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링 다운 더 하우스>는 그런 점에서 지극히 전형적이고 동시에 예외적인 스티브 마틴 코미디다. 외로운 피터(스티브 마틴)는 일밖에 모르는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세무변호사. 이혼한 아내와 화해하고 싶지만 영 뻣뻣하고 아이들과도 평행선만 긋는다. 스티브 마틴식 ‘소동’은 이런 피터가 금발미녀인 줄로 알고 만났던 채팅 속 여인 샬린(퀸 라티파)이 실은 재소자 출신 흑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누명을 벗기 위해 접근한 그녀를 떼놓으려고 애써보지만 이미 늦은 일. 난처해진 피터가 그녀와 동거 아닌 동거를 시작하고 이로 인해 자잘한 오해와 소란이 발생한다. 그러나 결국 피터는 샬린을 통해 예기치 않은 삶의 활력과 가정을 되찾고 샬린은 누명을 벗게 된다는 스티브 마틴표 결말이다(당연히).
그러나 예외적인 점은 이 영화의 ‘웃지 못할 일’에 있다. 피터의 상관, 고객, 이웃 등 상류층 백인들이 자기들만 모인 곳에서 쏟아내는 인종주의적 발언들은 ‘정치적 올바름’의 시대로선 폭소가 터질 정도로 어이가 없지만 백인 상류사회에선 엄연한 현실. 이 엄연한 현실을 상세히 묘사하면서 영화는 ‘웃자는 겁니다’라며 능청을 떤다. 힙합룩으로 랩을 쏟아내는 스티브 마틴을 구경하는 것도 쏠쏠한 즐거움이었겠으나 이 영화가 박스오피스 3주 연속 1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여전히 논쟁적인 미국사회의 치부에 대한 능청스러운 소동(bringing down the house)을 통해 분노와 통쾌함이 엇갈리는 공감의 대갈채를 끌어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