리고 TV시트콤에 딱 어울리는 설정 때문에, <열두명의 웬수들>은 드라마보다 누가 누구인지 부모도 헷갈리는 아이들의 캐릭터가 더 기억에 남는 영화다. 황소개구리를 품고 사는 마크나 풋볼팀 대기실을 종횡무진하는 쌍둥이 카일과 나이젤, 영리한 머리로 장난을 도맡아 계획하는 새라, 험난한 사춘기를 겪는 찰리. 집안을 가득 채우는 이 아이들은 씩씩하고 활기있다. 베이커 부부가 집나간 마크를 찾기 위해 열한명의 아이들을 밤거리에 푸는 장면은 이 시대착오적인 영화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원작을 좋아했고, 영화도 싫어하지 않은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소년 시절 <치퍼 바이 더 더즌>을 읽으면서 이 아이들 같은 형제를 갖고 싶어했다고 고백했다. 사려 깊은 큰딸 노라를 연기한 파이퍼 페라보와 <리지 맥과이어>로 알려진 힐러리 더프, 그리고 총명한 눈동자를 반짝거리면서 뛰어다니는 다른 열명의 배우들은 영화 속 캐릭터 그대로 사랑스러운 존재들. 그들은 1940년대에 살았다는 어느 대가족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지금 이곳으로 끌어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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