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이 미묘한 떨림, <신 설국>의 유민
2004-02-25
글 : 오정연
사진 : 정진환

깃털처럼 가벼워 보이는 의상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선 그의 환한 미소 뒤로, 미묘한 떨림이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 ‘처음’의 느낌일 것이다. 유민은 지금 자신의 첫 주연영화 <신 설국>의 뒤늦은 개봉을 앞두고 있고, <청연>에 캐스팅되어 촬영을 준비 중이다. 그의 영화 속 연기를 보는 것도 처음이고, 그가 한국영화에 출연하는 것도 처음이다. ‘처음’이라는 말은, 우리가 그의 얼굴을 익숙하게 알고 있음을 떠올릴 때, 유난히 낯설게 다가온다.

유민은 나카야마 미호를 보면서 연예인을 꿈꾸게 된 내성적인 연예인 지망생이었다. 그리고 주연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출연을 결심한 영화가 <신 설국>이다. 영화는 죽음을 맞기 위해 온천마을을 찾은 중년 남자와,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젊은 게이샤의 교감을 다룬다. 연기를 처음 시작하는 그에게 정작 어려운 부분은 상대배우와의 육체적 접촉이 아니라 그 미묘한 교감의 순간을 표현하는 일이었다. 실제로 그는 둘이 처음 만나서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40번도 넘는 NG를 냈다고 한다. <신 설국> 이후, 그에겐 “상대배우와 시선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빨개지는 내성적인 성격”이나 연기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과제가 절실하게 다가왔다.

그는 를 보면서 한국영화에 출연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후에키 유우코를 버리고, 유민이라는 한국 이름을 택한 것도 한국영화에 나오고 싶어서다. 그러나 한국에 오자마자 맡을 수 있는 배역은 언어문제로 인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첫 출연 드라마 <우리집>에 ‘청각장애인’으로 나오고, 이후 각종 쇼프로그램과 CF에서 ‘말없이 다소곳한 모습’을 내세웠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최초의 일본인 연예인’으로, 혹은 전통적이고 여성적인 이미지를 가진 좋은 느낌의 연예인으로 사랑받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신 설국>의 선정적인 장면만을 편집해서 만든 동영상이 ‘유민의 포르노’로 둔갑해서 인터넷에 유포된 사건이 있었다. 아마도 사람들은 평소 가지고 있던 그녀에 대한 이미지로 인해 이 사건을 더욱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는 “<씨네21>에 장동건, 전지현처럼 좋아하는 배우가 표지로 나오면 꼭 챙겨본다”고 한다. 팬으로서 그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자신도 역시, 출연한 영화를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사랑받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처음 출연하는 영화 <청연>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장진영, 김주혁 등과 함께 출연할 이 영화에서 유민은 자신만만한 일본인 여류비행사 기베를 연기할 것이다. 가장 많은 제의를 받은 장르가 멜로였음에도, 그는 “멋진 여자들의 우정을 다룬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모습이 사람들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처음 <신 설국>에 출연할 것을 결심했을 때처럼, 한국에서의 활동을 마음먹었을 때처럼, 이것은 다양한 얼굴을 가진 배우가 되기 위한 최선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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