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CIA 요원 제이크(스티븐 시걸)는 아내도 없이 애지중지 키워온 딸이 친구들과의 타이 배낭여행 중 테러집단에 잡히자 사건을 직접 해결하기 위해 타이로 떠난다. 아버지가 구하러 와줄 것이라는 딸의 믿음은 절대로 어긋날 리 없으니 안심해도 좋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뻔한 내용을 전개시키기 위해 맨몸으로 부딪히는 액션을 펼쳐야 할 스티븐 시걸이 너무 늙어버렸다. 액션연기가 힘에 부치게 되자 손끝만으로 적을 제압하는 무술을 개발했고, 부득이하게 온몸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에 대역을 필수적으로 사용하더니, 액션이 주던 카리스마를 채우기 위해 얼굴 클로즈업을 부담스럽게 반복한다. 애써 그늘에 감추려하나 잘 되지 않는 늘어진 볼살을 확인하는 순간에는 그 육체의 노쇠함이 안쓰러울 지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처구니없는 진행과 진부한 스타일은 영화를 더욱 깊은 나락으로 몰아간다. 적의 우두머리가 쏜 화살을 다시 총알로 막아내고 칼을 휘둘러서 날아오는 화살을 두 동강내는 주인공이나, 마지막 싸움에서 사술을 부리는 주술사와 이를 막기 위해 힘을 합쳐 기를 모으는 수도승들의 일전 정도는 웃자고 하는 농담이려니 그냥 넘기더라도 견디기 힘든 장면들은 여전히 남는다. 딸을 구하러 온 아버지가 딸보다도 어려 보이는 현지 여자와 벌이는 곤혹스러운 베드신이나 홀연히 나타나 제이크를 유인하더니 갑자기 옷을 벗어 가슴에 쓰인 신비한 암호문을 보여주는 묘령의 여인 등은 보고 있기가 힘들 지경이다.
헷갈리지 말아야 할 지점. 영화의 제목인 ‘벨리 오브 비스트’는 야수의 계곡(valley)이 아니다. 굳이 번역하자면 ‘야수의 내부(belly: 배, 내부)’ 정도가 되겠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스티븐 시걸의 똥배를 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