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기본 전제에서 나아가지 못하는 조폭코미디, <어깨동무>
2004-03-09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세명의 삼류깡패, 동네 백수가 에로비디오로 착각해 가져간 소중한 비디오 테이프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이것은 이야기의 시작일 뿐. 비디오 테이프와는 전혀 관계없는 한 보따리의 이야기가 더 있다

<어깨동무>는 <조폭마누라>를 만든 조진규 감독의 두 번째 영화다. 조폭코미디라는 변종장르가 정착하는 데 적지 않은 공을 세웠던 그는 <어깨동무>에도 비슷한 성공요인을 끌어들였다. 깡패와 보통 사람이 만나면서 빚어지는 오해와 충돌, 은어를 사용한 말장난, 부모를 잃고 힘들게 살아온 형제간의 애정, 다소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폭력, 여자라는 약점 대신 근본없는 삼류깡패라는 단점을 지닌 주인공이 그것들이다. 그러나 서로 상관없는 덩어리를 뚝뚝 떨어뜨린다는 느낌이 강했던 <조폭마누라>와 달리 <어깨동무>는 복잡하고 산만한 스토리를 힘겹게나마 하나로 모아간다.

중년의 깡패 태식(유동근)은 부하 쌍칼(최령)과 꼴통(이문식)을 거느리고 형사를 습격해 재벌 정 회장의 비리가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빼앗는다. 그날 밤 태식은 애인이 운영하는 비디오가게에 들렀다가 그 테이프를 잃어버린다. 에로비디오를 빌리러 왔던 동네 백수 동무(이성진)가 실수로 테이프를 가져간 것. 태식은 다음날 아침까지 정 회장에게 테이프를 보내기로 했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그의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태식 일당은 형사로 위장해서 동무를 체포하지만, 테이프는 이미 휴대폰도 주소도 없는 동무 친구가 가지고 사라진 뒤다. 그사이 정 회장은 태식이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하고 그를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어깨동무>가 주는 웃음의 핵심은 깡패가 특수경찰로 가장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다. 깡패와 형사는 겉만 봐선 구분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공공의 적> <와일드카드> 등 숱한 형사영화들이 되풀이해 들려주었던 진리. 태식은 자신의 근거지인 주류창고를 경찰서로 위장하고, 부하 두명에게 고문받는 간첩과 고문하는 특수경찰 연기를 하라고 주문하지만, 그 어설픈 속임수는 의외로 쉽게 먹혀들어간다. ‘짭새’나 ‘형님’이라는 단어만 쓰지 않는다면 그리 많은 연기나 위장이 필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태식이 마약을 둘러싸고 일어난 살인사건을 수사 중인 진짜 경찰한테 마약사범들의 행동양식과 도구사용 방법을 강의하는 장면은 <어깨동무>가 처음으로 지속적이고도 본격적인 웃음을 만들어내는 대목. 태식의 아버지가 태식의 ‘동생’이라는 동무를 조폭으로 착각해 “도구는 뭘 쓰나?”라고 묻는 장면 역시 <조폭마누라> <어깨동무>가 가지고 있는 웃음의 코드를 대표할 만하다.

이처럼 잃어버린 테이프를 찾는 사건 하나에만 집중했다면, <어깨동무>는 얄팍하더라도 계속 웃을 수는 있는 간결한 코미디영화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조진규 감독은 <조폭마누라>를 성공한 영화로 만들었던 장점과 함께 그 영화가 실패작이었던 가장 큰 실수도 끌어들였다. <어깨동무>는 욕심이 지나치다. 두 번째 영화인 탓에 좀더 매끄러워졌지만, <어깨동무>는 수많은 갈림길을 앞에 두고 이 길로 한 발자국, 저 길로 두 발자국, 나아갔다 물러서는 정신없는 행보를 멈추지 못한다. 태식은 꼴통과 쌍칼을 구하기 위해 사지로 돌아갈 만큼 끈끈한 의리를 맺고 있다. 그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세 남자 사이의 인연을 보여주기에도 바쁠 텐데, 태식은 책임지지 못할 애인을 향해 쓸쓸한 독백도 해야 하고, 느닷없이 가까워진 동무를 동생처럼 보듬기도 해야 한다. 의지박약에 머리도 나빠 보이는 동무는 갑자기 그 친형이 정 회장 비리사건을 수사하는 강력계 검사라고 말하는데, 태식 일당뿐만 아니라 관객까지도 그 말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동무는 오랫동안 소원했던 친형의 진심을 깨달아가는 와중에 유사 큰형님이라고 할 만한 태식과의 관계도 돈독히 해야 한다. 동무를 연기한 이성진은 그룹 NRG 멤버였던 가수 출신 초보배우. 그는 TV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주접’개그를 선보여 인기를 얻었지만 한순간의 재치와 연기는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한다.

그와 대조적으로 어색할 수 있는 과장도 노련하게 넘기는 유동근은 <어깨동무>가 산산이 흩어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접착제. 이제는 다소 진부하기도 한 이문식의 코미디 연기는 신인 최령의 신선함에서 힘을 얻고, 김무생도 얼마 되지 않는 출연 분량 내내 존재감을 과시한다. 이문식과 최령 콤비가 ‘춘자’라는 꼴통의 여동생 이름을 두고 다투는 눈물과 웃음의 대화는 많은 부분 예상 가능한 이 영화에서 기대하지 못한 즐거움을 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게 만들었던 <조폭마누라>의 빠다의 죽음과는 다르게, 비장한 듯한 순간 어깨에 힘을 빼고 본분인 코미디에 충실해진다는 것도 장점. 그러나 <어깨동무>는 <조폭마누라> 이후 조폭코미디 장르가 무수히 많은 친척과 친구와 돌연변이에 파묻혔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깨동무>는 난처할 정도로 최악의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고 때로는 인간미 있는 웃음을 주는 순간마저도 있다. 그러나 <조폭마누라>가 성공한 요소를, 그리 많은 변주도 없이, 그대로 가져온 <어깨동무>는 조폭코미디가 가지는 기본 전제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다. 기본에 충실한 영화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겠지만, 조폭코미디라는 장르는 애초 기본을 벗어난 흐름이었다.

:: 배우들

<어깨동무>의 감초배우들

조진규 감독은 <조폭마누라>에서 빈틈없는 조연들을 배치해 웃음을 끌어냈다. 빠다와 빤쓰 같은 젊은 조직원들, 보스 은진을 그림자처럼 따르는 중견 조폭들, 은진과 대결하는 백상어파가 그들. <어깨동무>는 조직도 뿌리도 없는 삼류깡패들이 주인공이어서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지만, 제역할에 충실한 조연과 카메오가 즐거움을 준다. 태식의 애인 미숙으로 출연하는 조미령은 유동근처럼 주로 TV에서 활동해온 배우. 조미령(오른쪽)은 <위대한 유산>에서처럼 다소 경박한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미래없는 깡패를 뒷바라지하는 시대착오적 순정도 무리없이 연기했다. 역시 TV로만 만나왔던 김무생은 바가지를 휘두르는 태식 아버지로 출연해 짦은 순간이나마 육중한 무게를 남긴다. 태식 아버지가 돌담에 매달려 대롱거리는 장면은 김무생이 만들어낸 명장면 중 하나. 아웅다웅 다투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러선 목숨까지 내놓으며 서로를 구하는 꼴통과 쌍칼은 이문식(왼쪽)과 연극배우 최령이 연기했다. 최령은 <어깨동무>가 첫 번째 영화. 그러나 카메라 앞에서 어색하지 않고, 웃기기 위해 과장하지 않는 참신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어깨동무>에서 유일하게 코미디와 관련없는 인물은 동무의 형인 나 검사. 어려서 부모를 잃은 그는 동생을 엄격하게 키우려다가 도리어 거리를 두게 되지만, 마침내 형에게로 돌아온 동생을 “참 오래도 걸렸다”는 한마디로 맞아주는 따뜻한 남자다. 특별출연으로 이름을 올린 <썸머타임> <삼양동 정육점>의 최철호가 특유의 차갑고 터프한 표정으로 나 검사를 연기했다. <조폭마누라>의 최민수에 비할 만한 카메오가 있다면 경찰서 장면에 잠깐 등장하는 차태현. 주연 유동근과는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로 인연을 맺은 바 있는 차태현은 동무의 참견 때문에 진짜 경찰 행세를 하게 된 태식 일행이 경찰서에 들르는 대목에 출연했다. 자신을 놀리는 동무와 티격태격하다가 도리어 형사에게 얻어맞는 가엾은 희생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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