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그녀를 믿지 마세요>의 영화 포스터 사진작가 권영호
2004-03-03
글 : 김수경
사진 : 오계옥
단 한장의 포트폴리오

프로필

1968년생·중앙대 사진학과 졸업·사진작가·<엽기적인 그녀> <후아유> <일단 뛰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품행제로> <와일드카드> <그녀를 믿지 마세요> 영화 포스터 작업

<그녀를 믿지 마세요>의 메인포스터가 즐거운 수난을 겪고 있다. 홍보사 관계자에 따르면, 개봉 이후 곳곳에서 붙여놓은 포스터를 떼어가는 바람에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영화사쪽에서는 미봉책으로 일부 극장에서 포스터를 나눠주는 이벤트를 마련할 계획이라지만, 글쎄 효과가 있을까. “이 여자를 사기죄로 고발합니다”라는 강동원의 항변에 “어머머머, 난 사랑이었어”라고 눈을 흘겨 뜨는 김하늘. 흡사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는 듯한 상황을 연출해 영화의 설정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이 깜찍한 포스터는 4년차 권영호 작가가 포착한 것이다.

“모델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죠.” 권영호씨가 가장 중요시하는 철칙이다. 영화의 컨셉도 중요하지만, 오케이에 이르기까지는 피사체와의 합일이 맨 먼저라고. 3년 반 동안 임은경과 TTL 작업을 진행하면서도 별다른 준비작업은 필요없었다. 수시로 대화하기, 이게 전부였다. 임은경이 한동안 권영호 외의 작가들과 작업하지 않겠다던 시절도 있었을 정도니, 그의 전략은 여러모로 성공적이었다고 할 만하다. 그렇담, 김하늘, 강동원 두 주인공과는 오래전에 패션모델로 만난 적이 있었으니 전보다 훨씬 편하지 않았을까. “놀랐어요. 둘 다 자기 캐릭터에 너무 진지하게 반응을 보여서.”

필립스, 나이키, 라네즈, TTL 등 그동안 권씨가 맡았던 일감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광고사진쪽에서 그의 입지는 상당하다.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졸업 뒤 제일기획 사진부에 입사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작업을 할 만한 환경은 아니었다. 첫 출근날에 곧바로 사표를 냈다는 그는 이어 프리랜서를 선언했지만 그에게 아무도 일을 주지 않았다. 프랑스 사진작가 장 루이 볼프의 어시스턴트로 1년을 보내면서 그는 자신의 작업을 이해해줄 법한 디자이너들을 무작정 찾아다녔지만 다들 “신선하긴 한데 어리고 경력이 없다”며 퇴짜를 놓았다. ‘반년 동안 아무 생각없이 놀고 있는’ 그에게 연락을 한 사람은 이신우. 패션화보를 시작으로 권씨는 광고, 영화 등으로 영역을 넓혀왔다.

권씨는 영화 포스터 작업의 매력을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단 한장에 모든 것을 집중시키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패션 같은 경우는 주제나 컨셉만 갖고 풀어가는 거죠. 굉장히 폭은 넓지만 한장에 대한 집중도는 떨어져요. 여러 가지 장면을 통해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느낌을 이어가는 방식이에요. 반면 영화쪽 작업은 한장을 통해서 많은 것을 보여줘야 하니까 긴장할 수밖에 없죠. 그만큼 만족감도 높고.” 그가 말하는 만족감은 어쩌면 이루지 못한 유년의 꿈과도 연관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영화 관련 서적을 사모으며 연출의 꿈을 키우던 그는 부모의 반대에 끝내 연극영화과 진학의 꿈을 접었다고. “혼자 할 수 있어” 사진 작업을 택했던 그가 영화로 회귀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 셈이다. “<매트릭스3 레볼루션>의 포스터 아시죠? 이미지만으로 그 영화의 핵심을 전달하잖아요. 그걸 해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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