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데뷔작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를 통해 사적인 기억에마저 공적인 기억이 함께 뒤엉킬 수밖에 없는 한국사회 특유의 단면을 거칠게나마 투영시켰던 김응수 감독은 이제 ‘온전히’ 사적인 감정의 파고에 몸을 맡긴 두 번째 영화를 완성하였다. 그러나 타인 앞에서 결코 감정을 폭발시키는 법이 없는 쿨한 그들의 뜻모를 눈물과 짤막한 대사와 격렬한 몸짓이 빚어내는 화학작용은 관객이 ‘추론’해내야만 하는 과제가 된다. 억압된 것의 귀환과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완성을 향한 끊임없는 충동이 뒤엉킨 욕망이라는 복잡 미묘한 실체를 분석하려는 감독의 시선은, 그야말로 분석가거나 방관자의 그것이다. 그는 결코 욕망의 중심으로 뛰어들지 않는다. 너무나 차갑게 띄엄띄엄 보여지는 욕망의 연쇄는 관객에게 빠진 고리를 스스로 채우라 청하지만, 욕망의 담론 자체가 결코 욕망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영화를 본다는 경험에 ‘이해’가 필수적인 조건은 아니지만 ‘체감’할 수 없는 나열은 지나치게 낯설게 느껴진다. 이 인공적으로 계산된 욕망의 뫼비우스의 띠는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다다르지 못하고 서성거리다 슬그머니 소멸되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인공성은 <욕망>의 다른 성취 지점이기도 하다. 욕망을 공간화하는 <욕망>의 방식은, 서울이 이토록 무국적적인 공간으로 보인 적이 있던가 돌이켜보게 한다. 이건 현실성을 포기하는 대신 어떤 ‘보편성’을 얻으려는 노력이다. <버스, 정류장>이라든가 <거류> 등에서 인물의 심리가 투영되는 공간을 잡아내는 데 지극히 섬세한 시선을 보여주었던 박기웅 촬영감독의 카메라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