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뉴스]
<히달고> 주연 맡은 비고 모르텐슨
2004-02-27
글 :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고난의 경주’ 아라곤이 간다

<반지의 제왕>의 영웅 아라곤, 비고 모르텐슨(46)은 유행이 지난 양복을 입고 인터뷰장에 들어왔다. 좁고 긴 칼라에 반듯한 네모형의 녹색 싱글 양복은 몇군데가 늘어나 있어 마련한 지 오래된 것 같았다. 아라곤의 검고 긴 머리 대신 갈색 단발머리를 한 모르텐슨은 막 상경한 카우보이처럼 소박해보였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그가 아라곤을 연기한 배우임을 알아채지 못할 것 같다.

85년 <도망자>의 농부 역으로 데뷔한 뒤 조연급에 머물다가 <반지의 제왕>으로 일약 스타가 된 그가 <반지의 제왕> 뒤 처음 선택한 주연작은 조 존스톤 감독의 <히달고>. 19세기 말 미국인으로서 아랍의 4800km 장거리 말달리기 대회에 출전한 프랭크 홉킨스라는 실제 인물의 이야기다. 어머니가 아메리카 원주민인 혼혈의 홉킨스는 군집배원 시절에 운디드니의 인디언 학살을 목격한다. ‘히달고’라는 이름의 말과 짝을 이뤄 미국내 말달리기 대회마다 1등을 해온 그는 아랍상인의 권유에, 학살의 기억에서 벗어나고픈 심정까지 보태져 중동 사막을 가로지르는 고난의 경주에 참가한다. 영화는 여기에 아랍인 내부의 권력 다툼, 아랍 족장 딸과의 친교 같은 허구의 사연을 섞어 이국 땅의 장정을 중계한다. 지난 24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모르텐슨은 “고난과 싸우면서, 극한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는 이야기는 전부터 내가 매료돼 있던 것이며 그 점에선 <반지의 제왕>도 같다”고 출연계기를 말했다.

모르텐슨이 <히달고>의 출연제의를 받은 건 <반지의 제왕> 1편 개봉 직후인 2002년 초였다. 그러나 이날 함께 인터뷰에 나선 존스톤 감독은 <반지의 제왕> 1편을 못 본 채 모르텐슨을 캐스팅했다고 말했다. “모르텐슨을 눈여겨본 건 다이안 레인 주연의 <워크 온 더 문>(99년작, 국내 미개봉)이었다. 속에 뭔가를 감추고 있는 비밀스런 인물을 훌륭하게 연기했다. 또 <히달고>의 홉킨스 역에는 말을 아주 잘 타는 배우가 필요했고 모르텐슨은 그 조건에도 맞았다. <반지의 제왕>으로 그의 주가가 오른 건 내게는 덤이다.” 존스톤 감독은 촬영에 임하는 모르텐슨의 헌신적인 태도를 높게 평가했다.

이국적이고 광활한 사막의 풍경을 중요시하는 <히달고>는 모로코 사막의 현지촬영이 길었다. 장기 로케가 많기는 <반지의 제왕>도 마찬가지였고, 그때도 피터 잭슨 감독은 촬영기간동안 뉴질랜드 숲에서 갑옷 입고 잠을 잔 모르텐슨의 헌신성을 높이 샀다. 모르텐슨은 이 영화에서도 “사막에서 촬영이 끝나면 다들 호텔로 돌아갔는데 나는 트레일러에서 잤다. 밤이 돼 모래먼지가 가라앉으면 모든 게 정적에 잠기고 하늘엔 수도 없이 별이 뜬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어려서부터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을 전전했고, 대학 졸업 뒤 아버지의 고향인 덴마크에서 살기도 했던 그는 아무래도 유목민 체질인 듯했다.

“<반지의 제왕>으로 스타가 된 뒤 생활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게 뭐냐”는 질문에 그는 “바빠졌고,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짧게 답했다.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길게 하지 않는 그를 두고 이날 함께 인터뷰한 동료배우들이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공통의 단어가 ‘겸손하다’와 ‘인간적이다’는 것이었다. 존스톤 감독 역시 그가 예나 지금이나 도요타 자동차를 손수 몰면서 수행원 없이 혼자 다닌다고 전했다. 사진작가이기도 한 모르텐슨은 <히달고> 촬영기간에 말을 소재로 자신이 찍은 사진집을 들고 와 기자들에게 일일이 나눠주고는 인터뷰장을 떴다.

로스앤젤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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