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굽힐 줄 모르는 어느 기자의 마약 전쟁, <베로니카 게린>
2004-02-25
글 : 김혜리
꺾일지언정 굽힐 줄 몰랐던 어느 기자의 마약 전쟁.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겨우 걸음마를 뗀 아이들은 나뒹구는 마약 주사기를 장난감 삼아 놀고, 소년들이 공을 차는 주택가에는 마약 딜러에게 고문당하는 자의 비명이 무상하게 울려퍼진다. 좀더 자라면 이 아이들은 조직에 고용돼 마약 행상에 나설 것이다. 마약이 오염시킨 1994년 아일랜드 더블린의 빈민가 풍경 앞에서는, 분노의 감정이 마땅하다.

어떤 경우에나 싸움은, 성토나 한탄과는 다른 문제다. 상대가 “네 아들을 유괴해 성폭행한 다음, 네 년을 쏘아 죽여주지”라고 협박하는 무뢰한일 때는 더욱. 그러나 <선데이 인디펜던트>의 열혈 기자 베로니카 게린은, 기사나 쓰고 수사는 경찰에 맡기라는 현명한 충고를 묵살한 채 마약 트래픽의 진원지를 캔다. 의욕과 사명감이 마치 방탄조끼라도 되는 양 암흑가를 들쑤시는 그녀의 행보를 지켜보는 관객의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움직이는가?

조엘 슈마허 감독은 계몽적 의도가 아니라 베로니카 게린이라는 여성의 ‘캐릭터’가 연출을 결심하게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게린 역의 케이트 블란쳇은 죽음까지 이른 게린의 모험 뒤에, 범죄를 뿌리뽑겠다는 의지 못지않게 특유의 퍼스낼리티가 있었음을 드러낸다. 게린은 에린 브로코비치처럼 자신과 아이의 생존을 위해 싸우다 영웅이 된 신데렐라가 아니다. 그녀는 타고난 야심가이고 근사한 각선미를 활용하는 능란한 협상자이며, 파렴치한 근육질 사내들을 제압하는 쾌감에 중독된 여성이다(그녀의 의상을 보라!). 잘 웃고 잘 울고 음악과 술, 담배, 스피드를 즐기는 게린의 불꽃 같은 존재감은 영화 속에서 그녀의 빨간 자동차와 더불어, 화산재에 덮인 듯 침울한 더블린의 유일한 빛이다.

<베로니카 게린>은 1996년 암살 현장으로 영화를 열고 닫는다. 같은 사건을 아무것도 몰랐던 피살자의 시점으로, 그리고 다시 살인자의 시점으로 보여주는 구성은 충격과 서스펜스를 제대로 제공한다. 그러나 게린의 업적을 칭송하는 영웅주의적 후일담은, 죽음의 강렬하고도 서늘한 여운을 흐린다. <제너럴>의 ‘의적’ 마틴 카힐이 게린의 표적으로 잠시 등장하며, 슈마허의 전작 <폰부스>의 콜린 파렐이 일부러 덧붙인 기색이 너무 역력해 미소를 자아내는 장면에 카메오로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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