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이는 작가 네이던으로, 그는 노신사 콜만이 못다한 이야기의 퍼즐을 맞춰나가는 ‘탐정’으로 역할하며, 일찌감치 떠나버린 주인공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한다. 저명한 교수였던 콜만은 인종차별적 발언 때문에 직장과 아내를 잃고, 네이던을 통해 자신의 지난 인생을 기록으로 남기게 한다. 네이던은 학교 잡역부 퍼니아와의 육체 관계에 탐닉하던 콜만의 최근사는 물론, 흑인 부모에게서 흰 피부를 물려받고, 자신을 유대인으로 가장한 채 살아온 그의 과거를 접하게 된다.
필립 로스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부조화스러운 커플의 어둡고 격렬한 연애담의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인종과 계급 등 민감한 사회문제를 건드리고 간다. 자신의 근본과 결별한 채 살았던 남자, 가정을 잃은 상처로 피폐해진 여자가 신분과 나이 차이를 넘어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은 육체를 통해서였고, 깊고 은밀한 상처를 내보이고 또 보듬으면서였다. 고해를 통해, 인생의 ‘오점’을 인정함으로써, 그들은 진정한 안식과 자유를 얻은 셈이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마음의 고향> <노스바스의 추억> 등을 연출한 노장 로버트 벤튼의 신작. 미국 고전영화의 스타일을 고수해온 그의 화술은 이번엔 안타깝게도 낡고 안이해져 있다. 개인사를 소개하는 길고 무거운 플래시백은 극적인 재미를 반감시키고, 내레이터의 잦은 개입은 액자 속 인물들에 빠져들기 어렵게 만든다. 또 다른 문제는 스타 이미지가 너무 ‘강한’ 배우들을 불러모았다는 것. 아무래도 앤서니 홉킨스가 흑인 가계의 돌연변이 백인 교수로, 니콜 키드먼이 “허리가 휘게 일해야 하는” 노동계급 여성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존재만으로 영화에 ‘1품격’을 보태는 그들이지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색하다는 인상은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