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마음을 느슨히 풀고 보는 한가로운 마당놀이, <고독이 몸부림칠 때>
2004-03-16
글 : 김혜리
사랑과 질투와 복수와 폭로가 몸부림치는, 매우 한가로운 코미디

산세 탓인지 수맥 탓인지 몰라도 남해 물건리는 고독한 중년과 노년으로 북적인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그들은 고독하다기보다 낙이 없다. 결혼을 회피하는 노총각 동생 중범(박영규)과 단둘이 사는 타조 농장주인 배중달(주현)도, 자식에게 외면당하고 혼자 살며 중달과의 멱살잡이로 소일하는 허풍선이 조진봉(김무생)도, 어린 손녀 하나 바라보며 배를 모는 필국(송재호)도, 중범을 짝사랑하는 이혼녀 순아(진희경)도 사는 게 적막하다. 단기 기억상실증에 가까운 중증 건망증 탓에 도통 소통이 안 되는 구멍가게 주인 찬경(양택조)과 그의 아내(이주실)의 생활 역시 진봉과 중달의 싸움을 말리는 일 외에는 별 이벤트가 없다. 이처럼 심심한 마을에 일대파문을 일으키는 것은 미모의 서울내기 송인주 여사(선우용녀)의 방문. 그러나 속내를 알고 보면 인주 역시 자식들도 편들어주지 않는 황혼 이혼을 결행한 쓸쓸한 처지다. 게다가 위자료로 남편에게 받은 섬의 실상이 손바닥만한 암초라는 사실을 발견하자 낙담한 인주는 물건리의 후텁지근한 공기에 젖어든다.

짐작과 달리 <고독이 몸부림칠 때>는 송인주 여사를 둘러싼 시골 아저씨들의 사랑싸움 전말기는 아니다. 그녀는 여주인공이라기보다 촉매다. 인주의 화사한 등장은 마치 봄을 알리는 제비처럼, 잠들었던 마을의 로맨티시즘과 리비도를 일깨우고 뜻밖의 연분을 향한 집단 짝짓기 소동극의 불씨가 된다. 그러나 <고독이 몸부림칠 때>는 소동극치고는 유례없이 유유자적하고 여유만만하다. 타조의 탈출, 팬티 도난 미스터리, 중범의 비밀 등 적잖은 사건 사고에도 불구하고 <고독이 몸부림칠 때>가 시종 한가한 인상을 주는 큰 원인은, 이 영화가 시간과 공간을 치밀하게 쪼개고 붙이는 일에 대체로 무심하기 때문이다. 시퀀스의 중요도에 따라 넣은 장단의 리듬이 없고, 계절이 바뀐 후일담을 제외하면 나흘 동안 진행되는 스토리를 지켜보는 관객에게 시간과 날짜의 흐름은 명료하지 않다. 숏을 구성하는 스타일도 유사하다. 예컨대 도입부의 교통사고 장면에서 음악은 짐짓 가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숏의 분할은 그다지 긴박하지 않다.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특정한 마을로서 영화 속 물건리의 공간감이 희박한 점도 아쉽다.

연출의 지배욕 대신 <고독이 몸부림칠 때>를 조종하는 것은 연기의 리듬이다. 배우의 개성과 에너지에서 장점을 구하는 영화로서 <고독이 몸부림칠 때>가 택한 방법은 소극적이며 낙천적이다. 각기 연기 호흡이 확고한 노련한 배우들이 대화하는 동안 영화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경청한다(이만큼 프레임 속의 모든 연기자가 느긋해 보이는 영화도 드물다). 한시도 스크린을 떠난 적은 없었으나 줄곧 원경에 머물렀던 중장년 배우들의 클로즈숏은 <고독이 몸부림칠 때>의 선물이다. 필국을 제외한 물건리 어른들의 연기는 종종 화면 사이즈와 불협화음을 내기도 하지만, <고독이 몸부림칠 때>의 기획에 의의가 있다면 그것은 중견 배우의 높은 공력에 공손한 예를 갖춘 영화라서가 아니라 베테랑들의 연기가 더 진화하고 풍요로워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일 것이다.

노년의 특성 또는 특정한 노년의 삶을 천착하지 않는 <고독이 몸부림칠 때>는 마을 다니듯 물건리를 산책하며 사람살이의 삽화를 그리는 데에 자족한다. 결국 <고독이 몸부림칠 때>에서 시나리오와 배우 뒤로 물러서는 것처럼 보이는 감독의 개성이 불가피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영화의 독특하고 유유한 정조(情調)다. ‘로맨틱코미디’ <고독이 몸부림칠 때>의 낭만은 그윽이 보름달을 올려다보다가 빈대떡을 부쳐 먹는 낭만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코가 참 착하게 생겼네요”라는 말로 사랑을 고백한다. 한편 유머는 주로 말 자체보다 메아리 없는 말과 말의 ‘고독한’ 엇갈림에서 자연 발생한다. “거봐라, 내가 뭐라카드나?” “니가 뭐라캤는데?” “내가 뭐라캤더라?”를 주고받는 찬경 부부, 동생이 뭐라 말하든 “그러니까 장가를 가란 말이다!”라고 막무가내로 같은 말을 반복하는 중달 형제의 말싸움은 대표적인 예다. 통제된 배경에서 누군가 고심 끝에 문장으로 써낸 듯한 대화가 천연덕스레 오가는 스타일을 연극적이라고 부른다면, <고독이 몸부림칠 때>는 연극보다 마음을 느슨히 풀고 주인공들의 ‘이바구’와 수작을 구경하는 재미있는 마당놀이에 가까워 보인다. 다만 관객을 그 마당 깊이 끌어들여 노인들과 더불어 눈물짓고 만취하고 잔치를 벌이도록 꼬여냈더라면 곱절 흥겨웠을 것이다.

:: 데뷔작 내놓은 이수인 감독

시골 노인들의 즐겁고 소란스러운 앙상블

원동기 면허 시험 소동을 소재로 한 ‘농활 프로젝트’의 원안에서 출발했는데. 장편을 지탱하기에는 작은 아이디어라 시골 노인들의 유쾌한 삶을 그리는 영화로 발전시켰다. 중달에게 적대적인 인물은 원래 찬경, 필국에게 나뉘어 있었는데 시나리오를 고치면서 조진봉이라는 앙숙이 새로 생겨나고 세 친구가 하나로 묶였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연극에 비해 영화의 작업 과정이 거추장스러울 때는 없었나.

거추장스럽다기보다 익숙지 않은 데에서 오는 부자유가 있었다. 두 번째 영화는 두려움을 덜어내고 만들 수 있을 듯하다.

편집에서 연기의 흐름을 우선에 놓은 것 같다.

배우들이 잘게 끊어 찍는 데에 익숙지 않았고 또 내 스타일도 아니다. 편집에서는 40분 정도를 잘랐다. 필국과 영희가 개를 묻고 산을 내려오며 죽음을 이야기하는 신, 찬경 처와 철수 엄마의 대화신처럼, 잠시 멈추어 인물의 맥락을 살피는 신을 줄인 것이 아깝다.

영화 속 물건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하나의 마을로서 공간감이 다소 부족한 것 같다.

타조농장 문제, 유난히 비가 많았던 날씨 문제도 있어 헌팅을 원없이 하지 못했다.

베테랑 배우들이 주연진이라서 어려운 점도 있었을 텐데.

앙상블드라마인데 모두 바빠서 스케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또, 정확한 대안이 안 나올 때 “일단 달리 가보자”고 가볍게 제의하기도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극단 시절부터 앙상블에 대한 애착이 있는 듯하다.

특정한 주인공이 없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다. 영화가 인물 각자의 삶의 정수를 매듭짓기보다 인생의 단편을 취한 듯한 느낌을 주는 점은 아쉽다.

<고독이 몸부림칠 때>의 스타일을 자신의 스타일이라고 말할 수 있나.

완전히 그렇지는 않다. 좋아하는 영화의 예를 들라면 기타노 다케시 작품을 꼽겠다. 그냥 보고 있자면 어떤 심정으로 저렇게 했구나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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