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저 작은 별, 응원하고 싶다, <슈퍼스타 감사용>의 윤진서
2004-03-03
글 : 이영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뽑지 않았는데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오디션 때 처음 봤다. 전화가 와서 인터뷰 중단하고 잠깐 통화하면서 뭐 하나 슬쩍 봤다. 의지없이 무표정하게 앉아 있더라. 긴장도 하지 않고 무의식 상태에 빠진 사람처럼. 나이도 어린데 웬 청승을 떠나 싶었다. 그런데 그게 묘하더라. 무슨 사연이 있어서 저런 표정이 나오나 싶기도 하고….” <장화, 홍련> 김지운 감독

“외모가 고전적이라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 좀 달라 보이긴 했는데. 연기를 시켜봤을 때 기술적으로 능숙한 것은 아니라 판단이 서질 않았다. 대신 차분하고 여유로워 보이고 속이 깊어 보였다. 이후에 최민식 선배가 며칠 동안 개인교습을 하고 나서 가능성 있다고 했다. 과학실 장면 촬영 때는 내 눈으로도 확인했다. 노출이 있는데다 한번에 가는 거여서 기존 배우들도 쉽지 않았을 텐데. 디테일도 주지 않은 상황을 혼자서 그것도 상대배우를 리드해가며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올드보이> 박찬욱 감독

“자기 주장이 강하다. 매니지먼트회사에 속해 있는 신인배우의 경우 자기 관심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데 시나리오가 좋으면 그거 하겠다, 고 대뜸 말한다. 귀여움 받을 만한 위치인데도 좀처럼 막내연하지 않는다. 감독들하고 어울릴 때도 낯을 가리는 것 같으면서도 주눅 안 들고 할말은 다 한다. 게다가 욕심도 많으니 스물 갓 넘은 애 치곤 좀 무섭다.” <따로 또 같이> 총괄 프로듀서 김영

“리딩할 때 끄집어낼 게 많은 배우라고 느꼈다. 은아라는 역할을 맡기에 너무 어두운 것 아닌가 싶긴했는데 같이 하기로 하고 나서부터 많이 발랄해졌다. 불과 3회밖에 촬영을 안 했는데. 평소에도 그 캐릭터에 빠져들려고 무지 노력하는 편이다. 서먹서먹할 텐데도 일부러 다른 사람들한테 말을 붙이려는 걸 보면.” <슈퍼스타 감사용> 김종현 감독

검색순위 220위. 한 인터넷 사이트의 인기배우 검색 빈도 수만 보면 윤진서(22)는 아직 대중에게 낯선 존재지만, 위의 발언처럼 충무로에서는 기대를 한몸에 받는 유망주 중 한명이다. 공개하진 않았지만 2003년 연말에 <씨네21>의 필자들이 가능성을 점쳐 뽑은 신인 여배우 부문에서도 윤진서는 세 손가락 안에 꼽혔다. <올드보이>에서 이우진(유지태)의 누나, 이수아 역으로 단박에 재목으로 인정받은 그녀는 이후 허진호 감독의 단편 <따로 또 같이>와 서태지 뮤직비디오 <로보트>에 출연하면서 조금씩 인지도를 얻어가는 중이다. 현재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어깨 축 처진 패전전문투수 감사용(이범수)을 옆에서 다독여주고 지켜보는 매표소 여직원 은아라는 캐릭터에 빠져든 그녀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물었다. 말을 뱉기 전에 입 안에서 뜸들이는 버릇 때문에 다소 느린 말투의 그녀. 한정된 지면 때문에 2배속으로 재생한다. 그녀의 대답에서, 아직 성숙되진 않았지만 배우로서 꿈틀거리는 자의식이 느껴진다면 응원을 더해주길. 덧붙여 <씨네21>이 그녀를 간판으로 내세운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올드보이> 이야긴 그때 했으니까(<씨네21> 430호 피플). 영화아카데미 출신 감독님들이 만든 이공(異共) 프로젝트가 궁금하신 건가. 허진호 감독님 팬인 건 아시죠. <따로 또 같이>라는 8분짜리 단편인데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냅다 갔죠. 감독님은 기억 못하시지만 영화 하기 전에 뵌 적 있어요. 서울예대 들어가자마자 6개월 만에 휴학하고 압구정동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 한 적 있거든요. 그때 옷 사러 오셨는데 한눈에 알아봤죠. 정찰제였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값을 깎아드리기도 했고. 그래서 날 캐스팅하셨나. 그때 일을 모르시는 눈치던데. 하여튼 시나리오도 없고, 콘티도 없고. 게다가 감독님이 도통 말이 없으시니. 뭘 찍는진 알아야겠다 싶어 물으면 글쎄, 넌 뭘 하고 싶니, 그러시는 게 전부였어요.

이런 말은 가끔 하세요. 머리 뒤로 넘기고 해라. 신기한 건 그때마다 얼굴이 다르게 나와요. 옷 하나 고르시는 데도 집요하실 정도로 꼼꼼하신 분이에요. 의상 고르시는 데도 입어라, 벗어라, 만 하시고. 100벌은 입어 봤어요. 나중에 (유)지태 오빠가 그 심정 안다면서 웃더라구요. <봄날은 간다> 때 파카 하나 고르느라 힘들었다면서. 영화 속 독백장면은 거짓말 탐지기 앞에서 취조당하는 거랑 비슷했어요. 20분 내내 끊이지 않고 뭐든 이야기해야 했으니까. 좀 지나니까 면벽수도 하고 있구나 싶던데요. 사실 걱정 많이 했어요. <올드보이> 촬영 끝내고 나서도 서울에 있는 게 불안해서 일본으로 짐 싸들고 휘리릭 떠났는데. 이거 한편하고 영화 못하면 어떡하나 싶어서. 그래도 시사회 때 기분은 좋았어요. 촬영 때 너도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아니, 하는 감독님 표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제가 복이 많아요. 서태지 광팬이었는데 <로보트> 뮤직비디오도 찍게 됐고. 10대들의 대통령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 당연했던 유년 시절을 거쳤으니까. 슛, 하면 주위가 조용해지는 게 아니라 촬영하면서도 ‘고개를 좀더 들어’, 뭐 이런 요구를 하는 게 영화랑은 달랐어요. 근데 전 처음이라 박명천 감독님이 뭐라고 하면 그쪽을 보게 되는 거예요. 음. 서태지 오빠, 옆에서 봐서 좋았냐구요. 말도 못 붙여봤는데요, 경호원들 때문이죠. 휴대폰으로 사진 촬영도 불가능해요. 호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있다가 슈욱 빼는 시늉만 해도 경호원들이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으니까. 매니저 오빠는 서태지 오빠가 화장실에 있다는 이유로 30분 동안 일도 못 봐서 꽤나 힘들어 했죠. <로보트>를 공중파에서는 유해한 장면이 있다면서 부정적으로 보는데 가두는 것이야말로 더 부정적인 결과를 만드는 것 아닌가 싶어요.

제 얼굴에 그늘이 있는 것 같다구요? 어두운 극장에서 살다시피 해서 그런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는 가는 둥 마는 둥 했어요. 집안 형편이 안 좋아졌거든요. 그게 이유가 되나. 음. 하여튼 그 때문에 8년 동안 하던 바이올린도 그만뒀고. 대신 신촌이나 목동의 변두리 극장에 출석했죠. <도성> 시리즈 뭐 이런 거 보면서 키득거렸던 것 같은데. 그땐 배우를 하겠다기보다는 영화 일이 좋겠다 싶었어요. 무슨 증명서나 카드 같은 게 있어서 영화인은 극장에 공짜로 들어가는 줄 알았으니까. 아르바이트야 이거 저거 다 해봤는데. 교통법규 어긴 차량들을 캠코더로 찍은 비디오 테이프 회수해주는 일이 좋았어요. 하얀 마스크가 시커멓게 될 정도니까 몸에는 안 좋은데 책 읽고, 음악 듣고 일당 3만5천원씩 받았으니까.

전보다 밝아졌다는 말 많이 들어요. <슈퍼스타 감사용> 촬영장이 북적이는 것도 작용한 것 같고. 처음에는 다들 얼굴이 우울해 보인다고 걱정하셨죠. 은아라는 인물은 힘들어도 그런 표정이 안 나오는 인물이니까. 어느 공익광고 보니까 5분 웃으면 5시간 운동효과 있다면서요. 그래서 일부러 웃는 연습 많이 해요. 살도 빼고 좋죠. 처음에 시나리오 봤을 때요? 이야기는 좋은데 캐릭터가 싫었어요. 프로야구가 시작된 다음에 태어났잖아요, 제가. 삼미슈퍼스타즈를 알 턱이 있나. 당연히 주인공이 승리할 것이다, 뭐 이렇게 생각하고 봤는데 끝이 그게 아니니까 스토리는 재밌죠. 근데 은아라는 인물이 너무 착한 척하는 인물인 것 같아서 싫더라구요. 그래서 감독님한테 불만이라고 했더니 다시 읽어보래요. 그러면서 슬쩍 한마디 하시더라구요. 그게 남자들이 얼마나 좋아하는 캐릭터인데. 그 말에 넘어갔는지도 몰라요. 이후에 감독님이 대사를 많이 고쳐주셨는데 그래도 천생 여자다, 하는 느낌은 안 주려고 해요. 극중에서 자세히 나오진 않지만 은아라는 인물을 그런 식으로 고정하는 건 좀….

얼마 전에 <스왈로우 테일> 봤거든요. 이와이 순지 영화 중에 최고예요. 일본 여행 중에 DVD 파는 곳 물어물어 겨우 산 거예요. 촬영없는 날이라고 쉴 수 있나요. 이제 시작인데. 아침에 일어나서 비디오 한편 보고, 아침 먹고 프랑스어 공부하고. 아, 이제 인사말 수준이에요. <피아니스트>의 이자벨 위페르 때문이죠. 그리고 오후에는 극장 가고. 밤에도 할 일 많아요. 내 발목을 붙잡는 족쇄가 뭔가 고민하면서 술 마셔야 하고. 그렇게 안 하면 뭔가 낭비한 것 같아서 좀 마음에 걸려요. 뭐라구요? 배우가 가방 메고 다니는 게 뭐가 이상해요. 너무 큰가? 이 안에 별거 없어요. 에쿠니 가오리의 <낙하하는 저녁>이라는 소설하고 노트북이 있죠. 꿈은 전에도 말했죠. 세계일주. 그러니까 젊을 때 돈 많이 벌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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