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엘시드: 전설의 영웅>(<엘시드>)이 다루고 있는 이 11세기 중세 영웅의 실제 이야기는 사실 훨씬 더 복잡한 감이 있다. 로드리고는 그 이후로도 두번은 더 추방당하고, 사랑해서 결혼한 여인은 여전히 아버지의 원한을 풀지 못한다. 게다가 종교와 지역으로 어지럽게 분열된 스페인의 난맥상까지, 엘시드의 일대기는 너무 드라마틱해서 극작가 코르네유는 그중 한 에피소드만으로 작품을 썼을 정도였고(<르 시드>), 61년에 찰턴 헤스턴과 소피아 로렌이 공연한 영화는 러닝타임이 무려 182분에 이르러야만 했다.
그런 육중하고 복잡한 영웅설화를 채 한 시간 반이 넘지 않는 말랑말랑한 가족애니메이션으로 가공하려니 당연히 무리가 따르겠지만, ‘스페인영화의 세계시장 진출’이라는 대의(?)를 위해 발벗고 나선, 야심찬 제작자 훌리오 페르난데즈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스페인이 배경이면서도 영어로 제작했던 <다크니스>처럼 <엘시드>는 애초부터 영어로 더빙하고 의도적으로 디즈니의 90년대 2D 전성기 작품들을 참조한다. 선악의 평면적인 대립구조, 로맨스를 축으로 두는 각색, 원작 왜곡마저 불사하는 단순화, 해피엔딩, 유머를 동반하며 빠르게 넘어가는 액션시퀀스 등. 하지만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영화는 이야기를 설명하느라 시종일관 헐떡댄다. 나쁘지 않은 그림이나 사운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어설픈 흉내를 내고 만 셈인데, 정말 문제는 섣부른 민족영웅의 세계화 시도가 ‘엘시드’를 영어로 미국식 농담이나 던지며 눈 한번 찡긋하는 텅 빈 영웅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