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제 코미디의 ‘왕’이로소이다, <어깨동무>의 유동근
2004-03-03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사진 : 이혜정

유동근은 TV와 영화에서 보여준 두 가지 이미지가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드문 배우다. 그는 30대의 트렌디드라마라고 평가받았던 <애인>과 장중한 무게를 가진 사극 <용의 눈물>로 스타가 되었다. 그런 그가 꽃무늬 셔츠를 입고 커다란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전라도 조폭으로 나타났을 때, 그 모습은 충격이라기보다는 발견에 가까워 보였다. 숨어 있던 무언가를 발견하기엔, 어쩌면 늦은 나이, 마흔셋. 3년 전 <가문의 영광>을 시작으로 매년 코미디영화 한편을 내놓고 있는 그가 이번에는 서울 지역의 근본없는 깡패 태식이 되었다. 그의 새 영화 <어깨동무>는 재벌 비리를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되찾고자 동분서주하는 세 깡패와 한 소년이 이루어가는 코미디. 야심으로 고뇌하는 왕자 이방원과 별볼일 없는 삼류 깡패 사이의 간극을, 유동근은 어떻게 극복했을까. 궁금한 마음에 그를 만났지만,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선 유동근은, TV에서 보여주던 것처럼 점잖고 매력적인 남자였다. 꼼꼼하고 세심하기도 한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어깨동무>에서 부족한 점을 말해달라며 메모지와 볼펜을 준비하기까지 했다.

한동안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는데, <가문의 영광> 이후 벌써 세 번째 영화다. 다시 영화를 시작한 이유가 있는지.

특별히 이유라고 할 만한 건 없었다. TV드라마를 하다보면 영화를 찍을 시간이 없어서 그동안 영화에 출연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사극은 한번 시작하면 2년을 가기도 하니까. <가문의 영광>은 <용의 눈물>을 함께했던 조감독 때문에 출연했다. 그 친구가 워낙 성실해서 좋아했었다. 연예인으로서 호기심도 있었다. 전라도 사투리 같은 건 방송에서는 보여줄 기회가 없었으니까, 한번 해보면 어떻겠나 싶어서. 재미있는 영화가 되겠구나 하는 마음에 출연했는데 그 재미라는 것이 사람을 자꾸 취하게 만들더라. 한번 취했을 때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너무 취하면 추태 아닌가. <어깨동무>는 <가문의 영광>이나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하고는 또 다른 재미가 있어서 출연했다. 남들은 그 조폭이 그 조폭이지 할지 몰라도. (웃음) 이번엔 액션도 있지 않나.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다른 두편의 영화와는 좀 다른 코미디였다.

경상도 사투리 하느라고 고생했다. 드라마 <루키>에서 써본 적이 있긴 하지만, 그때는 작가가 사투리를 너무 몰랐다.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때는 오종록 감독이 사투리를 너무 잘 알아서 문제였고. (웃음) 오종록 감독은 PD 출신이라서 그런지 영화 연출에선 구멍이 보였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에 썩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다.

<가문의 영광>은 흥행이 잘됐지만, 나와는 별 상관없는 얘기다. 그저 관객이 많이 들었나보다, 제작자는 좋겠다, 이 정도다. 잘 만든 영화라도 관객이 안 들면 쪽팔려하고, 엉터리 영화라도 관객 잘 들면 좋아해서야 되겠는가. 나는 그런 게 촌스럽더라고.

<어깨동무>가 첫 번째 시사회를 열었다. 보고 난 느낌이 어떤가.

재미없지 뭐, 태식이 연기하는 게 쪽팔리기도 하고. (웃음) 대목마다 꼭지점을 확실하게 찍어주고 그 여운을 끌고나가야 하는데, 좀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도 같다. 나는 한국영화가 관객의 눈높이 끝까지 닿아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젠 관객 체질이 변했다. 그러면 제작자부터 체질이 변해야 한다. 그렇게 못하니까 소재가 빈곤해지는 건데…. 사실 재미없다고 말한 건 겸손하자는 뜻도 있었다. 내가 출연한 영화라고 재미있다, 잘 만들었다, 이러면 창피하지 않나. 나는 연기자고 장사와는 상관없는 사람이지만, 이 영화는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어깨동무> 제작자인 최승혁씨는 몇년 만에 영화를 만든 사람이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 영화 만드는 모습 보면서 많이 속상했을 거다. 돈과 상관없이, 좋아하는 일을 못하니까. 이 영화가 성공하면 이성진도 연기에 젊음을 불태울 수 있지 않겠나. 그애가 돈 벌자고 연기를 시작하진 않았을 거다. 열심히 하는 친구니까 계속 영화를 찍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성진과 차태현이 경찰서에서 함께 연기하는 장면 보면 예뻐죽겠다.

본인 연기는 어떻게 보았나. 역시 그다지 만족스러워 보이진 않는데.

내 연기는 마음에 드는 부분 하나없이 닭살이다. (웃음) <가문의 영광>이나 <어깨동무>는 연기자에게 의미있는 영화는 아니다. <가문의 영광>에서 (‘섹스’라는 단어 대신 사용했던 손짓을 재현하며) 이랬던 게 무슨 연기야 잔재주지. 다만 그 재주를 내가 즐겨서 했다는 게 중요했던 거다.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영화 찍었으면 연기자로서 남는 게 있겠지. 남들 그런 영화 하는데 나는 <어깨동무> 하면서 연기가 어땠는가, 이런 얘기 하면 쪽팔리지.

그런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태식이 피투성이가 된 꼴통을 붙잡고 흐느끼다가 그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알고선 정색하고 내던지는 장면. 갑자기 감정이 바뀌기 때문에 어색할 수도 있었을 텐데 자연스럽다.

나도 그 장면은 마음에 든다.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건 그 순간 욕을 했다는 거. 요즘 한국영화는 욕이 너무 많다. 나는 현장에서 할 수 있는 한 욕을 순화하는 편인데도 워낙 시나리오에 욕이 많이 나오니까. 그게 리얼한 건 줄 아는데 좀 빠져나올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관객이 욕하는 장면을 보면서 재미를 느꼈을지 몰라도 이젠 아닌 것 같다. 우리 영화에 동무 친구가 자위하는 장면이 있는데 나는 그것도 마음에 안 든다. 그… 거기가 서서… 거기에 추리닝 걸치고 있는 그거. 1년 전만 해도 그런 장면에 거부감 느끼는 관객은 별로 없었을 거다. 지금은 아니다. 휴지 몇장 쥐고 있으면 차라리 더 분위기가 날 텐데. 하긴 연기자인 나도 이러는데, 전체를 끌고가는 감독은 얼마나 생각이 많겠는가. 조진규 감독은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다. 착하고, 인격이 크다.

최근 출연한 영화 세편이 모두 코미디다. 한 장르만 고집할 이유는 없었을 텐데.

내가 코미디를 해서 이런 말 하는 건 아니고, 코미디는 가장 어려운 장르다. 한국영화를 지금처럼 살려놓은 장르도 코미디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코미디를 의붓자식 취급하면 안 된다. 관객이나 제작자나 기자나 다 공범 아닌가. 주위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 코미디만 계속 하지 말라고. 그럼 왜 코미디를 계속 하면 안 되는가. 유동근이가 영화에서 이루어놓은 것도 하나 없는데, 뭐 하나라도 해놓고 다른 거 해보자 해야지. 방송에서 왕을 연기할 배우로는 유동근을 제일로 친다. 그래서 가만있어봐, 이젠 망가질 때도 됐고, 코미디영화는 돈도 되잖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웃음) 집사람한테도 “여보 내가 이젠 망가지는 역할도 경험해봐야 할 것 같아” 얘기하고 시작했다. 렌즈 하나 바꿔 끼고 이미지 변신했다 말하긴 쉽지만 그게 무슨 변신인가. 아까 말한 것처럼 이런 영화들이 연기자에게 의미는 없다. 그러니까 돈 많이 받아야지. (웃음)

스스로 결정했다고는 해도 TV에서 쌓아온 이미지를 한번에 건너뛰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그런 이야기들 많이 하지 않나. 배우가 없다고. 나는 배우가 많다고 믿는다. 하지만 내가 매니저라면 방송에서 다른 이미지로 변신하는 건 못하게 하겠다. 방송은 결과만 보고 과정은 보지 않는다. TV는 공장 아닌가. 반성할 시간도 없고, 연출자도 안 좋은 장면을 그냥 내보낼 수밖에 없다. 방송은 또 작가 횡포가 심하다. 영화하고는 반대인데, 자기가 쓴 대사 한줄만 고쳐도 난리를 친다. 그래도 시청자하고 약속은 했으니까 끝까지 하기는 해야 하고. 그렇게 위험한 일인데 내 성격이 그래서 똑같은 건 못하겠다. <루키>를 봤다면 알 거다. 그거 <애인2>처럼 찍으려고 한 드라마였다. 그런데 내가 경상도 사투리도 쓰고 다르게 가자고 우겼다. 그냥 멜로드라마 만들었으면 <애인>만큼은 안 돼도 웬만큼은 됐겠지.

TV드라마도 사극을 주로 찍었다. 우연인가 혹은 의도한 바인가.

우연히 그렇게 된 것도 있지만, 사극은 그나마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드라마다. 촬영 기간이 좀 되니까. 요즘 현대물은 옷을 어떻게 잘 입어야 하나 그 정도인 것 같다. (웃음) 얼마 전에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을 봤는데 잭 니콜슨이 비아그라 먹고 실려가는 장면이 재미있었다. 할리우드영화에선 주름살진 배우가 벗어도 좋아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주름진 사람이 벗어봐라. 이건 소득문제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넘어서 3만달러까지는 가야 배우가 배우로서 자유를 누리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장동건 같은 후배들이 잘하고 있으니까 기특하다. 그애들은 배우라고 불러도 된다. 나는 아직은 연기자다. 다른 사람들도 TV에만 줄곧 나오다가 갑자기 영화 하나 찍고선 배우라고 하는 거 보면 우습다. 나야 처음부터 이 직업이 좋아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후배들이랑 탤런트 시험 보러 갔다가 붙는 바람에 여기까지 왔으니까 뭐. 하다보니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찌어찌 하다보니 지금 이 정도까지 왔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영화 하나 대박났다고 방에다 포스터 붙여놓고 나 배우다, 해봐라. 방송에서 만나 지금까지 탈없이 살아온 집사람이 저게 맛이 갔나 할 거다. (웃음)

마흔여섯이 됐다. 배역에 한계를 느낄 텐데.

나이 먹어서도 계속 연기를 하겠다는 생각은 잘 안 들더라. 목소리 나올 때까지 연기하겠다는 분들을 보면 나도 부끄럽다. 때가 안 묻었으면 그분들처럼 살 텐데, 나는 벌써 때가 묻었다. 삼십대 후반이나 사십대 초반만 돼도 연기할 소재가 없는 게 현실이다. 특히 영화에 출연하는 여배우들은 공간이 너무 좁다. 그 좁은 공간 안에서 계속 하려니까 비슷한 역만 하게 되고. 그 한계를 어루만져줄 필요가 있다. 없는 걸 어떻게 하라고. 방송도 마찬가지다. 소재도 없는데 시간도 부족하니까 모든 게 다 죽어버린다. 영화를 하면서 그 자유로운 분위기가 부러웠다. 그 여유가 방송에 연결만 잘 되면 후배들이 훨씬 편하게 연기할 수 있을 텐데. 스탭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야 하고. 사극을 하면 새벽부터 분장을 해야 하는데, 분장하고 의상 맡은 여자스탭들이 자기 돈들여 택시를 타고 온다. 그런 거 개선하는 게 난 개혁이라고 보는데 새로 온 양반은 뭐하는 건지. (웃음) 스탭들 처지는 방송이나 영화나 비슷한 것 같다. 내가 보니까 1년에 영화 두편 정도 찍겠던데, 먹고 살 돈이 나오겠나. 그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이라서 하는 거다. 대우가 나아지면 얼마나 좋은 영화가 나오겠는가.

올해 말부터 사극 <연개소문>을 찍는다고 들었다.

지금부터 푹 쉬고 연말에는 몽골에 가서 연개소문이 무술대회에 출전하는 장면부터 촬영을 시작한다. 100부작이니까 2년 정도 갈 거다. 무술감독이 정해지면 훈련도 시작해야 하고. 말은 탈 줄 아는데, 몽골 말은 기운센 조랑말이라 다시 연습해야 할 것 같다. 연개소문은 연기자로서 한번 해볼 만한 인물이다. 칭기즈칸은 유럽 대륙을 먹었는데 연개소문은 중국 대륙을 먹은 사람 아닌가. 그리고 이것도 기운있을 때 해야지 기운 없으면 못하는 거다. (웃음)

2년이나 촬영을 해야 한다면 당분간 영화 출연은 못하겠다.

모르지. 돈 많이 준다면 달려들지도.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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