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이노센스> 일본 현지 시사기
2004-03-09
글 : 김영희 (한겨레 기자)

<공각기동대> 속편 나왔다!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이노센스> 일본 현지 시사기올해 일본에선 3대 애니메이션 감독이라 할 만한 오시이 마모루, 오토모 가쓰히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애니메이션이 연달아 개봉한다. 미야자키의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점점 제작규모가 늘어나면서 개봉일정이 계속 늦춰져 현재 11월까지 밀린 상태. 오토모가 <아키라> 이후 16년 만에 감독하는 장편애니메이션 <스팀보이>가 7월 여름시장을 노리고 있는 가운데 오시이의 <이노센스>가 3월6일 가장 먼저 테이프를 끊는다. 미야자키와 오토모가 약속이나 한 듯이 신작에서 19세기의 유럽, 영국으로 돌아가는 데 비해 오시이는 여전히 미래의 일본을 통해 ‘현재’를 그린다. 95년 <공각기동대>에서 인간과 사이보그, 로봇이 공존하는 21세기를 배경으로 인간의 정체성의 의미를 확장했던 그는 직접 시나리오를 쓴 속편격인 <이노센스>에서 훨씬 대중적인 어법으로, 하지만 만만치 않은 질문을 던졌다 -편집자

도쿄의 2월은 두 얼굴이다. 기온은 서울보다 높아 어떤 날은 초여름 같기도 하지만 비라도 뿌리면 집 안에 있어도 몸 구석구석 추위가 스며든다. 그럴 땐 전기장판 속에 들어가 한국의 온돌을 그리는 수밖에 없다. <이노센스>를 보러 나선 지난 2월28일, 일본의 날씨에 적응이 덜 된 탓일까, 여전히 코끝이 쨍했다. 그래도 3월6일 극장개봉에 앞서 작품을 볼 수 있다는 데 마음이 들뜬다(홍보사는 외국 매체의 프리뷰는 곤란하다며 잠시 고민하더니 언론시사회 대신 일반시사회 초대장을 보내줬다. 이렇게 쓸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이런 데서도 일본인들의 ‘형식주의’는 느껴진다).

<공각기동대> 시절과 격세지감

도쿄도 나카노시의 선프라자 홀. 2시30분 시작이라 넉넉히 간다고 2시쯤 도착했지만, 줄서기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이미 극장 앞 광장을 꼬불꼬불 메우고 있다. 아이를 데리고 온 부부부터 젊은 연인, 노인 부부까지 예상 밖으로 다양한 연령층에 우선 놀랐다. 순식간에 1천석 이상 규모의 극장이 꽉 찼다.

<공각기동대>가 95년 일본에서 고작 12만명의 관객을 모았던 걸 떠올리면, 지금 일본의 <이노센스>에 대한 기대감은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다. 4년 넘는 제작기간, 20억엔(220억원) 이상의 총제작비 규모의 ‘대중영화’답게 위성방송은 물론 민영방송, 신문, 잡지, 인터넷엔 주제곡 가 흐르는 대대적인 광고와 특집방송들이 따르고 있다. 도쿄의 새 문화중심지 롯폰기 힐스에서 밤샘 <이노센스> 문화제가 열렸는가 하면, <이노센스>에 나오는 인형들의 모티브가 된 구체관절인형전, 등장하는 개 바셋 하운드 전시회 등 종류도 다양하다. 서점엔 신간 <오시이 마모루론>을 비롯해 그와 관련된 책들이 깔려 있고 피자를 사먹으면 샘플 DVD를 받을 수도 있다.

과연 오시이의 작품이 이번엔 대중적으로 성공할까. 하청업체로 출발했던 제작사 스튜디오 IG(<킬 빌>의 애니메이션 부분 제작사기도 한)로선 스튜디오 지브리 못지않은 ‘애니메이션 명가’로 일어서기 위해 이 작품에 사활을 걸다시피 했다. 이를 위해 이시가와 미쓰히사 대표는, 오시이와 20년지기 친구지만 업계의 라이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지브리의 명프로듀서 스즈키 도시오를 ‘모셔왔다’. 스즈키는 “18년 전 <천사의 알> 때 그림 콘티나 시나리오 단계에서 의견을 얘기하면 함께 토론을 하다가도 나중엔 결국 몽땅 무시당한 경험이 떠올라 하고 처음엔 오시이 작품의 프로듀서를 맡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엔 오시이도 달라진 듯하다. 애초 <공각기동대2>라는 가제가 ‘순수’를 뜻하는 <이노센스>로 바꿀 것과, 주제곡을 쓰지 않기로 유명한 오시이 감독에게 로드리고의 아랑훼스 협주곡에 가사를 붙인 의 채택을 흔쾌히 받아들였다는 것. 일본에선 오시이 못지않게 스즈키에게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 인터뷰가 잇따르고 있다. 이시가와가 “오시이 감독이 처음으로 철학을 자제하고 오락성을 추구한 작품”이라며 “감독은 민망해했지만 캐릭터의 주관적 감정들이나 인간애란 테마가 전면에 드러났다”라고 강조하고 스탭들도 “이전과 달리 그림 콘티 옆에 친절한 설명이 가득했다”고 말하는 등 오시이 또한 이번 작품의 대중적 성공여부를 적잖이 의식하고 있는 건 확실하다. 일부 사이트에선 스즈키가 <이노센스> 관객에서 아예 오타쿠는 배제하고 여성관객에 어필하기 위한 홍보전략을 쓰고 있다는 불만도 등장했을 정도다. ‘오시이 세계’라고까지 불리는 그의 색깔이 이른바 ‘메이저 작품’에선 어떤 식으로 나타났는지, 그리고 관객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자, 어디로 갈까… 네트는 광대해.” 인형사와 합체 뒤 이 말 한마디를 남긴 쿠사나기 마코토 소좌가 네트의 바다 너머로 사라진 지 3년. <이노센스>의 배경인 서기 2032년 일본은 인간과 사이보그, 로봇(안드로이드)이 공존하는 세계다. 인간은 전뇌화(전자두뇌화)되어 목소리를 내거나, 키보드 조작 없이도 네트워크를 통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지고 인간의 몸은 점점 기계화된다. 쿠사나기가 떠난 뒤 형사 바토는 (1편에선 비교적 작은 역이었던) 도그사와 파트너를 이뤄 공안 9과에 근무하고 있다.

철학을 숨기고 오락을 추구하다

18세기 프랑스 소설 <미래의 이브>의 한 구절을 써놓으며 시작한 영화는 곳곳에 성서부터 공자, 밀튼, 데카르트 등을 인용하며 오시이의 인장을 찍는다. 대신 그 철학적 내용에 압도되지 않도록 <이노센스>는 친절하게 대중적인 형식과 감상적인 정서를 입혀놓았다.

영화의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어느 날 바토와 도그사에게 ‘고스트’(혼)가 없는 인형(로봇)이 자기 주인을 살해하는 사건들을 조사하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현장에 도착한 바토 앞에서 하얀 도자기 질감의 소녀 인형이 작은 목소리로 ‘도와줘요, 도와줘요’ 속삭이다가 ‘자살’을 택하는 첫 장면이 뒷머리를 후려쳤다. 인간을 위해 만든 인형(‘고스트’가 없는 대신 AI가 탑재된다)이 주인을 살해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게다가 자살이라니. 형사 버디무비의 짝패처럼 바토와 도그사는 계속 사건을 일으키는 인형들의 제조사 록스 솔스사의 음모를 풀어나간다. 야쿠자 사무소 장면을 비롯해 박력있는 총격전과 웬만한 액션영화 못지않게 날렵한 액션이 쉴새없이 이어져 1시간39분의 러닝타임은 짧게 느껴질 정도다.

언뜻 폭력적인 장면이 많지만, <이노센스>의 바탕에 깔린 정서는 쓸쓸함과 애절함이다. 팔도, 다리도 몸 대부분이 인조물인 사이보그 바토에게 남겨진 것은 극히 적은 뇌 일부와 쿠사나기 마코토라는 여성에 대한 기억뿐. 집에 돌아가면 개 가브리엘(언제나 오시이 감독 영화에 등장하는!)의 먹이를 만들어주고 자신은 끝없이 술만 마신다. 사이보그인 그에게 술은 아무리 마셔도 해가 될 리 없다. 그 쓸쓸한 정서는, 1편에서 쿠사나기를 향한 바토의 애정을 기억했던 이들에겐 각별하다.

바토는 수사과정에서 여러 인형을 만난다. 기괴할 정도로 화려한 축제에서 인간에 의해 불태워지는 인형들, 스스로 ‘시체’가 되어 인간을 초월하려는 인형…. 오시이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왜 인간은 인형을 자신과 비슷한 모습으로 만들어낼까. 인형의 무표정함이 주는 기분 나쁨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인형의 이야기는 그동안 많았지만 그건 인간의 최고의 존재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얘기다. 내가 말하고자 한 건 오히려 생신의 인간, 사이보그, 로봇 그 경계는 애매하다는 것이다.”

<공각기동대>의 속편이면서, 바토가 현실과 가상현실을 오가는 장면 등은 <아바론>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이노센스>는 오시이 감독 세계의 집대성적인 작품이란 점은 분명하다. 또한 언제나 이전 작품을 뛰어넘는 새로운 영상을 만들어왔던 그답게, <이노센스>는 비주얼과 음악만으로도 포만감을 안겨준다. 특히 ‘인형’을 전면으로 내세운 건 애니메이션으로선 새로운 ‘도전’처럼 보였다.

원래 애니메이션에선 인간조차 인형일 터. 뉴욕, 상하이, 타이베이, 라오스 등 전세계 6개국 로케이션지에서 찍은 2만장 이상의 사진을 바탕으로 그려냈다는 2032년의 공간 또한 숨이 막힐 정도로 정교하다. 3D로 화려하게 그려진 코끼리 동상의 행진을 포함해 뉴욕의 뾰족한 건물들을 연상케 하는 고딕풍의 도시부터 절망적으로 어두운 아시아풍의 뒷거리까지 신마다 다양한 공간들을 선보인다. 이질적으로 보이는 3D와 2D의 위화감이 오히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뒤섞인 <이노센스>의 세계에선 더 효과적이다. <스왈로우 테일>과 <킬빌>의 미술감독을 맡았던 하네다 요헤이가 첫 애니메이션 미술감독을 맡아 만들어낸 실내공간은 실사영화 이상이다. 책꽂이의 책 한권한권,싱크대의 선혈 낭자한 식칼의 반사된 빛까지, 오시이는 리얼리티에 집착했다. <공각기동대>에 이어 음악을 맡은 가와이 겐지의 단조계의 구슬프고 장엄한 선율에 실려 몇몇 신들은 뮤직비디오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오시이 마모루 세계를 감성적으로 집대성

<공각기동대>는 객관적이다 못해 차가운 ‘이성의 영화’였다. 이에 비해 <이노센스>는 인상적인 영상에 바로 감정을 실어보낸다. 오시이는 ‘동’과 ‘정’의 배합을 누구보다 잘 구사하는 감독이다. 후반부 무표정한 인형들이 바토를 공격해오는 장면이 쉴새없이 이어지다가 쿠사나기와 재회하는 순간만큼은, 그 모든 ‘움직임’이 멈춰버린 듯하다. 그리고 쿠사나기의 알몸(이유를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터)에 옷을 덮어주는 바토에게 쿠사나기는 말한다. “하나도 안 변했군.” 무뚝뚝해 보이는 남자의 애정에 가슴이 저릿해온다. 바토를 고스트 해킹하는 해커 키무를 만나게 되는 성 안에서의 에피소드는 빙빙 도는 현실에 어지럼증이 느껴질 정도로 매력적이다.

내용에 대해서는 일본에선 여전히 어렵다는 반응이 많은 듯하다. 시사회장을 나오니 “겨우 내용에 적응하려니까 끝나버렸다”는 관객이 많았다. 제작사가 내건 관객 500만명은 만만찮은 목표처럼 보인다. 대중적인 형식을 끌어왔다고는 해도, 오시이는 쉽사리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용기를 가져라” 식의 지브리 계열의 작품과 결별하는 지점이다. 오시이의 말을 인용하면 “살아가는 건 여러 가지를 상실하는 과정 아닐까. 그 과정에 자신의 사는 의미가 무언지 진실하게 대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아니메주> 3월호)이다. 그럼에도 <이노센스>는 가느다란 희망을 말한다. 쿠사나기가 바토를 또다시 떠나며 하는 말, “너의 네트에 접근할 때 난 항상 네 곁에 있는 거야”가 그것이다. 인간이 기억과 사고를 컴퓨터에 의존하고, 생활은 도시에 의존하는 데 익숙해진 지금, <공각기동대>가 선구자처럼 던졌던 질문은 불과 9년 사이 우리의 현실이 되어 있다. 오시이의 메시지는 9년 전보다 더 절실하다.

<이노센스>를 이해하기 위한 오시이 마모루 어록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이 아니다. 인간이란 자체가 한계에 달해, 인간의 밑이 빠져버린 듯한 이 시대에 인간을 둘러싼 좀더 넓은 시야에서의 윤리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감독의 변 중

“바토는 관객의 대리인이기도 한 인간 파트너 도그사와 함께, 인간이란 존재를 묻는, 지옥 순례의 여행에 나서는 인물.” … 감독의 변 중

“현실과 가상현실의 교차… 현실이 있어 가상현실이 있다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다만 현실은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 굳이 말하자면 현실 자체가 가상현실이라는 이야기다. 인간의 숫자만큼 인식이 있고, 그것들이 스쳐 총합된 것이 현실이라 부르는 것 아닌가. 하나하나의 현실은 서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 <아니메주> 3월호

“9년 동안 적잖게 변했다. 적어도 <공각기동대> 때는 이런 정서랄까 정감있는 작품을 한다는 건 전혀 상정하지 않았다. 인간이란 게 지쳐갈수록 본질에 접근하는 법이니. ” … <아니메주> 3월호

“<아바론>을 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영화에 그리겠다고 확실히 마음을 정했다. 전차든, 헬리콥터든, 동물이든. 무리하게 내가 싫어하는 걸 등장시켜 뭐가 되겠냐 싶다. <아바론>은 이제까지 가장 내가 그리고 싶었던 작품에 가깝다.” … <아니메주> 3월호

“<이노센스>는 내 영화 중 드물게 젊은이들에게 친절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이제까진 그들에게 별로 동정적이지 않았다고나 할까, ‘저녀석들 뭐지?’ 또는 ‘방법이 없는 녀석들이군’이라는 식이었으니까.” … <아니메주> 3월호

“인간은 함께 있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게 인간이 아니어도 좋다. 개든 인형이든. 여자라면 문학이 있겠지만, 내 경우는 개다.” … <아사히신문>

“지금의 현대인은 자신의 존재가 자기의 몸으로 완결되지 않고, 육체를 잃은 결격감 같은 걸 안고 살아가고 있다” … <아사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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