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팀 버튼의 기상천외한 동화나라, <빅 피쉬>
2004-03-03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믿지 못할, 그러나 어딘가에 있었으면 하는, 그렇게 팀 버튼이 안내하는 기상천외한 동화

<혹성탈출>의 못 미더운 원숭이들과 함께 동반 위기에 처했던 할리우드 비틀쥬스 팀 버튼이 이야기꾼에 대한 자성적 우화 <빅 피쉬>를 메고 다시 왔다. 모든 이야기는 아버지에게서 시작한다. 아들 윌(빌리 크루덥)은 이제 더이상 참아내기가 힘들다. 병원 침대에 누워 곧 죽을 날만 기다리는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앨버트 피니)은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에 버금갈 만한 젊은 시절 에드워드 블룸(이완 맥그리거)의 무용담을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그 이야기들은 이렇게 이어진다.

나는 어린 시절 마녀의 집을 찾아가 그녀의 외눈 안에서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모습을 본 적이 있단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언제 죽을지를 알고 있지. 젊은 시절 나는 동네에서 가장 유능한 팔방미인이었어. 우연히 마을로 들어온 거인 친구와 함께 나에게 어울리는 더 큰 세상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단다. 그 여행의 도중에는 신발을 벗고 사는 이상한 마을에도 얼마간 머물렀단다. 그러다가 네 엄마를 만났단다. 나는 단지 네 엄마의 이름이라도 알고 싶어 서커스 단원으로 들어가 동물들의 대소변을 치우며 몇년을 일한 적도 있단다. 사실 서커스 단장은 늑대인간이었지. 전쟁에 나가서는 낙하산을 타고 잘못 떨어져 중국의 노래하는 샴쌍둥이를 만난 적도 있지. 어느 폭우가 많이 오던 날은 그 비가 마을을 채워 삽시간에 호수가 되기도 했었지. 다 사실이란다.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 이야기, 곧 영화의 내러티브는 고스란히 시각적 판타지로 재현된다. 팀 버튼은 한때 스티븐 스필버그가 눈독을 들였던 대니얼 월러스 원작의 <빅 피쉬>를 바탕으로 현실과 상상에 대한 경계짓기를 무화시킨다. 무엇이 무엇보다 더 앞선다는 말을 잊어버리도록 끌어간다. 영화는 믿지 못할 그 모험장면들을 병상에서의 현재와 함께 번갈아가면서 보여준다. 그리고는 죽어가는 아버지의 침상 위에서 거짓말을 지어내는 아들의 작별인사가 소중한 진실이 되도록 만든다. 팀 버튼의 이전 작품들과 비교하여 <빅 피쉬>의 뒤틀림이 덜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눈을 처음 매혹시켰던 그 악동 기질은 천연덕스러운 이야기꾼의 자세에서 나온 일면이다. 이야기꾼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뿐이다. <빅 피쉬>는 이야기로 현실과 상상 사이를 뒤흔들어 ‘진실’이 되도록 할 순 없을까, 그래서 감동의 치유약이 만들어질 수는 없을까 생각해보는 그 이야기꾼의 머릿속에서 고안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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